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아버지의 품으로 제일 빨리 돌아갈 수 있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외 3/ CTS

鶴山 徐 仁 2015. 12. 2. 16:23



어서 빨리 아버지의 품으로


우리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일 먼저 재빨리 돌아서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먼 나라에서 지체하면 할수록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곁에 없으면 우리 아버지는 깊이 상심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를 깊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과 딸들을 사랑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결정은
그 품으로 제일 빨리 돌아갈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다.
-어윈 루처의 ‘나는 너를 용서하였다’에서-

우리가 그분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스스로 부끄러운 나머지 망설이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의 진노하심이 두려워서 우리가 자수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까 두려워
스스로 하나님 나라의 법도에 순종할 자신이 생길 때
돌아가리라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돌아가고 싶어도 합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는 성내지 않으시고
우리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만 하십니다.
언제나 우리의 삶이 회복이 되는 것은
어서 속한 곳으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아버지의 음성에 순종할 때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Put to death, therefore, whatever belongs to your earthly nature: sexual immorality, impurity, lust, evil desires and greed, which is idolatry.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그리스도인은 가정에 파송된 선교사입니다. - 고린도전서 7장 10-20절
10.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11.(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13.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17.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묵상글]
목회를 하다보면, 선교에 대한 사명을 깨닫게 됩니다. 단기선교를 비롯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해서 헌금과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애쓰게 됩니다. 매년 재정의 얼마를 선교에 사용하느냐가 그 교회의 목회비전과 맞물려서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선교에 중요한 측면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파송된 선교사라는 사명을 말입니다. 단기선교를 위해서 헌금하고, 기도로 영적 싸움을 준비하고, 어떤 불이익이나 시련이 있어도 담대하게 기쁨으로 봉사하고, 성령의 능력과 증거를 체험하고 선교지에서 돌아와서 우리는 가정을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회사생활과 임금노동은 은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단기선교를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 선교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 선교지에서는 좋았는데...”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생각해 보십시오! 왜 선교지에서 좋았을까요?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일까요? 그곳에서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당신이 선교를 떠날 때, 기도로 준비하고,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고, 얼굴에서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가 믿음으로 격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왜 가정과 회사, 그리고 교회에서 그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걸까요? 자신에게 솔직해 보십시오! 매일 가족들 앞에게 내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하십니까? 아침에 출근하면서, 오늘 있을 영적싸움을 위해서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까? 나의 얼굴을 통해서 회사 동료들이나 연관사업의 직원들에게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기 위해서 담대하게 주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가정에서 매일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 내가 주님의 종으로서 기쁨으로 봉사하고 있습니까?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와 부모님에게 말할 때, 선교지에서처럼 긍정적이고 소금을 치는 말을 하고 있습니까? 아무리 화가 나도 인내하고, 가족을 선교해야 할 대상처럼 대하십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당신의 가정과 회사에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오늘 지금 이 순간, 가정과 회사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기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그곳을 선교지로 여기고 사명을 감당하라고 말합니다.

13.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사도 바울은 결혼을 누구와 하느냐 보다도, 할례를 받았느냐 아니냐 보다도, 내가 어디에 있느냐 보다도 중요한 것은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바로 그 자리라고 말합니다.

20.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서 있는 모든 자리를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지’라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분명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열방뿐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바로 그 변화가 시작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적용]
- 오늘 가정과 직장에서 선언해 보십시오. “나는 오늘부터 가정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선교를 떠날 때 가졌던 마음으로 내가 그 일을 감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겨보십시오.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
- 살아계신 예수님! 나의 삶의 전부를 주님께 드립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사는 곳이 바로 내가 매일 마주하는 가정과 일터, 그리고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 성령님! 내 안에 살아계셔서 나의 모난 성품과 생각으로 인해서 주변의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하나님 앞에 손을 들고 나오는 것은


‘하나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손을 들고 나오는 것 까지도 내 힘대로 할 수 없네요.
하나님 나를 붙잡아 주셔야 됩니다.
나를 도와 주셔야 됩니다.‘
나의 완전 무력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백성이 연약함을 고백하며 주님 앞에 곤고한 모습으로
나올 때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른다.
이 곤고한 자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란에서 구원하셨도다. (시 34:6)
곤고한 자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들으신다.
손을 든다는 것이 그런 뜻이다.
-김승욱 목사의 ‘여호와 닛시’에서-

