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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學事 關係

[스크랩] [만물상] 다트머스대 총장 김용

鶴山 徐 仁 2009. 3. 6. 16:03

김홍진 기자 mailer@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입력 : 2009.03.03 22:13 / 수정 : 2009.03.03 22:58

1968년 아홉살 한국계 미국인 김용은 흑인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되자 "불평등을 없애자"고 결심했다.

1964년 다섯살 때 아시아계가 두 가족밖에 없는 아이오와주 머스커틴으로 이민간 그도 백인 친구들에게 놀림깨나 받았다. 퇴계와 율곡을 연구했던 철학자 어머니는 그에게 "인간은 평등하다"고 가르쳤다. 고교를 수석졸업하고 의대에 간 그가 전공을 철학으로 바꾸겠다고 하자 치과의사 아버지는 "레지던트를 마치고 의사가 되면 허락하겠다"고 했다.

▶김용은 1987년 하버드대에서 의학과 인류학을 함께 공부하는 박사과정을 밟으며 동기생 폴 파머와 함께 의료자선단체 '건강의 동반자'(PIH)를 만들었다. 페루와 러시아 등 해외 결핵환자에게 치료약을 보급했다. 두 사람에게 감동한 건설업자가 전재산 3000만달러를 PIH에 내놓았다. 김용이 보낸 약으로 환자 80%가 낫는 것을 보고 세계적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열정과 에너지를 뿜어내는 피스톤 같다"고 했다.

▶감복한 하버드대 의대는 그를 교수로 임명하고 봉사를 강조하는 사회의학 과목을 개설해 학과장을 맡겼다. 미국 정상급 의료기관인 브리검여성병원 사회의학부장, 공공보건대학원 공공보건·인권센터장 자리도 내줬다. 하버드대 의대가 한 사람에게 주요 보직 세 자리를 모두 맡긴 것은 처음이었다.

▶2002년 고 이종욱 박사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선거에 나서자 그는 하원의원 55명의 지지성명을 받아내며 도왔다. 이 박사가 이끄는 WHO의 에이즈국장이 된 그가 에이즈 치료자를 3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끌어올리자 세계가 놀랐다. 이 박사는 그를 가리켜 "장차 하버드대 총장감"이라고 했다. 그는 2003년 맥아더재단 펠로상을 받았고 2004년 뉴스위크의 '2004년의 13인', 2006년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다.

▶김용이 미국 동부 명문 8개 사립대를 가리키는 아이비리그의 다트머스대 차기 총장에 선출됐다.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계 최초의 아이비리그 총장이다. 그는 "지금까지는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문제에 몸을 던져 해결해 왔지만 이제 차세대들에게 문제에 맞서 싸우는 용기를 가르칠 때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서 나 미국에서 자란 이민 1.5세로 존경과 기대를 한몸에 받는 그를 보며 새삼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사설] 다트머스대(大)가 한국처럼 교수 투표로 총장 뽑았다면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3/04/2009030402095.html
입력 : 2009.03.04 22:24 / 수정 : 2009.03.04 23:14

미국 아이비리그의 다트머스대가 하버드 의대 국제보건·사회의학과장 김용 교수를 총장에 선임했다. 다트머스대 재단이사장은 "김 교수는 배움·혁신·봉사라는 다트머스의 핵심가치를 구현할 가장 이상적 인물"이라고 말했다. 다트머스대의 새 총장 선택은 동부 명문대학 아이비리그 최초의 아시아계 총장이어서 미국에서 화제가 됐다고 한다.

김 총장의 선임에 쏠린 우리의 관심은 그가 한국계라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다트머스대가 한국처럼 총장을 국회의원 선거 뺨치는 요란한 선거운동을 통해 직접투표로 뽑았다면 김 교수처럼 대학 건학(建學) 이념에 맞는 총장을 고를 수 없었을 것이다.

다트머스는 작년 6월 14명의 총장선발위원회(President Search Committee)를 출범시킨 뒤 교수와 저명인사 등 400명을 후보로 정해 미국 전역을 돌며 25차례 소그룹 면접을 했다. 한번에 이틀씩 걸리는 전체 회의도 9차례 열었고 최종 후보들을 압축한 뒤엔 장시간 집중 인터뷰를 했다. 위원회는 이 과정을 거쳐 김 교수를 총장후보로 뽑았고 재단이사회가 받아들였다. 4년마다 교수·교직원 선거인단이 파벌로 갈리고 학맥·인맥에 지연(地緣)까지 얹혀지는 도떼기시장 같은 한국 총장 선거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김 교수는 브라운대학을 나왔고 박사학위는 하버드에서 받아 하버드대 교수로 있다. 다섯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대이기도 하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가 1980년 이후 총장으로 뽑은 10명, 7명, 9명 중 자기 대학 출신이 아닌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타 대학 출신을 총장후보로 뽑았다가도 갖가지 투서로 결국 낙마(落馬)시키는 것이 한국 대학의 풍토다.

김 교수는 하버드대 학생 시절부터 '건강의 동반자(Partners In Health)'라는 의료자선단체를 만들어 외국 빈민들에게 결핵치료 혜택을 베풀어왔다. 학생 신분으로 현지에 병원을 세우고 의료진에게 치료법을 가르쳐줬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결핵퇴치 모델을 세운 그의 활동에 감복해 4500만달러를 기부했다. 김 교수는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을 맡아 2005년까지 세계 300만명 에이즈환자를 치료한다는 '3 by 5' 프로젝트를 추진해 100만명의 치료 성과도 올렸다.

다트머스가 아무런 다른 조건을 달지 않고 대학의 비전을 실천할 최고 적임자만을 찾았기에 열정·추진력·설득력을 갖춘 총장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 대학은 다트머스대를 보고 무엇을 느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