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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향한 행복 - 창 48:20-22 |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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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은
행복을 창조하는 사람들입니다. 요셉은 먼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 신경을 쓰고 자신의 삶을 꿈꾸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뢰하며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현실보다는 미래를 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가슴에 품고 시험을 이기고 그 꿈을 이루게 됩니다. 요셉이 형통하고 복된
삶을 살아간 것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고 절대적인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의 특징은 기도하게 됩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얼마나 큰지 알았기 때문에 연로하신 아버지 야곱에게 두 아들과 함께 나아가 축복기도를 받았던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과 다음세대인 교회
학교 아이들을 축복하고 미래에 꿈을 주는 것은 가장 중요합니다. 교육심리학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이 있는 데 그것은 교사가 학생에게
기대하는 만큼 성적이 향상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언가에 대해 믿음이 있고 기대하고 있으면 실제적으로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더니 반석같은 일꾼이 되었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로 이름을 바꾸어 주셨더니 그 이후로
모든 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야곱은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을 만나고 그의 아들을 축복해 주기 위해 데려오라고 합니다(9).
기도는 씨앗과 같은 것입니다. 씨앗을 심어 놓으면 적든 많든 열매를 거둡니다. 본인과 자녀를 위해 좋은 것으로 심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부모 밑에 있는 자녀가 지금은 시련이 있을지라도 안심할 수 있습니다. 야곱, 요셉도 시련이 있었지만 기도를 심은 씨앗은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험악한 인생을 살았던 야곱은 자기 이름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습니다. 눈도 안 보이는 야곱은 조상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요셉과 그 자식들에게 소개합니다. 그 하나님은 자신을 기르시고 보호하시며 모든 환난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이셨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15-16).
야곱은 다음세대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심히 번식하기를, 그들과 함께 하시기를, 그들의 미래를 인도하사 약속의 땅으로 돌아가 행복한 날을
위해 축복해 주십니다. 기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다음 세대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귀한 일은 복을 빌어 주는 것입니다.
다음세대와 이웃들을 향한 축복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복된 사람이 되고, 우리가 받은 은혜와 축복이 다음세대에 넘겨지게 됨을 믿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적용] - 나는 기도의 절대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지, 기도시간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
기도의 중요성에 대하여 자녀들에게 교육하고, 그들을 위해 축복하고 있는지요? -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을 정리하고 새롭게
결단하십시다.
[기도] 찬양받으시기 합당하신 하나님, 그동안 약한 저를 붙들어 주시고 기도에 응답의 열매를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고 불안해하며 믿음으로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허락하신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육신적인 것에만 치중함을 용서하시옵소서. 이 베부터 믿음으로 축복하며 다음세대를 세워가는 행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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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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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와 끈기
목사들은 사람보다 일에 집중하기가 쉽지만,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의 핵심은 사람이다. 이는 모든 직원과 리더, 팀원들이 명심해야 하는, 교회를 건강하게 유지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역이
사람들을 집어삼켰다가 뱉어내는 기계가 되어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과 냉소만 나긴다면 우리의 존재 이유가 파괴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가능성을
발휘하고 힘을 얻고 잘 준비되고 돌봄과 사랑을 받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일을 하게 해야 한다는 목적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로스
파슬리의 [좌충우돌 행복한 우리교회] 중에서-
교회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시고 세우고 보내십니다. 일이 우선되면 사람은
도구가 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 우선입니다. 물론 일로 인해서 그 믿음이 자라기는 하지만 일 자체로 사람을 매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고, 건강한 교회를 꿈꾸며, 한 영혼이 온전히 세워지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일로
지쳐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거나 일하지 않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무능한 종이 되는 것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세우는 것에
기준을 가지고 사역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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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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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잠3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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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무현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아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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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창조하는 사람들 - 잠언 15:13-17 |
13.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14.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 15.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 16.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17.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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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 되고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신앙인으로 행복할 수 있는지, 내가 행복해야 가족과 이웃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마냥 기다린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원도 가꾸어야 아름다워지는 것처럼, 우리의 행복도 가꾸고 창조해야 합니다. 행복은
관계속에서 얻고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회복을 위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행복을 창조하기
위해서 약점은 인정하고 좋은 점은 칭찬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금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내 마음은 주위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가족과 직장, 교회에서도 남의 말이 나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행복을 위한 나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서로에게 좋은 말들이 필요합니다. 의사가 우리 몸을 처방하고 치료와 약을 쓴다고 해서 모든 병이 치료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심령과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야 근본이 회복됩니다.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엔돌핀의 4천배의 효과가 있는 다이돌핀이
나온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와 부활의 신앙을 깨닫게 될 때 최고의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예배에 집중을 하고 하나님을 경험하고 감사와
기쁨으로 찬송해야 합니다. 죄 용서함 받은 그 희열과 감격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행복의 창조를 위해 밝은 자화상을 가져야 합니다.
