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다 내어주심

鶴山 徐 仁 2010. 3. 20. 18:21



다 내어주심


예수님은 당신에게
잔치를 베푸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자리를 내주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당신이 만찬에 올 수 있도록
교통편과 비용을 지불해 주시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더 많은 것을 하셨다.
당신이 정식 복장을 갖출 수 있도록
친히 자신의 옷을 내 주셨다.
바로 당신을 위해 하신 일이다.

-맥스 루케이도의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중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겪었던
채찍질의 고통과 군중의 조롱,
옷이 찢어지는 굴욕과 수치,
그리고 못 박히고 창에 찔린 고통은
모두 우리를 위한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차갑고 더러운 마굿간에서 태어나
낮고 낮은 곳을 다니며 병자와 고아, 과부를 만나시고
황량한 광야에서 마귀에서 시험을 당하시며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형벌이라 불리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주님이 걸어오신 길은
우리 인간의 모든 고통을 체휼하시는
깊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한, 나를 위한 주님의 사랑.
그것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은 고귀한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의 그 사랑을 언제나 기억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종이학
천마리의 종이학을 접는 심정으로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구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도제목이 응답 될 때는 더할 수 없는 기쁨이지만

응답되지 않을 때는 감당 할 수 없는 아픔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바라는대로 응답 되지 않으면

무조건 아프다며 떼쓰고 울부짖던 시간을 되돌아보니

그때의 무응답이 오히려 유익이고 감사해야 할 일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때에도 감사하며,

지금의 아픈 시간을 견뎌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글쓴이 : 최문숙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전하라는 '땅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_Project 1'의 임무를 띠고 1982년 9월 19일 세상에 내려왔습니다.
2010년 3월 20일 - 마가복음 14: 1-9
1.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
2. 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한 여인이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옥합을 깨고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다른 복음서를 보면,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냅니다. 이 장면을 본 어떤 사람은 돈을 낭비한다고 여인을 책망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여인이 자신에게 좋은 일(Kalon)을 했다고 칭찬하시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행한 일도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지나면서, 이 여인이 행한 일에 대해서 어떤 묵상을 해야 할까요?

먼저, 이 여인을 누구일가? 요한복음 12장은 이 여인이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라고 증언하지만, 복음서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예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체험하거나 죄사함의 감격이 컸던 여인이라는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인은 예수님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자신의 가장 귀중한 옥합을 깨서 장례를 예비하고 싶었던 겁니다.

만약에 이 여인이 가진 것이 적어서 그냥 물을 떠서 예수님의 발을 씻겨 드렸더라도 저는 예수님이 오늘 본문의 말씀과 똑같이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귀한 마음을 보신 겁니다.

그런데 옆에서 그 여인을 책망하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요한복음 12장 6절을 보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고 기록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여인의 마음이 아니라, 그 돈의 액수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봐야 합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얼마를 드렸느냐, 그 사람이 얼마나 교회에 도움이 되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오는가, 또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는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사람의 높고 낮음과 있고 없음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은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Faith - Hy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개와 깨달음  (0) 2010.03.23
스스로 개척하라. ⑯  (0) 2010.03.21
스스로 개척하라. ⑮  (0) 2010.03.20
변화  (0) 2010.03.20
스스로 개척하라. ⑭  (0) 2010.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