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6월8일 QT - 평범한 사람들을 선택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6. 11. 21:12



평범한 사람들을 선택


열두 제자가 막중한 과업을 위해 훈련 받은 기간은 18개월이 못 된다. 더구나 열두 제자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제2군이나 차선책도 없었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전략인가? 교회 설립과 복음 전파가 약점투성이인 열두 명의 보통 사람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었던 셈이다. 더욱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만유의 주님을 배신할 만큼 사악했다.
-존 맥아더의 [예수님이 선택한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내세울 배경과 경력이 없는 자들입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랍비를 제자로 부른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내 삶이 너무 평범해 보이거나 약점투성이라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들을 불러서 은혜의 도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소금처럼
세상이 썩지 않도록, 이 땅이 상하지 않도록, 소금이 되라, 소금처럼 세상을 지키라 예수님의 명령을 늘 기억합니다
글쓴이 : 박종혁 마다바름 스튜디오
계간지 <단비> 발행인
죽음에 대하여 - 욥 14:7-14
7.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8.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 지라도

9.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10.사람은 죽으면 소멸되나니 그 기운이 끊어진즉 그가 어디 있느뇨

11.물이 바다에서 줄어지고 하수가 잦아서 마름같이

12.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13.주는 나를 음부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14.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렸겠나이다

앞에서는 인생을 얘기한 욥이 여기서는 다시 죽음을 얘기합니다. 중한 병, 너무도 고통스런 병을 앓고 있는 탓에 욥은 자주 죽음을 말하고 또 죽음을 많이 생각한 듯 합니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결코 건강순도 연령순도 아님을 잊지 마십시오. 요즘은 유난히 젊은 사람들의 죽음을 자주 봅니다. 따라서 누구나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현명한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다
<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장정이라도 죽으면 소멸되나니 인생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느냐>(7-10절).
나무는 한 번 베인다 해도 그 그루터기가 남아 있으면 다시 움을 틔우며 가지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두 번 다시 살아나지 못합니다. 부활하기 전까지는 그 운명이 고정됩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셨느니라>(눅 11:26).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에 나오는 말씀인데 죽음은 그곳이 지옥이든 천국이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사건입니다. 단지 살아 있을 때만 아직 가능성이 있고 내일이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12절).
성경은 죽음을 잠에 비유합니다. 주님도 친구 나사로의 죽음에 대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고 하셨고,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다>(행 13:36)고 했습니다. 또 부활의 증인들에 대해서도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고전 15:6),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이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이해한 것은 부활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잠을 잔다는 것은 언젠가는 다시 그 잠에서 깨어난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마찬가집니다. 죽음이란 깊은 잠이지만 부활의 새 아침이 밝아오면 다 깨어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고전 15:51). 그래서 인생은 허무나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숨기시는 사건이다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13절).
욥이 자기를 스올에 감추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욥이 죽기를 원했던 것은 단지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언젠가는 부활하여 누리게 될 더 나은 삶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소서>. 스올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처일 뿐 아니라 피난처입니다. 하나님은 스올의 열쇠를 가지고 계셔서 지금 우리를 그곳에 들어가게도 하시고 부활 때 거기에서 우리를 나오게도 하십니다. 우리가 값진 보화를 은밀하고 안전한 곳에 감추듯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을 안전한 스올에다 감추십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 안에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많은 생물들을 숨기시므로 물의 심판으로부터 그들을 구하셨듯이 그렇게 우리를 숨기셨다가 정하신 때가 이르면 다시 모두 부활하게 하사 새 삶을 살게 하십니다. 기대하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