내가 자랑했던 것 다 내려놓고 도와달라며
손을 들고 나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그러나 하나님
나는 죄악 투성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나는 오늘도 실족하고 있지만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이 계심을 믿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며 손을 든다는 것은
‘내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 있을지라도, 또 아픔이 있을지라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 그 음성을 기뻐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갈라디아서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Neither circumcision nor uncircumcision means anything; what counts is a new creation.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엔학고레의 하나님 - 사사기 15:17-19
17.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18.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19.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세계가 테러의 공포로 가득한 요즘입니다. 아무리 많은 나라들이 연합하여 테러집단을 공격해도 그 뿌리까지는 뽑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지키시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시편127:1). 그 안에 복음이 들어 있지 않다면, 그 어떤 수고도 완전한 결과를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희망입니다. 세상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복음에만 있음을 고백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복음의 키를 쥔 우리는 세상과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사사이자 나실인이었던 삼손은 나실인에게 금한 술, 머리카락, 시체에 대한 규정을 모두 어겼습니다. 그는 세상과 다름없이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나실인들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결박당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그 결박이 풀어집니다. 그 이후 블레셋 사람 천명을 나귀턱뼈로 죽이고 승리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결박에서 풀어지고 세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합니다(14절). 오늘 우리는 무엇에 묶여 있습니까? 그것이 물질이든, 사람이든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불탄 삼베 줄처럼 끊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구하고 이제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묶이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나의 인생이 삼손에게 있었던 기적과 승리로 가득찰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묶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것은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요4:23). 우리가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한 주일을 채우는 참된 예배자가 된다면 우리를 묶고 있는 모든 결박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삶 가운데 얽히고설킨 많은 문제들을 풀어내는 방법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결박하지 못할 것입니다.
삼손은 나귀턱뼈로 천명을 죽이고 탈진해버렸습니다. 목이 말라서 죽을 지경이 되어버린 것입니다(18). 그때 그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마지막 힘을 다해 부르짖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셔서 물이 솟아나오게 해 주셨습니다(19). 그 샘의 이름이 ‘엔학고레’로 그 뜻은 ‘부르짖는 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삶 가운데 때로는 탈진해서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응답하십니다.(렘33:3) 우리가 자율성을 지닌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예배를 통해 재충전하며 간구하며 나아갈 때, 우리의 삶에도 엔학고레의 샘이 터질 줄로 믿습니다.

<적용>
-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복음인데 나는 복음을 소유한 영의 사람입니까?
- 우리 삶 가운데 얽히고설킨 결박의 원인을 점검해 보고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 지친 삶에 엔학고레가 터지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정리해 봅시다.

[기도]
역사의 주되신 하나님, 부름 받은 자로 구별되게 살기 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성령 충만함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나의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어지고 엔학고레의 샘을 터트려 주시사 풍성한 삶으로 인도해 주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하나님을 바라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며 사는 사람들은 인생의 모든 목표가
하나님을 향해 기여하도록 만드는 일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자신 속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이루어지고,
그렇게 이루어진 나라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이루어지고,
세상의 주권도 하나님께 복종하게 되기를 갈망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생사 간 유일한 소망이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입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시고,
백성들이 그 놀라운 사랑을 본 받으며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면서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김남준 목사의 ‘도움과 방패 되신 하나님’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며 산다는 것은
삶의 기쁨이나 슬픔이나 즐거움이나 고통이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랐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며 산다는 것은 단지 그분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바를 깨달으면
살을 깎고 뼈를 깎는 마음으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렇게 살면서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입는 것입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시편 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How great is your goodness, which you have stored up for those who fear you, which you bestow in the sight of men on those who take refuge in you.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이런 사람 되게 하소서 - 딤후1:15-18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사람을 보통 두 종류로 분류해 본다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영적으로는 살아있는가 아니면 죽어있는가 나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긍정적이며 좋은 사람인가를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는지 대해서 늘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좋은 사람입니까? 나를 이해해주고 격려하고 칭찬해 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힘이 되고 용기가 솟아나며, 이런 사람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러나 항상 바른 말로 충고를 잘하며, 물질과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직언해 주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며 분명 좋은 사람입니다. 또한 솔직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잘 들어내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희생하며 헌신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또한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울 주위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그를 버리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시아에 모든 사람이 바울을 버렸으며, 그 중에 특히 부겔로와 허모게네를 지목해서 책망하듯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던 데마처럼(딤전4:9), 주의 일을 버리고 떠난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좁은 길을 가다가 세상을 사랑하여 넓은 길로 돌아가 버린 자들입니다(15). 그래서 바울은 인간적으로 외롭고 쓸쓸하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한사람 오네시보로는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며 어떤 사람이기에 무엇 때문에 칭찬할까요. 바울이 감옥에 갇힌 상황 가운데도 자주 찾아와 격려해 줌으로 그를 유쾌하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복음을 위해 갇힌바 된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를 인정해 주었습니다(16-17). 이렇게 바울에게만 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서도 많이 봉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18절). 우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과 사명을 잘 감당하기에도 벅찬데 이웃을 생각하고 협력하여 섬기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바울은 이런 오네시보로를 위해 그와 그 가정에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15,18). ‘긍휼’이라는 단어는 ‘라함’이라는 히브리어로 어머니의 아기집에서 태아가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생명이 자라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의 은혜가 그에게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네시보로처럼 주위의 사람들에게 자주 격려하며, 인정해주고, 교회를 위해 많이 봉사하는 삶을 본받아 하나님의 긍휼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적용]
- 내 주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으며,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십니까?
- 내가 가는 길이 좁은 길인지 점검해 보고, 그 길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 긍휼의 은혜를 누리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삶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기도]
거룩하신 주 하나님, 저가 오네시보로와 같은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나 한사람 때문에 가족이 복을 받고 교회가 평안하고 이웃이 복을 받는 복된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군으로 사용해 주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기억하라, 십자가를 보는 사람만이


