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생은 건강하게 즐기며 봉사하는 삶이였으면.....
인생 여정의 끝자락에 이르게 되니, 이제야 조금 철이 들어가는 건지!
그동안 살아오는 여정에서 제대로 즐길줄도 모르고, 봉사도 외면한 채
자신만의 꿈을 향해 도전하면서, 그냥 나름대로는 열심히 살아왔을 뿐
의미있고, 보람된 삶이었던 가에 대한 해답은 석연치 못한게 사실이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작은 것부터 즐기며 살아가는 삶을 생각하면서,
마지막 삶의 터전을 잡은 제주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살고 싶다.
물론, 이 방면에 대해서는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가 나의 멘토이기에
지금껏 나름대로 3C라고 정하여, 담배와 콜라, 커피마져 멀리 했는데,
요즘은 아내와 함께 사우나 후에는 풍광과 더불어 맛자랑 카페를 찾아
카피 맛과 향도 즐기면서 소문난 음식점을 찾아 외식도 자주하고 있다.
자신이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아보노라면, 크게 회한을 갖지는 않지만,
1 단계의 삶이 육군항공대에서 조종사생활이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강직함을 나름의 멋으로 여기며 자신의 삶을 자화자찬하며 살아왔었고,
국방의 일선 현장에서 근무한다는 군의 간성인 장교로서의 자부심으로,
임관한 후에, "명예는 상관에게, 공로는 부하에게, 책임은 나에게"라는
첫 임지에서 접한 사단사령부 지휘부에 걸려있던 현판의 슬로건을 보고,
실천의 결과를 평가하긴 너무나 추상적이겠지만 시종일관 노력하였다.
군에서 전역 후 2 단계로 일을 하게 된 곳이 대학에서 교수생활이었고,
격세지감(隔
여군은 아주 소수로 근무를 하는 남성중심집단 속에서 오래 일했는데,
대학에서의 첫 보직학과가 교육학학위를 가지고 있는 자신에게 의외로
여성중심으로 이루어진 간호학과의 보건교사 교직과목을 맡게 되었다.
따라서, 친구와 지인들은 농담으로 꽃밭에서 생활하는 소감을 물을 때면
그럴 때마다 가끔씩, '은행의 돈이 은행원의 돈이냐?'고 반문하곤 하였다.
그리고, 3 단계의 삶은 우리 고유의 전통적 심신수련법인 국선도에 입도,
사범자격을 취득하여 국선도지도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스스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아도 즐김과는 항상 거리가 있었기에
이제는 인생 여정에서 참 자유인으로서, 여생을 건강한 가운데 즐기면서,
많이 미흡하기는 하나, 명실공히 국선도사범으로서 봉사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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