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서울 어느 대학에서 강의 시작 시간이 지났는데도 K교수가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학생들이 찾았더니 휴게실에서 다른 교수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한판을 지고 막 새 판을 시작한 K교수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휴강이야."
이 교수는 시험지 채점방식도 독특했다.
답안지 더미를 선풍기로 날린 뒤 가깝게 떨어진 답안지에 점수를 높게 줬다.
'잉크가 많이 묻을수록 멀리 날아가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 1950년대에 대학을 다닌 임종철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한 학기 여섯 과목을 수강하며 필기한 것이
대학노트 한권의 절반도 못 채웠다"고 회고했다(서울대출판부 '끝나지 않은 강의').
100분 강의 중 60분 넘게 강의하는 교수가 몇 안됐고 휴강도 잦았기 때문이었다.
S교수는 학기 첫 시간에 10분 강의하고 나간 뒤 내리 휴강만 하다 기말시험 때 나타났다.
1963년 전임강사가 된 임 교수는 휴강만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1998년 정년 때까지 지켰다고 했다.
▶ 이순형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는 별난 강의들의 유형을 분류했다.
강의록만 줄줄 외는 '낭송형', 들을수록 잠이 솔솔 오는 '보모형',
작은 목소리로 강의해 학생들 주의가 산만해지면 더 작게 말하고
이 부분에서 꼭 시험을 내는 '복수형', 강의 내내 울리고 웃기고 열광시키는 '연예인형'.
이 교수는 "어느 노교수가 강의를 '개나발'이라 했는데
자기 강의에 만족하지 못한 그 심정이 이해된다"고 했다.
▶ 숭실대가 그제 학생들이 3년간 교수들 강의를 평가한 글 18만건을 분석한 책
'교수를 위한 학생들의 수다'를 펴냈다. 대학의 치부일 수도 있는 일을 강의 질을 높이려고
공개했다고 한다. 강의 14주가 되도록 10주를 휴강한 교수, 강의하다 말고 "후배 술 사줘야 한다"며
나가버린 교수, 75분 수업 중 50분 신변잡기와 드라마 얘기하는 교수 등이 '꼴불견'으로 꼽혔다.
▶ 이 대학 조우현 교수(경제학)는 선진국 대학 교수들이 한 과목 강의 준비와 시험에
213시간을 투입하는 반면 한국 교수 대부분은 92시간밖에 쓰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최근엔 많은 대학이 강의 평가를 해 강의가 부실한 교수의 성과급을 깎는 불이익을 주고 있다.
강의 질 높이기가 대학 개혁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과거 대학사회에 "한국은 대학들에 천국이고
교수들에겐 에덴동산"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 말이 통하던 시절도 이제 지나갔다.
- 김홍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