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을 꼬박 기다렸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의 굴욕을 씻어야 했다. 당시 타이완과 일본에 졌다. 중국에 이겨 겨우 동메달에 그쳤다. 자존심에 상처가 났다. 이후 마운드를 깎고 공인구 크기를 키웠다. 스트라이크존은 확대했다. 효과가 있건 없건 할 수 있는 일들은 다했다. 무엇보다 마음 자세가 달라졌다. 절치부심. 각오를 새겼다. 결과가 나타났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우승,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완벽하게 설욕했다. 한국 야구대표팀이 19일 아오티구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타이완을 9-3으로 눌렀다. 금메달이다. 그것도 5전 전승 완벽한 금메달이다.
▲ 환호하는 ‘천하무적 야구단’ 윤석민(왼쪽 두번째), 양현종(네번째) 등 한국 야구대표팀 선수들이 19일 아오티야구장에서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에서 금메달이 확정되자 서로 얼싸 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광저우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한국의 전력이 워낙 탄탄했다. 다른 팀들과 수준 자체가 달랐다. 사실 대회 내내 중심타선 김태균과 이대호가 그리 좋지 못했다. 중심타선이 흔들리면 타선 전체가 불안정해진다.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다가도 한순간 흐름을 상대에게 넘길 수 있다. 그러나 1번부터 9번까지 전반적인 타선의 힘이 상대팀들을 압도했다. 상위타선이 안 터지면 하위타선이, 앞타자가 못 치면 뒤타자가 받쳐줬다.
결승전에서도 비슷했다. 4번 김태균이 결정적 순간마다 삼진-병살-땅볼로 물러났다. 점수를 내야 할 때 못 냈다. 대신 강정호가 홈런 두개를 포함해 5타수 3안타 5타점을 올렸다. 추신수는 4타수 2안타 2타점을 때리며 꾸준히 활약했다. 도저히 질 수 없는 타선이었다.
투수진도 마찬가지였다. 선발과 불펜의 전력차가 거의 없었다. 에이스 류현진은 4이닝 3실점하며 불안했다. 그러나 뒤이은 윤석민이 5이닝을 무실점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대회 내내 송은범-안지만-정대현-봉중근은 제 몫을 다했다.
●허 찌른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
결승전 최고의 장면이었다. 6-3이던 7회 초 무사 1·2루에서 나왔다. 타석에 들어선 강정호는 번트 자세에 들어갔다. 누가 봐도 완벽한 번트 타이밍이었다. 한국은 추가점이 절실했고 병살타를 피해야만 했다. 타이완 수비진도 당연히 번트를 예상했다. 타석으로 극단적으로 다가서는 압박수비를 펼쳤다. 여기서 한국벤치가 작전을 바꿨다. 1스트라이크 1볼에서 페이크 번트 앤드 슬래시(번트를 대는 척하다가 강공으로 바꾸는 것)를 지시했다.
모험이었다. 실패한다면 경기 후반 분위기가 완전히 상대에게 넘어간다. 그러나 조범현 감독은 강정호의 작전수행능력을 믿었다. 강정호는 유격수가 3루 커버 들어가는 미세한 틈을 노렸다. 빈 공간으로 타구를 굴렸고 수비진을 통과했다. 2루 주자 조동찬의 슬라이딩도 좋았다. 살짝 타이밍이 늦었지만 과감하게 미끄러져 가며 포수의 태그를 피했다. 7-3. 귀중한 추가점이 나왔고 분위기는 완전히 한국으로 넘어왔다.
●각종 난관 이겨낸 우승
결과는 손쉬운 듯 보였지만 난관이 많았다. 합숙 시작하는 첫날 왼손 에이스 김광현이 안면마비로 대표팀에서 빠졌다. 타이완전 류현진-일본전 김광현의 투수 로테이션 구상이 어그러졌다. 투수진 전체가 컨디션이 안 좋았다. 이대호는 발목부상이 낫질 않았고, 김태균은 일본시리즈 뒤 휴식 없이 광저우에 합류했다. 추신수도 시즌 뒤 훈련을 하지 않아 타격감을 잃은 상태였다. 분위기가 어수선했지만 차곡차곡 준비를 잘했다. 결승전에서 시간을 역산해 컨디션을 끌어올려 갔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대한야구협회도 성심껏 대표팀을 지원했다. 어려움을 뚫고 우승을 차지한 원동력이다.
광저우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