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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친밀한 만남으로
헨리 나우엔은, 교회 생활에 불만을 품고 교회에 나가지 않는 한 여 집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말하는 교회 안의 불평들은 모두 다 당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다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오직 주님과 당신과의 관계입니다. 앞으로 2주 동안 매일 5분씩만 조용히 앉아 주님과 함께 있기를 기도하고 그분의 깊은 터치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분명히 당신이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최성욱 목사의 ‘축복의 질서를 아십니까?’에서-
교회에 와서 인간적인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은 기적도 아니요, 봉사도 아니요, 선교도 아닙니다. 그보다 먼저 하나님과의 친밀한 만남으로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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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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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없이는 > |
나는 눈은 있으나 보지 못하는 자와 같고, 입은 있으나 소리 내지 못하는 자와 같고, 귀는 있으나 듣지 못하는 자와 같습니다. 또 팔은 있으나 없는자와 같으며, 다리는 있으나 걷지 못하는 자와 같습니다. 나는 호흡하고 있으나 죽은 자와 같습니다. 나는, 하나님 나의 아버지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기도합니다. 기도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입술이 되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기적을 만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일어나 걸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불어주시는 호흡으로 살아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나는, 하나님 나의 아버지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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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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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 창세기 33장 9~20절 |
9.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15.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16.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18.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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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드디어 야곱이 에서를 만나서 화해하는 장면입니다. 33장 3절을 보면, 야곱은 에서에게 용서를 구하는 심정으로 몸을 일곱 번 땅에 엎드리며 그에게 걸어갑니다. 4절을 보면, 에서는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야곱에게 달려가서 그를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바로, 지난 20여 년 간 미움과 복수의 마음으로 가득 찼던 그 마음이 물 녹듯 사라지는 화해의 시간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툼이 어떻게 끝날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자신을 내려놓아야 가능합니다. 아니, 내려놓을 뿐만 아니라 전심으로 하나님께 그 모든 과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회개와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나가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후에 야곱이 준비한 선물을 목격한 에서는 동생에게 그 선물을 되돌려 주려고 합니다. 그러자 10절을 보니까, 야곱은 형에게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간청합니다. 야곱은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형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그러자 에서는 그 선물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을 갖게 된 이후에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야곱의 이 고백은 충격적입니다. 왜냐하면 야곱은 지금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화해의 순간에 갑자기 에서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로 바뀌게 된 것일까요?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야곱의 마음이 회개와 용서로 가득 차는 순간, 자신의 앞에 있는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순간, 내 마음에서 무거웠던 사람들과 환경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로 변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루신 일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미워했던 모든 것들 속에서 나를 이끌어주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겁니다. 오늘, 당신의 삶 속에서 이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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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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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하면 길이 있다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윌리암 세익스피어는 ‘이제 하나님께 찬양하라. 그는 믿는 사람들에게 암흑이 생기면 빛을, 절망이 생기면 위안을 주신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은 노래하기를 ‘폭풍이 지난들에도 꽃은 핀다. 지진에 무너진 땅에도 맑은 샘은 솟아오른다. 불에 탄 흙에서도 새싹은 난다. 우리는 늘 사랑과 빛에 가득 찬 자연의 속삭임을 듣자.‘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 중에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하며. 주님과 함께라면 어느 곳에도 길이 있음을 믿어야한다. -작자 미상의 ‘세계의 믿음 시’중에서-
밤이 오면 언젠가 새벽이 찾아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동토가 녹고 거기 새싹이 나고 새로운 꽃이 피는 것입니다. 곤고합니까? 견딜 수 없는 고난이 나를 사로잡습니까? 그로 인하여 슬픔과 낙심이 있습니까. 원수가 우는 사자처럼 달려들고 있습니까? 죽음과 원수의 침략을 눈앞에 두고 눈물로 간구한 히스기야를 생각하십시오. 위기가 닥쳐올 때 전능하신 분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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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옥엽 국제펜클럽 회원 순수문학인협회 상임 이사 크리스챤문학상 수상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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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밖에 > |
시편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Whom have I in heaven but you? And earth has nothing I desire beside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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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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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과 고독의 선지자 - 렘 1:1-3 |
1.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사장들 중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라 2.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 3.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여호야김 시대부터 요시야의 아들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십일년 말까지 곧 오월에 예루살렘이 사로잡혀 가기까지 임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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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높이셨다>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예레미야는 주전 647년 경 예루살렘 북동쪽 약 7km 지점의 베냐민 땅 아나돗에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나 20세가 되던 주전 627년 경 선지자의 소명을 받고 예루살렘이 함락되기까지 약 40년간 선지자직을 수행한 비운의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늘 동족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고 조국 유다의 멸망을 선포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반역자로, 매국노로 낙인이 찍혀 동족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배척당했으며 때로는 매를 맞고 구덩이에 던져지기도 했으며 감옥에 갇히는 등 온갖 핍박과 고통을 다 당하다 결국은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벨론에 투항하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동족의 운명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연민으로 늘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가 조국 유다 앞에 이 것 만이 살 길이라며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으로는 하나님께 회개하라는 촉구요 정치적으로는 바벨론에 항복하고 그들과 화친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만군의 하나님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당하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38:17-18). 예레미야의 이런 예언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과 계시에 근거한 것으로 당시 국제사회의 역학 구도와 정세를 냉정하게 진단한 처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의 그런 선포는 부패한 백성들과 유다 궁중의 친애굽 세력들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되고 배척됐습니다. 이렇듯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는 처음부터 <심판과 멸망>이라는 몹시도 무겁고 비극적인 주제였음에도 그의 개인적인 정서와 심성은 지극히 온유하고 순수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예루살렘 함락에 부처 자신의 절절한 슬픔을 토로한 5편의 비탄시인 예레미야 애가를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징계 중에도 소망을 가지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의 국제 정세를 보면 앗수르 제국이 내분을 겪으며 급격하게 쇠퇴하고 있었고 그 틈을 타 바벨론이 새롭게 발흥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바벨론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시키고(주전 612년), 이어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까지도 제압함으로써(주전 605년) 근동의 독보적인 패자가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예레미야가 그토록 경고해 온 예루살렘도 함락시키고 말았습니다(주전 586년). 예레미야는 총 12회의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불가피성과 회복의 약속을 반복하여 선포함으로써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한편 소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46장부터 51장까지는 이방 나라들을 향한 예언으로 범죄한 나라는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선포함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52장은 예루살렘이 실제 함락되고 유대인들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선지자의 예언이야 말로 반드시 성취되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징계는 그것이 아무리 처절하고 모질더라도 다 하나님 백성의 유익을 위한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레미야 시대나 지금 이 시대나 다 마찬가집니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해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유다였을지라도 하나님의 새 언약의 메시야를 바라보며 소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예레미야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가장 뚜렷한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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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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