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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섬나라에 짱돌 던지기 [ 4 ]

鶴山 徐 仁 2009. 5. 29. 08:46

august 의 軍史世界

 

섬나라에 짱돌 던지기 [ 4 ]

 

 

 

최초의 공습

 

요즘 사용하는 최신식도 마찬가지지만 비행선은 구조상으로 속도가 느리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력도 거의 전무하여 군사용으로 그리 적합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적기의 요격으로부터 안전한 고고도로 상승하여 야간에 런던의 불야성만 보고 비행을 하면 목표까지 쉽게 도달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는 등화관제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환하게 밝혀진 런던은 그야말로 자연스런 표적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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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속이지만 고고도로 비행이 가능한 비행선이 런던 폭격을 위해 투입되었습니다 ]

 

더구나 영국 또한 하늘로부터 적의 공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던 시기였으므로 당연히 하늘을 통해 다가올 적들을 맞을 아무런 준비도 없었습니다.  비록 비행기의 등장과 함께 초기형 대공포도 등장하였지만 공갈포로 알려진 것처럼 성능이 뒤떨어졌을 뿐 아니라 당시에 운용하던 복엽전투기조차 고고도를 날아다니는 비행선을 잡기가 어려웠고 결정적으로 야간 전투가 곤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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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의 전투기들은 비행선의 고도까지 치고 올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전쟁 초반기인 1915년 5월 31일 한밤중에 갑자기 폭음이 울리고 런던 도심에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였습니다.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갑작스런 사태에 놀란 영국인들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공포스런 타원체들이 밤하늘에 떠 있었습니다.  그것은 독일이 얄미운 영국을 향해 짱돌을 던지기 위해 동원한 회심의 비밀병기 LZ-37 Zeppelin 폭격비행선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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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납고에서 나와 출격준비를 하는 LZ-37 ]

 

비행선 편대에서 불빛만 보고 무작정 투하한 폭탄으로 인하여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런던이 불길에 타오르는 것으로 영국에 대한 사상 최초의 공습은 이와 같이 개시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비록 전술적으로는 미미한 결과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에게 엄청난 공포심 유발시켜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계속될 공습의 작은 시작이었을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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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시민들은 역사상 처음 겪는 공포와 충격이었습니다 ]

 

최초 작전에 대만족한 독일은 수시로 비행선 폭격부대를 출격시켜 얄미운 영국을 향한 분노의 짱돌 던지기를 계속하였습니다.  특히 1916년 9월 2일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14기의 폭격 비행선들이 편대를 이루어 대규모 폭격을 감행하였고 그 결과 수백 명의 런던 시민이 사상당하는 전과를 거두었는데 이로 인하여 런던 전체를 아비규환의 소용돌이로 몰아가 그 위세가 절정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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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규모 폭격으로 런던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

 

영국국민들은 그들의 자랑인 해군도 하늘의 공격으로부터는 영국인을 보호해 주지 못하고 전쟁이 바다 건너가 아닌 바로 자기 코앞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1차 대전 동안 총 50여회에 걸쳐 이루어진 독일 폭격 비행선들의 활약으로 인하여 영국인들은 섬나라라는 지리적 여건만 믿고 함부로 까불다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짱돌에 코피가 터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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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신문에 악마로 묘사된 독일 폭격 비행선의 과장된 모습
그만큼 영국인들의 느꼈던 두려움은 대단하였습니다 ]

 

비록 전쟁 말기 고고도로 치고 올라가 비행선을 쉽게 요격할 수 있는 고성능 요격전투기가 개발 되자 더 이상 비행선이 공포의 무기로 남지는 못하였으나 영국이 이를 위해 지불했던, 특히 심리적인 대가는 상당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략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비행선의 전술적 효용성이 저하되기 시작하자 독일은 LVG C-IIGotha G-IV 와 같은 신형 장거리폭격기를 동원한 폭격을 계속 실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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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말기 런던 폭격에 동원된 장거리 폭격기 ]

 

그 이유는 비행선에 의한 폭격처럼 영국 본토를 계속 자극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심리적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가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독일은 제1차 대전에서 패전국이 되었음에도 전쟁 내내 자국영토의 피해는 거의 없었을 정도였는데 반하여 바다건너 영국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독일의 폭격에 시달렸습니다.  이처럼 공습은 독일에게는 사기를 앙양하고 반대로 영국의 사기를 꺾는 데는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