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자신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외 2/ CTS 큐티

鶴山 徐 仁 2015. 12. 5. 14:50



용서의 능력


「용서하는 공동체」의 저자 윌리암 클라센은
“ 남편이 부정하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용서하고,
전처럼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남편의 부정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픈 경험이었지만, 사람들은 용서의 힘을 증거했다.
상처는 남았으나 용서하고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경우, 결혼생활은 더 튼튼해졌다.
용서는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부부, 친구,
부모와 자식 간에 은혜의 통로를 열어준다.
용서는 고통을 겪는다는 점에서 그리스도를 닮지만,
범죄한 사람들과 화해하려는 결정이라는 점에서도 그리스도를 닮는다.
-코넬리우스 플란팅가의 ‘마음의 확신을 위한 묵상’에서-

용서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줍니다.
용서는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화해시키며.
끊어진 관계의 회복이상으로 그 관계를 강화시킵니다.
날마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삶을 살아
그 사랑으로 화해를 나누며 진심으로 용서하고
자신 때문에 주변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십자가의 큰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누가복음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Jesus answered him, "I tell you the truth, today you will be with me in paradise."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범죄하는 영혼은 죽으리라 - 겔 18:1-9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4.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5.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하며
6.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아니하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
7.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 주며 강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8.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를 짓지 아니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게 판단하며
9.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에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면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2절)는 속담이 있었습니다. 행위는 부모가 했는데 그 결과는 자식들에게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우리 말에도 이와 비슷한 속담이 있습니다. <잘 되면 내 탓 못되며 조상 탓>이란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 옳지 않은 관념입니다. 자기의 행위와 잘못과 불행은 다 자신에게 그 요인이 있습니다. 모든 범죄와 징계의 책임도 다 내게 있습니다. 아버지가 신 포도를 드셔서 지금 내 이가 시리다고 생각하는 것은 책임 회피요 비겁한 핑계일 뿐입니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4절) 이 말씀은 모든 영혼이 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아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각각 한 사람의 영혼일 뿐 결코 가족단위로 하나님과 관계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징계를 당하고 용서를 받는 일들이 다 개인적인 한 영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단체로, 혹은 가족 단위로 상대하시지 않습니다. 죄는 부모가 짓고 벌은 자식이 받는 법은 없습니다. 죄의 대물림 조차도 자식 역시 부모처럼 죄를 짓기 때문에 받는 심판이지 주체적인 죄도 없이 자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부모의 죄값을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든 아들이든 범죄하는 영혼이 죽습니다. 그리고 그런 영혼의 죽음이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죽음입니다. 범죄한 영혼은 비록 육신은 아직 살아 있을지라도 죽은 자나 진배없습니다. 그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은 죽은 자>(계 3:1)입니다. 반면 주 안에 있는 자들은 죽어도 실은 죽은 게 아닙니다.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잠자는 자일뿐입니다. 믿으십니까?

[적용]
- 우리는 모두가 각각 일 개인의 영혼으로 주님을 만납니다. 따라서 삶과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전적으로 자신이 져야 함을 잊지 마십시오.
-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출 20:5)고 한 말씀의 참된 뜻은 무엇일까요?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하셨음에도 아담은 구백삼십 세까지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죽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기도]
주님, 그렇습니다. 저희는 다 주님 앞에서 각각 한 영혼일 뿐입니다. 다 자신의 죄로 벌을 받기도 하고 또 자신의 의로움으로 상을 받기도 할 뿐 아내의 믿음으로 남편이 구원을 얻거나 아버지의 죄 대문에 자녀가 구원에서 탈락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누구를 핑계해서도 안 되고 누구에게 의존해서도 안 되고 오직 자신이 믿고 성화되고 기도하며 정진해야 합니다. 부디 더욱 책임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사 저희들의 영혼이 늘 살아 있게 해주시옵소서.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믿음의 눈이 열리면


믿음의 눈이 열리면 하나님이 보인다.
놀라운 역사가 보여진다
그러니까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로운 꿈을 가지고 전진할 수 있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내가 보인다.
믿음의 눈이 안 열리면 내가 보이질 않는다.
평생 살아도 내 등어리에 뭐가 있는지 못 봤다.
뱃속은 더 모른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내가 내 마음을 볼 수 있다.
믿음의 눈이 열리면, 믿음의 눈이 열려야
내 참 모습을, 숨겨진 내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으면, 교만할 수밖에 없다.
-작자 미상의 글 ‘내 눈을 열어 주소서’에서-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은 하나님이 보이고
나 자신이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교만한 사람, 내가, 내가 하는 사람은
아직도 믿음의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나그네입니다. 오 분 앞도 모릅니다.
어찌 내일 일을 알겠습니까?
그래서 나의 연약함을 볼 수 있는 사람,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로마서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For we know that since Christ was raised from the dead, he cannot die again; death no longer has mastery over him.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연한 가지 - 겔 17:22-24
22.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23.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살리라
24.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하라
본문은 하나님이 장차 행하실 일을 비유로 말씀하신 대목입니다.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요 ...>(22-23절).
이것은 유다가 비록 하나님과의 언약을 무시하므로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됐지만 그러나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고 복권하실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말씀은 바로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취하리라고 하신 <연한 가지>가 과연 누구신가 하는 것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망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 11:1, 10).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형통하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렘 23:5-6).
주님이 바로 그<연한 가지>요 <한 의로운 가지>십니다. 주님을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고 온전케 하실 것이라는 약속이십니다. 그런데 그 <연한 가지>이신 주님의 성탄이 머지않았습니다. 주님은 올해도 그<연한 순>(사 53:2) 같은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새롭게 성탄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높은 나무는 낮추시고 낮은 나무는 높이실 것이고, 푸른 나무는 말리시고 마른 나무는 무성하게 하사>(24절)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세상에 널리 드러내실 것입니다. 은혜로운 이 대강절에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자신을 더욱 비우시고 내려놓는 성도들 되시길 기원합니다.