16절에는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씀합니다. 비교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경외하며 사는 것이 행복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존감을 높여야 합니다. 화목을 도모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입니다. 17절에서 “살진 소를 먹고 미워하는 것보다 채소를 먹어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가족 간의 대화와
화목을 도모하고 살아야 합니다. 가족이 있어도 대화가 단절되면 외로움 속에 살아갑니다. 행복은 우연히 가만히 있는데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을 만들어 가고 창조해 나가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적용] - 나는 타인에 대하여 칭찬하는
편인지 비판하는 자인지 점검해 보십시다. - 나의 지존감과 자화상을 살펴보고 고쳐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정리해 봅시다. - 나와
화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성령의 도움을 간구하십시오.
[기도] 복되신 하나님, 행복하기를
원하면서도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 신앙인답게 칭찬하고 격려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확인하고
신앙적인 자화상을 갖게 하시옵소서. 생각과 말을 지켜주시어 화평을 도모하는 주님의 도구로 행복을 창조하는 삶으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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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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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치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것은
단순히 바라보고 감상하기에 만족스러웠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쓰인 ‘보다’는 단순히 본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끔 미술관에 가서
작품들을 감상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화는 우리가 이해하기 쉽지만 추상화는 그림인지 장난인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때 어린아이가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멋지다고 한다고 해서 명작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던 그림도 최고로 권위 있는 전문가가
인정하면 가치가 달라집니다. 미술 작품은 평가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중요성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김남국의 [창세기 파헤치기]
중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 선언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긍정하는 것에 대해 죄는 부정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의 회복은 다시 우리 자신을 긍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경험하면 하나님의 창조 경륜이 보입니다. 우리를
유일하게 가치를 부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 살아가면서 우리가 듣는 최고의
평가입니다. 내가 우리가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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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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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
아비를
저주하며 어미를 축복하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앞니는 창검 같고 어금니는 군도 같아서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기켜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 잠
30:11~1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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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무현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아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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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됩니다 - 로마서 3:11~22 |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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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나의 죄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아니, 심지아 하나님 앞에서 조차도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숨기기 시작하면, 회복될 수 없습니다.
내가 암에서 치료되기 원한다면, 내가 암이 걸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신체의 여러 증상이 분명히 암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암에 걸리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암에서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마치 의사의 진단과도 같아서 우리가 어떤 상태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나는 이 정도는 아니야!”라고 말하고 싶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래도 내가 다른 사람보다는 착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거짓말을 종종 하지만, 입으로 남을 죽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입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한 적은 있어도, 누군가를 저주한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도 나는’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이상, 우리에게는 가망성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이 내 입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치료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나를 온전하게 치유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적용] 내가 회개해야 할 것들을 ‘개인 기도카드’에 적어보면 어떨까요? 내가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잘못 행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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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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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이
당신의 어깨 위에 있다. 교회 안의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당신은 예배 중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책임이 있다. 예배당 안의 영적 온도와 찬양하는
목소리의 크기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참여도, 내용의 성경적 정확성, 예배 요소들의 적절한 진행은 전적으로 당신의 책임이다. 무엇보다도 당신이
최선을 다해야만 예배하는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더 자주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은 예배 중에 임하길 원하시지만 잘못된 계획이나 실행, 수평적인
내용, 무엇보다도 믿음이 부족한 예배 속에는 임하시지 않는다. -제임스 맥도널드의 [버티컬 처치] 중에서-
교회는 함께
자발적인 책임을 가지고 살아가는 유기체적 공동체입니다. 서로가 은혜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발적 신앙과 공동체적 책임을 가지고 사는 삶이 있을
때 교회는 잔소리를 듣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곳이 됩니다. 함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손을 잡고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는 성숙함이 다음세대를 세웁니다. 다음세대가 일어나는 것은 먼저 믿는 우리의 몫입니다. 더욱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기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가는 공동체성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시켜서 하는 신앙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의 마음으로 자발적인 참여가 있어야 진정한
예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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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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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한
줄 알지 못하여> |
족한
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잠30: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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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무현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아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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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 - 렘 23:23-32 |
2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25.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26.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27. 그들이 서로 꿈 꾼 것을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조상들이 바알로 말미암아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2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2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30.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3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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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 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24절). 우리는 흔히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데, 다윗도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시 139:7-8)라고
했고,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니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 139:2-4)라고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안 계신 곳이 없으십니다.
