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에 대한 안보적 교훈
장 순 휘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 2014-03-27 10:03:48
■ 개요
손자병법 모공편(謀攻篇)에 "부전이 굴인지병, 선지선자야(不戰而 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 하여 ‘싸우지 아니하고 적을 이기는 자는 최고 중에 최고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전쟁을 피하여 싸우지 않고 합법적으로 크리미아(이하‘크림’)반도를 병합한 푸틴의 전략전술은 훌륭하다고 할 것이다. 마치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가 폴란드를 점령한 1939년 9월 1일부터 10월 6일까지 35일간 공격으로 종결했던 것보다도 더 짧은 2014년 3월 1일부터 3월 21일까지 22일간 무력사용없이 점령한 것이니 세계전사에 완벽한 러시아의 전승으로 기록될 것이다.
■ 우크라이나 사태의 진행과 결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요약하면 ‘우크라이나인들이 반정부시위를 해서 권위주의 친러 정권을 몰아냈더니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순식간에 점령하고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하여 합병시켰다.’ 라는 정도로 정리될 것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를 격안관화(隔岸觀火)로만 취급해서는 안되는 것이 우리의 국가안보적 관점에서 남과 다르기 때문이다.
1991년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독립을 하고, 원래 구소련 영토였던 크림반도는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 영토가 되어버리면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우크라이나는 원래 우크라이나계가 거주하는 서부지역(친서방)과 러시아계인 동부지역 그리고 크림 자치공화국(친러)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무엇보다 크림반도에는 러시아의 ‘흑해함대’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협정을 맺고 크림반도의 여러 군사기지들을 임대하고 있다.
2010년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는 2017년 만기되는 세바스토폴 해군기지의 임대계약을 25년 연장해준다(2010년 카르키프협정). 따라서 러시아는 2042년까지 이 부동항을 쓰게 되었다. 여기에 러시아의 국익이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즉 러시아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이 들어서야하는 사활적 국익이 걸려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흑해함대가 주둔해야할 부동항(不凍港)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태의 발단은 2004년 동부출신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당선이 부정선거 시비로 정국이 흔들거리다가 오렌지혁명으로 실권하고, 서부출신 유시첸코와 티모센코가 집권한다. 그런데 이 친서방정권이 내부정쟁으로 경제파탄에 빠지고 국가부도위기에 몰리자 결국 IMF지원까지 받았으나 구조조정에 실패한 경제위기에 놓여있었다. 이때 친러정권 야누코비치가 티모센코를 누르고 집권하였으나 2014년말까지 IMF차관 130억 달러를 갚아야하는 시한부 위기를 맞고 있다. 이것을 푸틴이 탕감해준다는 유혹을 미끼로 우크라이나의 EU가입을 포기하게 만들면서 단순한 우크라이나의 국내문제가 아닌 국제적인 문제로 변질된 것이다.
여기에 지난 2월초 반러데모가 발생하여 야누치코프 정권이 무너지고 무정부상태가 되자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직접 개입이 신속히 시행되었다. 사태의 진행일지는 2월21일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탈출하고, 22일 의회가 야누코비치 탄핵안을 328대 0으로 가결했다. 그리고 야권인사 투르치노프를 임시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선출하였다.
그후 26일에는 설상가상으로 친러 무장세력이 크림자치공화국 청사와 의사당을 점거하는 소요사태까지 발생하여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 빌미를 제공하는 정국이었다. 이때 27일 친러 세르게이 악쇼노프가 크림자치공화국 총리로 취임하여 러시아연방으로 합병할 것인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주민 찬성 97%로 통과되었다. 3월 1일 러시아의회는 푸틴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내 군사력 사용권한을 부여하자마자 즉각 러시아군은 크림반도의 통제권을 무력으로 장악해버렸다.
