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鶴山의 個人觀

순리적인 삶의 자세

鶴山 徐 仁 2011. 7. 5. 21:05

 

순리적인 삶의 자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잘 산다'하는 말을 할 때는
두 가지 정도로 대별되는 구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는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가진 자이고, 다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사람이다. 물론 유형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잘 살기보다는
무형적이고, 정신적으로 잘 사는 게 더 우월하다고
구분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존경의 대상은
후자로 성공한 사람이 더 많다 것은 공감할 것이다.
 
속담처럼,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고 하면,
유형적 자산을 축적한 사람들도 추앙을 받겠지만,
세상사에서는, "정승같이 벌어서 개같이 산다"
말이 더 어울리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과는 아주 다른 차원에서
사람들이 이승에서 착하고, 선하게 살다가 죽으면
저승에서 반드시 보상이 따른다는 확신이 있다면
사람들의 삶의 모양새가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전 야당에서 추천한 대법관 후보자도
국회청문회에서 보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다는데
보통 사람들이 정작 사후의 셰계를 확신한 가운데
현실 삶을 초연하게 꾸려나가긴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유한한 인생여정이란, 평범한 진리이기에
살면서 중병으로 생사의 갈림 길에 놓이지 않으면
감각적으로 즐거운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쾌락에
대부분의 것들을 투자하며 살게 되고마는 것 같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사회생(起死回生)한 사람들은
여느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는
전연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런 극단적 상황이 없어도 참나를 찾을 수는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에 의탁한다거나 수련을 통해
극단의 처방을 받지 않고서도 스스로 참나를 찾아서
사는 동안에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치우침 없이
수분을 깨닫고, 과욕의 늪을 헤어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살이 가운데 가장 삶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라면
소유욕 때문에 항상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삶이니
기본적으로 의식주만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삶이면
결코, 스스로 궁핍한 삶이 아니라고, 확신해야 한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올 때부터 모두가 다른 모습으로
저마다 다른 몫을 받은 채 태어났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냥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대로 열심히 살아가는게
인생여정을 순리적으로 사는 것이 아닐 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