내가 꿈을 꾸었다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25절). 그곳이 어디든 안 계신 곳이 없으신 하나님,
온 세상을 엄정하게 감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당연히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행각도 밝히 보고 또 듣고 계십니다. 흔히 거짓 선지자들은 <내가
꿈을 꾸었다>, <하나님이 내게 꿈으로 계시하셨다>며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꿈을 통해서 계시하십니다(민
12:6). 그러나 모든 꿈이 다 하나님의 계시는 아니며 더구나 거짓 선지자들은 꾸지 않은 꿈, 혹은 전혀 계시와 상관없는 꿈을 마치 하나님이
주신 계시인 것처럼 제편리한대로 해석하여 사람들을 기만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엉터리 예언을 일삼는 거짓 선지자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황당한 꿈 이야기에 속아주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난히 꿈이나 환상 같은 것에 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무슨 얘기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며 추종합니다.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것에 미혹되어 이단에 빠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도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그렇게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며 백성들을 현혹했다는 것입니다.
미혹하는 자를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2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기만하며 계시를 빙자하여 꿈 얘기를 늘어놓는 거짓 선지자들을 마냥 두고 보시지 만은 않습니다.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않았고 그들이야 말로 이 백성에게 백해무익이라> 심지어 그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이라며 내가 반드시 <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치시는 징계와 심판은 무섭고 혹독해서 꿈으로 백성들을 기만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모조리 멸하실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세상에 해악을 끼칠 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적도 없는 거짓 선지자들이
결코 적지 않음을 잊지 맙시다.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기억하며 미혹되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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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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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리더
진정한 리더는 위기에 강하다.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쳤을 때 리더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절대 책임 전가해선 안 된다. 리더는 솔선수범하며, 공평하며,
희생할 줄 알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기꺼이 수정하며, 원칙을 근거로 행동하되 유연하며,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며, 모두에게 인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안종혁의 [인생, 거룩한 모험에 던져라]
리더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장 앞에 선 개척이며, 삶의
샘플이 되어 주어야 할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리더는 공동체의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유연함이 있어야 합니다. 리더는 스스로가 부족함을
인정하며, 오히려 함께 기도하며 세워갈 것을 부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리더는 모든 것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인정하고 함께 할
사람들을 세워가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 부분에서 리더로 세우시고 은사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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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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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지
못하는 것> |
내가
심히 기이히 여기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곧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쉬의 자취와 반석 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니는
배의 자취와 남자와 여자와 함께 한 자취며
-잠30:18,19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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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이무현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아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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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한
말씀 - 렘 23:33-40 |
33.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가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34. 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안을 벌하리라 하셨다 하고 35.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 하고 36.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사용함이니라 하고 37. 너는 또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무엇이라
대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냐 38. 너희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 말씀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니 너희는 말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였은즉
39. 내가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리며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버려 40. 너희는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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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는 표현이 무려 11번이나 등장합니다. <엄중한 말씀>이라는 뜻의 히브리말 <마사>는
<짐을 들어 올리다>는 뜻인 <나사>에서 유래한 말로 거짓 선지자들의 꿈 이야기에 빠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백성 모두가
배도의 길에 나섬으로써 결국은 하나님께 큰 누가 되고 짐이 되고 말았다는 뜻인 듯 합니다. 그랬기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가
묻거든 ...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벌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고 그 발걸음을 가볍게 해드려야 할 택하신 백성이
도리어 여호와께 큰 부담이 될 때 결국 하나님은 엄중한 심판을 선고하실 수 밖에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인가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묻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33절). 성경에는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겠다는 말씀이 참 많이
나옵니다. <...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수 1:5-6).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입이라>(신 31:6).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셨느니라>(히 13:5). 그런데 여기서는 반대로 <내가 너희를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실로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백성들을 속이고 거짓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한 선지자, 제사장들에게 선고하신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맹목적으로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와 모든 것을 엄정하고 엄중하게 감찰하신 후 선고하십니다. 부디 <내가 너를 버리지
않겠다> 하시는 구원의 음성을 들으실 지언정 <내가 너를 버리겠다> 하신 심판의 선고를 받는 불행한 성도가 되지 않으시길
빕니다.
너희는 영원한 수치를 당하리라 <너희는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40절). <영원한 치욕과 영구한 수치>, 똑같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요 패전국임에도 독일과 일본은
과거사의 인식과 그 청산 방식에 있어서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를 보입니다. 독일의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독일은 죄의식을 가지고 회개하며
과거를 청산하려고 애쓰는 반면 일본은 과거를 수치와 치욕으로 여기며 오직 과거 자체를 부정하고 회피하려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과거사 반성이야말로 독일인들에게는 전쟁 중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는 대단히 중요한 치유과정>이라고도 했습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이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영원한 치욕과 영구한 수치를 당케하려 하신 것도 그들 역시 일본인들처럼 끝까지 반성이나 회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공할
범죄에도 불구하고 독일인들처럼 진심어린 뉘우침과 회개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그렇게 치욕과 수치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허물을 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사>(요일 1:9) 치욕과 수치를 면케하시지만 끝끝내 뉘우치지 않고 부정하고 회피하려 들면 마침내는 치욕과 수치를 면치 못하게 하시는
엄중한 여호와이심을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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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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