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해방 운동을 벌인 영국 존 뉴턴의 신앙 간증 찬송가 ♤
‘주의 놀라우신 은혜(Amazing Grace)’는
존 뉴턴 목사님이 1779년에 작시 윌리엄 카우퍼의
올니 찬송가(Olney Hymns) 에드윈 오델로 엑셀 목사의
‘대관 찬송가’등에 싣렸습니다
이 찬송가는 역대상 17장 16~17절을 근거하여
작사되었습니다
이곡을 만든 존 뉴턴은 1725년에 7월 24일 영국
런던에서 선장의 아들로 출생하였습니다
그의 모친은 독실한 크리스챤이었고 부친은
뱃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모친은 존 뉴턴이 6세 되던때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소천하였습니다 그이후 존 뉴턴은
커가면서 방황과 배도의 길을 끝없이 달려갔습니다
그는 밤새 술을 마시고 창기와 어울렸습니다
그후 그는 전쟁으로 인해 군인이 되었으나 탈영 하였고
노예선의 포로가 되어 15개월간 포로생활을 하였습니다
그의 입은 온갖 잔인한 저주와 불경스러운 말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사악하고 포악해져 갔습니다
결국 그는 노예선에서 가장 포악해져 노예선의 실권을
장악하기 이르렀고 결국엔 노예를 사고 파는 포악한
노예선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리온의 해변 마을을
돌아 다니며 맥주와 사과술등과 맞바꾼 노예들을
카리브해 농장에 팔았습니다
그는 노예들을 족쇄와 폭력으로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였으며 팔았습니다
노예들은 존 뉴턴과 그의 선원들을 음웨네 푸토-
(사람 잡아먹는 사람)으로 불렀습니다
노예상들은 4~6개월의 항해중에 노예인 흑인들에게
주로 땅콩만을 먹였습니다
노예무역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던 중 큰 폭풍우를 맞아
배는 난파되었고 죽음의 위험앞에 그는 신앙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나 어린시절 어머니로 부터양육된
다급한 기도를 올렸고 만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자신은 용서 받을수 없다고 생각하며 최악의 상황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워낙 포악하고 잔인했었기 때문입니다
그 스스로 자신은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이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존 뉴턴의 기도를 들으셨고
배가 난파된지 4주후 존 뉴턴과 노예선의
선원들이 구조되었습니다
그는 그후 토머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후 노예무역을 그만두었고
노예무역을 반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목사가 되어 버킹검에서 16년
올니 교회에서 27년간 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는 잔인하였고 포악하였으며 추악하고 더러웠으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여 Amazing Grace
라는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그는 1807년 12월 21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결국
영국의 노예무역은 존 뉴턴이 죽은해 1807년
"노예거래금지법"이 만들어 지면서 불법이 되었고
밀매매가 성행되어오다 1870년에 완전히 끝났습니다
성공회는 "노예무역금지법" 제정 200년을 기념하여
참회행사를 가졌고 노예상의 후손들은 아프리카를
찾아가 감비아 사람 2만 5천명 앞에 무릎을 꿇고
선조의 잘못을 참회하였습니다
그후에도 아프리카인들을 향한 참회의 길은 이어졌고
지금 현재도 그러합니다
이 찬송가는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님이 나의 죄를 다 용서하셨다고 하지만,
과연 나 같은 노예상인을 용서하셨을까?
문득문득 자신의 과거가 떠오를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두려움에 마음이 떨렸으며, 그럴 때마다
그는 벽에다 이사야 43:4의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노라」는 말씀을
써 붙여놓고 그 말씀을 되뇌이며 위로를 받고
다시 회복되곤 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82세로 숨을 거두면서 “나는 지금 하나님 나라로 간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나라에 가면
아마 세 번 놀랄 것이다.
처음에는 하나님 나라에 오리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고,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에 가면 반드시 만나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며
세 번째로 노예상인인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오.”라고 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Amazing Grace-Giovanni Marradi - 피아노 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