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선우정·도쿄특파원
매년 30만명이 견학을 위해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자동차를 찾는다. 비즈니스맨이라면 한 번쯤 방문하는 제조업의 성지(聖地) 같은 곳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의 노하우가 응집됐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포장을 벗겨 내면 이곳만큼 비효율적이고, 일본 경제의 모순을 정확히 드러내는 곳도 없다.
도요타가 결산 발표 때 공개하는 자료 중 '보족(補足) 자료'라는 것이 있다. 해외 계열사를 제외한 국내 본사의 단독 결산이 담겨 있다. 도요타가 엔고(엔화 가치 급상승)에 얼마나 타격을 입었고 얼마나 극복했는지를 알려면 이 자료를 읽어야 한다. 해외 계열사는 엔고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지난 5일 4∼9월(일본 회계연도에서 상반기) 영업이익이 3231억엔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엔고와 리콜 파문을 감안하면 상당한 뒷심이다. 하지만 "엔고 위기를 극복했다"는 평가를 일본 언론에서 찾기 어렵다. 단독 결산에서 영업 손실 1494억엔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엔고로 하반기에 더 어려워져 본사의 단독 영업 손실이 연간 4900억엔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3년 연속 손실이다.
도요타는 기형적이다. 상반기 본사가 일본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161만대. 내수 부진 탓에 일본에서 팔린 차는 80만대에 머물렀다. 나머지는 손해를 보고 수출로 밀어냈다. 손실 1494억엔은 여기서 비롯됐다. 도요타 본사는 임금이 최고 수준이다. 해외 흑자 사원들이 일본의 적자 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다.
누구나 해법을 알고 있다. 국내 수요를 초과하는 과잉 설비를 해외로 보내는 방법이다. 손해 보는 수출은 중단하는 것이 나라에도, 회사에도 이익이다. 신흥국을 돕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도요타는 "국내 생산을 사수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면서 "환율 수준이 빨리 시정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사실상 정부에 외환시장 개입을 촉구한 것이다.
자동차 100만대 생산이 해외로 나가면 일본에선 15만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일본 정부가 세금과 엔화를 쏟아부으면서 장단을 맞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잘하는 일이 아니다. 해외 투자를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고부가가치산업을 일으켜 새 일자리 15만개를 만드는 것이 선진국의 정도(正道)일 것이다.
도요타는 일본 경제의 축소판이다. 해외 투자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 막대한 무역 흑자를 넘어선 것이 일본은 이미 5년째다. 도요타가 그렇듯 그 돈으로 흑자 국민을 키우지 못하고 적자 국민만 먹여 살리고 있다. 썩은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국내에선 금융과 유통 서비스를 희생했고, 해외에선 외환시장의 흐름을 꺾어 신흥국을 나락에 빠뜨렸다. 그래서 일본은 재기하지도 못하고, 존경받지도 못한다.
일본 경제가 재도약하는 순간이 있다면 일본이 도요타를 포기하는 순간일 것이다. 물론 언젠가 한국도 같은 길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비판도 찬사도 아닌 있는 그대로 일본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