자신의 삶의 종착이 언제 일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모두가 일생이라는 유한한 삶의 여정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임에도 망각한 채 살거나 간과하고 일상을 지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속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이든 잊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생각할 때가 의외로 많다.
하지만,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자아 각적 현상의 틀에서 벗어나 생각해 보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나 자신이 그때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스러운 생각을 하게 경우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건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라고 여겨지지만 불가항력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대다수의 범인들에게는 일상의 매사에서 생각과 실천이라는 양면에서 괴리나 한계를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일생의 생애주기를 통해서도 실행에 많은 제약을 접하게 될 것이다. 나 자신도 이제 고희를 지나서야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왜 그렇게 했을까 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서 참 많은 아쉬운 마음을 가지면서 후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젊은 시절부터 이러한 마음 가짐으로 살았다고 한다면,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의 자신을 보게 되지 않았을까 상상하게 된다. 한편, 스스로는 생각하는 것처럼, 행하지 못하는 삶의 일상은 오직 자신만의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대다수의 평범한 인간들의 세상살이에서 거의 공히 신께서 허락하신 한계가 아닐까 하면서 위안하고 있다.
사람이 세상살이 동안 오전, 오후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이렇게 하루에 삼성 하는 삶을 이어간다고 하면, 거의 모두가 훌륭한 인격자의 반열에 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하루에 두 번이라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하더라도 타의 모범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도 저도 할 수 없다면 하루에 단 한 번만이라도 반성하는 시간을 가진다 해도 삶의 질이 그런대로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제 자신처럼, 인생 여정의 끝자락에 이르러, '왜 그랬을 가!'하는 회한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된다고 하면, 한층 더 살아볼 한 사회로 변화가 이루어질게 분명하겠지만 물론, 쉽게 이루어질 바람은 아닐 것이다. 고희를 지나 산수, 즉, 망팔의 나이에 이르고 보니, 대부분 부질없는 욕망의 늪에 빠져서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하고 아등바등되면서 허송한 세월에 대하여 자성의 시간을 가질 때가 많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신에게도 이젠 결코, 남은 날이 살아온 지난 세월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많이 짧다는 사실을 정녕, 요즘은 단 하루도 잊지 않고 있다 할 만큼 자주 생각해 보고 있는 편인데도 과연, 진짜 내 나이에 걸맞게 살고 있는 가를 자문해 볼 때가 많다.
자신의 여생이 얼마나 남았을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요즘처럼, 가능하다면, 자신의 일상을 통해 잡동사니 같은 세상사에는 관심을 두지 말고, 가능한 '왜 그랬을 가!'하는 회한을 가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남은 삶을 꾸릴 수 있었으면 하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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