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회개와 깨달음
가슴을 찢는 회개와 슬픔, 통곡과 목마름의 경험이 참된 신자의 길을 걷는 많은 이들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그들은 붐비는 인파 속에서 엄마 아빠를 잃고 입술이 파래지도록 울던 한 아이의 마음이 됩니다. 그 마음을 느낄 때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버리고 얻은 것들이 얼마나 가치 없는 것들이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김남준 목사의 ‘하나님과 동행함’ 중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체휼되고 우리의 온 존재가 엎드려지는 회개가 일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피조물로서의 인간존재의 고독과 한계를 알게 됩니다. 또 그런 우리를 자녀삼아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가운데 길을 잃고 탕자와 같이 방황했던 지난날.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 안으신 아버지의 마음이 우리의 가슴을 두드릴 때 우리는 이전과 전혀 다른,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
|
 | |
|
 |
|
가장 좋은 자전거 |
투박한 자전거 비싼 자전거 세발 자전거
모습과 종류와 상관없이 주인이 쓰시고자 한다면 그것이 바로 가장 좋은 자전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마21:2~3 Saying to them, "Go to the village ahead of you, and at once you will find a donkey tied there, with her colt by her. Untie them and bring them to me. If anyone says anything to you, tell him that the Lord needs them, and he will send them right away." Matthew 21:2~3 | | |
 |
글쓴이 : 박주원 현재 연극치료, 대안학교 교사 등 활동중 동덕여자 대학원 연극치료학과 재학중 유럽, 이집트, 쿠바, 멕시코 등 사진, 배낭여행 (2001~현재) |
|
| | | | | |
|
 | |
|
 |
2010년 3월 22일 - 마가복음 14: 10-21 |
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17.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가룟유가다 돈이 필요해서 그랬을까?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지막에 그 돈을 던져버리고 죽음의 길을 택했으니까요. 돈이 목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님을 팔아넘기게 만들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가룟유다는 자신이 꿈꾸던 구원의 방법이 예수님이 하시는 방법과 달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로 결정했을 겁니다. 그는 예수님이 언젠가는 해방자로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무력하게 져주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승리의 메시야로 이스라엘 땅에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진짜로 자신이 말한 것처럼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만찬이 있던 저녁에 이제는 끝이 왔다고 말하는 겁니다. 가룟유다는 그 방법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시겠다는 예수님이 못마땅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넘기게 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부와 명예를 해결해 주셔야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여전히 내 계획대로 이루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방법은 거절합니다. 아니, 그 방법은 아니라고 하나님께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서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변화되기 보다는, 세상이 변화되기를, 환경이 변화되기를 끝까지 요구하는 나의 모습 때문에 세상은 교회를 향해서 실망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오늘날 교회에는 복음이 추억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때는 나도 그랬지!”라고 신앙을 추억거리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제는 믿음의 자리로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새롭게 하소서! 새롭게 하소서! 새롭게 하소서! 늘 새롭게 하소서!”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가룟유가다 돈이 필요해서 그랬을까?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지막에 그 돈을 던져버리고 죽음의 길을 택했으니까요. 돈이 목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예수님을 팔아넘기게 만들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가룟유다는 자신이 꿈꾸던 구원의 방법이 예수님이 하시는 방법과 달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로 결정했을 겁니다. 그는 예수님이 언젠가는 해방자로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무력하게 져주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승리의 메시야로 이스라엘 땅에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진짜로 자신이 말한 것처럼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 만찬이 있던 저녁에 이제는 끝이 왔다고 말하는 겁니다. 가룟유다는 그 방법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을 이루시겠다는 예수님이 못마땅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팔아넘기게 된 것이 아닐까요?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부와 명예를 해결해 주셔야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여전히 내 계획대로 이루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방법은 거절합니다. 아니, 그 방법은 아니라고 하나님께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서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변화되기 보다는, 세상이 변화되기를, 환경이 변화되기를 끝까지 요구하는 나의 모습 때문에 세상은 교회를 향해서 실망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오늘날 교회에는 복음이 추억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때는 나도 그랬지!”라고 신앙을 추억거리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제는 믿음의 자리로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새롭게 하소서! 새롭게 하소서! 새롭게 하소서! 늘 새롭게 하소서!” |
 |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