기억하라. 십자가를 보는 사람만이 산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는 사람만이 산다.
우리는 두 눈을 들어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 예수님을 보고
그 분의 찢긴 몸과 흘리신 피를 보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지 않고
그들은 십자가를 지기 전의 예수님만 본다.
위엄이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으며,
수많은 환자를 치유하고 떡을 나눠주시는 멋진 예수님만 본다.
그러나 그 예수님이 주시는 떡을 받아먹고, 질병에서 고침을 받아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피를 통해 죄를 씻고
구원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십자가 앞으로 나오라.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라.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나아가라.
-작자 미상의 글 ‘예수님을 보는 사람만이 산다’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난 분이 아닙다.
그 분은 죄를 이기시고, 죽음을 이기신 분입다.
온 인류에게 가장 치명적이던 무서운 죄를 물리치신 분입니다.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미 주님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주님과 눈을 마주하여 바라보십시오.
그 분의 사랑의 눈을 보십시오.
눈 뜬 바디매오가 보았던 십자가의 예수님과
부활의 예수님을 보면서 살아가십시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요한1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This is love: not that we loved God, but that he loved us and sent his Son as an atoning sacrifice for our sins.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배반 - 겔 17:11-17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2. 너는 반역하는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말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고관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 가고
13. 왕족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 언약을 세우고 그에게 맹세하게 하고 또 그 땅의 능한 자들을 옮겨 갔나니
14. 이는 나라를 낮추어 스스로 서지 못하고 그 언약을 지켜야 능히 서게 하려 하였음이거늘
15. 그가 사절을 애굽에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16.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저버리고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이 거주하는 곳 바벨론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
17. 적이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 주지 못하리라
바벨론 느브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긴을 잡아가는 대신 왕족 중 하나를 세워 왕으로 앉히는데 그가 바로 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입니다. 느브갓네살은 시드기야에게 충성 맹세까지 시키지만 결국 그는 바벨론을 배신하게 되는데, 그것은 애굽을 믿고 그만큼 의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애굽은 고대 근동의 열강이었습니다. 그러나 B.C. 605년의 유명한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에게 대패합니다. 바벨론은 내친 김에 아예 애굽까지도 침략하지만 결국은 실패하여 큰 타격을 입습니다. 바로 그 때 유다도 애굽을 의지하며 반 바벨론 동맹에 깊이 참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B.C. 598년 바벨론 군대가 유다를 침공했고 당황한 유다는 급히 애굽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끝내 애굽 군대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유다는 멸망하고 맙니다. <그가 사절을 애굽에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 ... 바벨론 왕이 그를 왕으로 세웠거늘 그가 맹세를 저버리고 언약을 배반하였은즉 그 왕이 거주하는 곳 바벨론에서 왕과 함께 있다가 죽을 것이라>(16절).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신실하게 전했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애굽이 아니라 바벨론에 순종하고 바벨론과의 언약에 충실할 것을 누누이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오로지 인간적인 술수와 얄팍한 잔머리로 애굽에 붙어 바벨론의 통치로부터 자유하기만을 꾀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유다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최후로 에스겔 선지자까지 보내사 하나님의 속마음을 전했지만 그들은 결국 끝까지 돌이키지 않다 처참하게 망했습니다. <대적이 토성을 쌓고 사파리를 세우고 많은 사람을 멸절하려 할 때에 바로가 그 큰 군대와 많은 무리로도 그 전쟁에 그를 도와주지 못하리라>(17절). 배반이 곧 자멸로 이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명령은 물론이고 주님의 이름으로 맺은 사람과의 언약도 꼭 지키고 배신하지 않아야 복됩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대적하다 사탄으로 전락한 천사장 루시퍼나 주님을 배신하고 은 30에 팔아버린 가룟 유다의 최후 영원한 운명을 잊지 맙시다. 유다의 멸망은 결국 배신의 쓴 열매였습니다.

[적용]
-유다가 굳이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을 택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게 복종하기를 바라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가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주님의 사랑을 배신하면 결코 복 되지 않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으십니까?

[기도]
주님, 저희의 삶과 믿음을 간섭하시고 단속하사 함부로 남의 신의를 저버리거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짐하고 약속한 언약을 허무하게 파기하는 일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언제나 책임적으로 살게 하사 과거 유다 백성들의 그릇된 행보가 큰 불행을 자초한 것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그야말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언제나 푸르며 때를 따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복된 성도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