[적용]
- 하나님의 심판에는 항상 구원과 회복의 소망이 있음을 믿으십니까?
- 주님의 성탄이야말로 <연한 순>(사 53:2), <연한 가지>(겔 17:22)에 대한 구약성서의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 이사야 40:4 말씀과 에스겔 17:24 말씀을 비교하며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확인해 보십시오.

[기도]
주님,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엄정하되 언제나 회복과 구원의 말씀을 통해 소망을 보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신의를 배반한 유다 백성들을 향해 그토록 진노하시며 심판을 선언하시면서도 다시금 연한 가지를 통해 새롭게 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안겨 주사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새출발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저희도 늘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빛과 소망을 바라보며 재기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이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의 표상일까?


우리는 복음 사역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
우리의 능력과 의지를 앞세우려 한다.
요즘 교회들은 ‘성장’을 목표로 5년, 10년 계획을 수립하고,
온갖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과연 우리 주님이 이런 것들에 감동하실까?
열심을 내는 교인들은 바쁜 일정으로 빠듯하게 들어찬
계획표에 따라 분주히 뛰어다닌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의 표상일까?
또한 스포츠의 작전 기법과 사업계의 경영 기교들을
하나님 나라 사역에 도입해서 쓰고 있다.
하지만 주님이 보여 주신 귀감으로부터
많이 빗나가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을 위해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눌려,
예수님이 일하셨던 방식들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더글라스 웹스터의 ‘낮아짐’에서-

당신의 능력으로 무엇을 하려고 노심초사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평강의 왕께 모든 것을 맡기고 따르십시오.
예수님의 행동의 중심에는 언제나
놀랄 만큼의 고요함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스스로 낮아지심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맡김으로, 하나님께 항복함으로
그분의 권능을 명백하게 나타내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면,
예수님의 모습을 본보기로 삼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디모데전서 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Have nothing to do with godless myths and old wives' tales; rather, train yourself to be godly.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하나님의 맹세 - 겔 17:18-21
18. 그가 이미 손을 내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19. 그러므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
20. 그 위에 내 그물을 치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에서 심판할지며
21. 그 모든 군대에서 도망한 자들은 다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남은 자는 사방으로 흩어지리니 나 여호와가 이것을 말한 줄을 너희가 알리라
유다가 바벨론의 종속국이 된다는 맹세는 비록 유다 왕 시드기야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 사이에 이루어진 언약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서 맺어진, 하나님의 뜻 위에서 이루어진 언약이었기 때문에 결코 인간의 편의나 유익에 따라 업신여기거나 배반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언약하였거늘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하고 이 모든 일을 행하였으니 피하지 못하리라 ...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내 맹세를 업신여기고 내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내가 그 죄를 그 머리에 돌리되>(18-19절).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은 그게 비록 손해가 되더라도 꼭 지켜야 옳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결국 손해가 되지 않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계산으로 덕이 될 것 같지 않아 배반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 죄를 그 사람의 머리에 돌리신다고 합니다. 그물을 쳐 올무에 걸리게도 하시고 반역을 심판받게 하사 칼에 엎드러지고 사방으로 다 흩어지게 하신다고 합니다. 사람은 개인 간의 언약도, 국가 간의 맹세도 범하고 저버리는 게 다반사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맹세에 홀로 철저하시며 반드시 이행하시므로 약속과 다짐에 절대 성실한 분이심을 확증하십니다. 사람들 간의 사회적 약속인 여러 가지 규범들과 질서를 모두가 잘 지킨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사회 공동체가 될까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과 하나님 앞에서 행한 모든 맹세들을 배반하지 않고 잘 지키고 잘 수행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금보다 얼마나 더 건실하고 복될까요?
사람들이 얼마나 맹세에 무책임했으면 주님이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지니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마 5:34-36)고 하셨겠습니까? 사람과의 약속,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치 않음으로 심판이 아니라 늘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사는 성도가 되시길 빕니다.

[적용]
- 올 연초 혹 하나님과 약속하신 것 있으십니까? 잘 지키셨나요, 아니면 어기셨나요?
- 당신이 삶 속에서 체험한 <약속에 성실하신 하나님>을 한 번 간증해 보십시오.
- 당신은 사람들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십니까, 아니면 그렇지 못한 편이십니까?

[기도]
주님, 에스겔 시대 유다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바벨론과 언약을 맺고도 보란 듯이 그걸 배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도 면할 수 없었고, 느브갓네살 왕의 진노도 피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저희들의 약속과 언약을 대하는 행태 역시도 문제와 모순이 많음을 시인하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한 맹세와 사람과 맺은 여러 다짐에 최선을 다하도록 성령으로 도와 주시옵소서. 언약을 저버리므로 하나님의 심판과 사람들의 진노를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저희를 각별히 단속해 주시옵소서.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