이때 동원된 병력은 러시아 흑해함대병력과 은밀 침투한 소수정예부대로 확인되었다. 이렇게 현지 주둔병력이 유사시에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뒤늦게 우크라이나 정부는 군에 전면 전투태세를 명령하였고 예비군 동원대기령을 발동했으나 이미 크림반도 내 우크라이나군은 무장해제 되었고, 러시아군과 친러 자경단이 접수한 상태였다. 러시아의 전격적인 군사개입이 주도면밀했으며, 푸틴의 주도하에 러시아군의 작전상황은 성공적으로 종료되었다.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설마하다가 손을 쓸 시간도 없이 뒷통수를 맞은 격이라 할 것이다.
■ 러시아의 전략전술적 승리
뒤늦게 3월 1일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90분간 푸틴과 전화를 통화하여 러시아의 불법침략을 지적하고, 병력철수를 요구했고, 2일 매르켈 독일 총리도 푸틴과 통화하여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를 통한 우크라이나 유혈사태에 대한 진상조사에 합의하는 수준이 미봉책으로 제시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방측의 외교적 접근을 무시하고 3일에도 러시아군은 크림반도 전역에 대한 병력배치를 계속했다. 4일에는 푸틴이 첫 기자회견하여 무력사용에 의한 개입을 자제하겠다고 선언했으나 그의 말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이미 푸틴은 크림반도 내의 상황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키에프에 도착하여 우크라이나에 10억불 긴급지원을 약속하면서 친서방 정권을 지원하였다. 5일에는 EU가 우크라이나에 차관과 무상공여 등 110억 유로 지원계획을 발표하였으나 이미 러시아의 크림반도 접수 작전은 마무리 단계가 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크림자치공화국에 대한 제한된 군사목표를 선정하고 지연전으로 들어갔다.
6일에는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에서 러시아 귀속을 묻는 주민 찬반투표 결의안이 채택되어서 미국와 EU가 개입할 명분이 차단당하는 상황으로 진전되었다. 7일에는 러시아 하원이 크림 자치공화국 의회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주민투표 지지선언이 나왔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크림자치정부에 주민투표 금지령을 통보했으나 이미 통치권위를 상실당한 상태였다. 10일에는 악쇼노프 크림 총리가 "러시아로 병합을 위한 준비가 진행 중이다."라고 선언하였으며, 11일에는 크림 자치의회가 100명 재적의원 중 78명의 찬성으로 독립결의안을 채택하였다. 결국 16일 크림 자치정부는 주민투표를 강행하여 97%의 찬성으로 러시아에 합병이 결정되었다. 18일 푸틴은 크림측과 합병조약을 체결하여 크림반도는 러시아영토로 귀속이 되었다. 20일에는 러시아 하원이 크림반도의 합병조약을 비준하여 <우크라이나 사태>가 종결되었다. 러시아 푸틴의 완승이었다.
■ 미국 ․ EU의 대응실패와 6 ․ 25 전사의 교훈
우크라이나 사태 분석에서 나온 사실(fact)은 우선 미국과 EU국가들의 정보판단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했다는 것이다. 서방측을 대표하는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러시아의 정황과 의도(intent)를 예의주시하면서도 여러 가지 정황에 대한 정보오판을 함으로써 결정적인 실기(失機)를 하였다.
미국 WSJ은 정보군사전문가들이 러시아군의 크림반도 주위에 병력집결을 경고하였고, 미 군수뇌부는 크림 반도에 대한 러시아군의 작전기도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이번에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크림반도를 점령한 병력은 사전에 치밀하게 침투시킨 소수 정예병력이었으니 러시아는 정보전에서 미국의 정보기관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군은 전쟁원칙의 관점에서도 원칙을 준수한 완전작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먼저 정보의 원칙과 기만 ․ 기습의 원칙을 철저히 지켰으며, 단일목표의 원칙과 공세 ․ 기동 ․ 집중의 원칙을 적용하여 최단시간에 크림반도 내 우쿠라이나군을 무장해제시켰다.
