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시리아 '핵(核)의혹 시설' 폭격작전 텔아비브를 방문한 한국의 정보당국자에게 이스라엘 공군에 의한 ‘이라크 오시리크 핵시설 공폭작전(1981년)’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제공했으며, 한국 측은 그 대가로 시리아와 이란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수출 정보를 넘겨. 김필재
제인스(Jane's Information)연감과 美 정보기관 등의 공개 자료를 살펴보면 북한은 1991년 봄 시리아에 스커드 미사일 24기를 공급한 이래 거의 매년 개량형 스커드 미사일을 수출해온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국교가 없는 북한과 직접 교섭(1992년 11월)을 택한 적도 있다. 당시 북한의 시리아·이란에 대한 미사일 수출이 표면화되자 벤톨 외무성 아시아 국장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 외교부에 對중동 미사일 매각을 중지해 줄 것을 요구했다. 당시 교섭에서 북한은 자금난으로 개발이 중단된 운산(평안북도) 금광에 3억 달러를 투자해 줄 것을 제의했는데, 이스라엘은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하고 지질조사단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이스라엘 외무성은 중국의 베이징에서 북한과 접촉할 것을 제의했고, 1993년 7월 개최된 회담에서 북한이 이란에 대해 미사일 수출을 중지하는 대신 이스라엘이 對北 경제협력에 나서는 문제가 논의됐다. 당시 협상의 일환으로 이스라엘 무역사절단이 북한을 방문해 북한 측과 곡물 및 원유 원조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했다. 그러나 북한과 핵사찰 문제로 교섭을 벌였던 미국의 압력으로 1993년 8월16일 이스라엘은 교섭을 중단했다. 대신 이스라엘은 한국과의 관계협력에 나섰다. 일례로 김정일은 2001년 방북한 유럽연합(EU) 대표단과 만난 자리에서 “다른 나라에 미사일을 판매하는 것은 교역의 일부”라며 “미사일을 사려는 사람을 찾게 되면 그에게 미사일을 팔 것이고 교역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시리아 核시설 폭격 이스라엘 공군이 2007년 9월6일 시리아의 ‘알키바르(al-Kibar)’ 핵시설을 폭격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북한과 시리아의 핵 밀거래 사실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북한과 시리아가 핵 협력을 추진해왔고, 폭격된 장소는 영변에 있는 5MWe 흑연감속로와 유사한 형태의 원자로 건설 현장이었으며, 이 폭격으로 인해 10명의 북한 관계자들이 사망했다.
이후 <로이터> 통신은 美 외교 소식통을 인용, “이스라엘이 공습을 가한 시리아의 ‘데이르 에조르(Deir ez-Zor)’ 지역은 북한과 시리아 간의 핵무기 협력 현장으로 의심받는 곳으로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시리아에서 하고 있다는 의혹들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선데이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모사드 국장이 이스라엘 수상에게 시리아가 북한으로부터 핵장치(nuclear device)를 구매하려 한다는 증거를 제시한 2007년 늦봄부터 공격을 준비했으며, 목표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농업연구소로 알려진 시설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은 2007년 여름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 사람들과 핵관련 물질이 해당 시설에 있다는 것을 통보하고 공습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당시 미국 정부는 공습을 승인하기 전에 보다 분명한 증거를 원했다고 한다. 이에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 ‘사예렛 메트칼(sayeret metkal)’이 미국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시리아에 파견됐고, 해당 시설에서 핵물질 샘플을 탈취한 뒤, 이를 이스라엘로 가져왔다.
당시 이스라엘의 시리아 핵시설 폭격에 대해 9월11일 북한 외무성은 “이스라엘 군용기들이 수리아 영공을 불법 침입하여 동북부 사막지역에 폭탄을 던지고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은 자주권을 난폭히 침해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엄중히 파괴하는 극히 위험천만한 도발행위”라고 밝혔다. 시리아 核시설은 核무기 제조 공장 이스라엘의 ‘알키바르’ 폭격이 있기 전인 2007년 8월10일과 폭격 후인 10월24일 촬영한 사진을 보면 폭격현장이 아무것도 없이 말끔하게 치워져 있음이 확인됐다. 시리아 당국이 나중에 있을 국제사회의 조사에 대비해 북한과의 핵 밀거래 증거를 없앨 목적으로 현장을 신속하게 정리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의 핵 전문가인 우지 이븐 텔아비브 대학 교수는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리아가 (문제의 핵 시설에서) 북한으로부터 플루토늄을 제공받아 핵탄두를 제조하려 했다”고 분석했다. 이븐 교수는 “시리아가 공습 당한 곳은 플루토늄 처리 시설로 핵폭탄을 만들 수 있었다”며 “북한이 핵무기 생산이 가능한 플루토늄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븐 교수는 “시리아의 핵시설이 건설 중인 상태를 넘어 핵 제조 공장으로 보인다”며 “이는 이스라엘에 더욱 위협적인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즉 시리아의 핵시설에서는 원자로의 특징인 냉각타워와 굴뚝이 없어 핵무기를 제조하는 공장이라는 것이다. 이븐 교수는 시리아가 이스라엘로부터 공습을 당한 뒤, 서둘러 폭격 장소를 흙으로 덮은 것은 “방사능 오염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리아는 이후 이곳을 봉쇄하고 이스라엘이 공습하지도 않은 곳으로 언론의 주의를 따돌렸다”고 말했다. 2006년 12월 쿠웨이트의
<시리아·북한 핵 밀거래 사건은 전술적인 정책변화를 통해서 북핵문제를 외교적인 업적으로 삼으려는 부시 행정부에게 타격을 주었다. 변화된 대북정책의 타당성에 의문이 야기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 대북협상을 지지하는 세력과 대북 압박을 주장하는 세력 간에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정부 역시 이스라엘의 폭격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주요 인사들의 발언 내용을 검토해 볼 때, 북한의 핵확산 행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중략) 미국 내에서는 시리아·북한 핵커넥션을 둘러싸고 부시 행정부 내에서 강온파간의 갈등이 유발되었다. 6자회담 제6차 2단계 회의에서 합의한 불능화·신고 방안을 승인할 것인가를 두고서 체니 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반대파와 라이스 국무장관을 축으로 하는 찬성파 사이에 이견이 있었으나, 부시 대통령이 일단 합의안을 승인하기로 결정했다.> 이스라엘의 에후드 올메르트는 총리 재직 시절인 2008년 3월27일 일본 동경에서 후쿠다 야스오 당시 일본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2007년 이스라엘 공군이 폭격을 가한 “시리아의 핵시설이 북한의 기술지원으로 건설 중이었다”면서 對시리아 공습을 인정했다. 올메르트 총리는 후쿠다 총리에게 “북한에서 설계 정보와 기술자 파견을 받아 건설하던 핵관련 시설이었다”며 “북한의 핵확산 문제에 우려를 갖고 있다. 일본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다”며 제휴를 요청했다. [ 2016-06-27, 15: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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