또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서 대규모군사훈련을 가장한 양동작전과 정치적인 위장전술을 동시복합적으로 시행하여 미국과 서방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의 기도가 주도면밀하여 미국이 알았다 하더라도 당시 러시아의 크림반도 내 장악속도가 워낙 빨라서 미국이 대응에는 현실적으로 불가했다는 판단을 했다는데 결과적으로 근인(近因)은 바로 정보판단의 실책이 중대하다고 분석했다고 한다.
과거 6.25전쟁 시 중공군 개입에 관한 유엔군의 정보판단 실패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9 ․ 15 인천상륙작전을 깃점으로 총반격을 나선 유엔군과 국군은 질풍노도와 같이 북진을 하다가 1950년 10월 25일 운산을 통과하던 국군 제1사단(사단장 백선엽)이 중공군 1명을 포로로 잡았는데, 중공군 2만여 명이 운산과 희천 북방에 진출하고 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 정보는 즉각 긴급전보로 미 제8군사령관과 일본 동경에 맥아더장군에게 보고가 되었으나 유엔군사령부는 중공군의 전쟁개입을 믿으려 하지도 않았다. 이때 벌써 중공군 제4야전군예하 18개 사단 20만명과 제9․13집단군예하 30개 사단 30만명이 압록강을 도하하여 북진하는 유엔군과 국군을 포위격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전사는 기록하고 있다.
만일 그 당시에 유엔군지휘부가 중공군 개입에 대한 정보를 예의주시하고 사전에 대비를 했다면 전쟁의 양상을 바뀌었을 것이다. 천재일우의 기회인 중공군 포로의 진술을 묵살하면서 비극의 1 ․ 4후퇴가 불가피하게 되었고, 끝내 통일의 기회를 놓친 결과가 되었다.
이렇게 전장에서 정보의 분석판단은 작전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미국이 최근 러시아에 대한 감시 위성과 통신감청을 강화하고, 러시아군의 사전 정보수집과 분석 능력 개선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 결언
2014년이 시작되면서 벌어진 드라마같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서 유사시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발발했을 경우를 가정해본다면 과연 시간적으로 한미동맹의 후속조치가 계획대로 조치될 것인가를 우려해볼 수 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친러 정권 비호 하에 무력침략행위가 미국과 서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었다는 점이다. 자칫 북한에게 전략적 오판을 하게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초기 전면전에서 북한의 군사력의 우위는 불가피한 상황인데 미국의 즉각적인 동맹전력에 의존하는 방어적 입장에서는 이번 일이 결코 남의 일만이 아닌 것이다. 특히 북한은 공격을 한다면 기만전술로 아군의 방어를 무력화시킨 후 기습으로 공세를 시작할 것이다. 사전에 특수전부대원들의 침투가 있고, 전 전선에 걸쳐 포병화력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다. 그리고 공군력을 가지고 아군의 주요 목표와 병참선을 타격할 것이 예상되는 그야말로 전후방 동시전장이 일어나는 초기 대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이러한 초기 기습을 극복하는 방어력이 전쟁 승패의 결정적인 관건이 될 것이기에 우크라이나 사태는 전술적인 측면에서 다시 분석하고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북한의 기습을 대비하는데 중점을 두어야한다. 기습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판단하고, 초기 대응에 성공한다면 전투력의 보존과 더불어 전쟁지속력에서 결국 북한의 공격을 무력화시킬 승산이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진행과정에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전격적으로 합병한 전략전술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이와 같은 군사적 행동이 가능하리라고 어느 군사전문가도 상상해본 일이 없는 결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에 대한 신뢰차원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초기 상황에 대한 미국의 동맹전력투입의 신속성을 재검토하여야 한다. 위기의 시간에 초기전력 지연투입으로 국방안보의 위기를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거듭 우크라이나 사태의 크림반도 러시아 합병이 주는 국가안보적 교훈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평화를 바라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는 베제티우스나 "천하가 평안하다고 해서 전쟁을 잊어버리면 위태롭게 된다"(天下雖安 忘戰必危)라는 사마양저(司馬穰苴)의 경구를 한시라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군은 "항재전장(恒在戰場)"의 정신무장을 가지고 "爲國獻身 軍人本分"을 다해주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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