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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9시 서울 노원구 공릉2동 육군사관학교. 신입 생도 훈련을 돕는 지도관 생도 박신영(여·23·육사 3학년)씨가 부동자세로 선 기자에게 싸늘하게 말했다. "육사에 왔으니 이제부터 존칭은 생략하겠다. 상급 생도가 말을 걸면 무조건 '정지원 생도!' 하고 관등성명을 복창한다. 어서 전투복으로 갈아입는다. 실시!"
지난 1월 28일 제69기 육사 신입 생도 248명이 육사에 가입교해 4주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공중전화·휴대전화·면회·외출·외박 금지다. 교내외 상점도 못 간다. 편지는 받을 수 있지만, 답장은 주말에 부모에게만 쓸 수 있다. 상급자 허락 없이 실내에서 말을 하거나 화장실에 가도 안 된다. 3주 만에 남자 생도 17명과 여자 생도 1명이 퇴교해 230명이 남았다.
- ▲ 19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훈련장에서 본지 정지원(앞에서 두 번째) 기자가 제69기 육사 신입 생도들과 함께 각개전투 훈련을 받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기자가 쭈빗거리며 "업무상 휴대전화는 받아야 한다"고 하자 지도관 생도 박씨가 "귀관이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나?"라고 쏘아붙였다. 별 수 없이 휴대전화를 건넸다. 지옥 같은 단독 체험 르포가 시작됐다.
오전 11시 전투복에 K-2 소총을 메고 각개전투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신입 생도들에겐 "사정이 있어서 한해 늦게 입소한 한 기수 위 생도"라고 소개됐다.
육사 상급생인 지도관 생도들은 흰 테두리를 두른 철모를 썼다. 일명 '백테 화이바(파이버)'다. 신입 생도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백테 화이바'들이 사방에서 소리 질렀다. "뛰어!" "4분대, 철조망까지 돌격! 앞으로!"
정신없이 앞사람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낮은 포복으로 능선을 기어올라 가서 등을 땅에 댄 채 철조망 밑을 지났다. 기자가 뒤처지자 지도관 생도가 눈을 부라리며 얼차려를 줬다. 기자는 3㎏짜리 소총을 머리 위로 들고 쪼그려 앉아 뛰기를 해야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교관들이 밀폐 용기에 따로따로 담긴 찰밥·햄볶음밥·김치·콩자반·햄 그리고 주스 캔·숟가락 한 개를 나눠줬다. 땅바닥에 앉은 채 밥에서 입까지 직각으로 수저를 움직였다. 이른바 '직각 식사'다. 훈련기간 중 신입 생도들은 국수를 제외한 모든 음식을 이렇게 먹는다. 화장실 갈 때도 '직각 보행'이다.
정신없이 찰밥과 햄을 씹고 있는데 불호령이 떨어졌다. "3소대 즉각 식사 중지! 모여서 먹다 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하나! 귀관들은 이미 다 죽었어! 즉시 흩어져서 나무 뒤로 은폐하고, 한명은 보초를 서면서 밥을 먹는다. 실시!"
점심식사 후 오후 5시까지 훈련이 계속됐다. 무릎이 너무 아파 눈물을 흘리자 훈육요원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녁식사는 교사(校舍)에서 했다. 식당 벽에 구호가 두장 붙어 있었다. '끝까지 살아남아라.' '의지는 한계를 넘는다.'
오후 7시부터 1시간 동안 군종 신부가 '생도생활을 슬기롭게 하는 법'을 강의했다. 이 강의는 기독교·불교·천주교 성직자들이 돌아가며 맡는다. 이후 훈육요원과 지도관 생도들이 숙소를 돌며 생도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취침 점호를 끝으로 하루 일과가 끝났다.
이튿날 새벽 5시30분 정규 기상시간(오전 6시)보다 30분 이른 시간에 사이렌이 울렸다. "비상태세다! 전원 완전군장하고 05시45분까지 집결한다!" 암흑 속에서 군장을 챙겨 운동장으로 뛰었다.
이날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10시간에 걸친 '30㎞ 철야 행군'이었다. 훈련기간 중 가장 어려운 고비다. 오후 7시30분 완전군장을 한 신입 생도들이 '육사 제3초소→삼육대→남양주 별내면 화접초등학교→남양주 진접읍 내곡교회→마을회관→별내면사무소→육사' 코스를 행군하기 시작했다.
기자가 휘청거리자 뒤에 있던 윤청한(20)씨가 큰소리로 지도관 생도를 찾았다. "앞 생도(기자)가 힘들어 보입니다!" 가슴이 뭉클했다.
밤 11시30분 한 여성 생도가 힘에 겨운듯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지도관생도가 "정신차려! 이럴 거면 짐 싸서 집에 가"라고 소리쳤다. 길바닥에 주저앉았던 여생도는 벌떡 일어나 행군에 복귀했다. 밤 12시10분쯤 생도들은 휴식 장소인 내곡교회에 도착했다. 컵라면 국물과 건빵이 목구멍을 넘어가자 행군의 고통이 까마득히 잊혀졌다.
기자는 전투복 속에 내의를 두벌씩 껴입고 있었지만 너무 추워서 눈물이 속눈썹에 얼어붙었다. 오른발이 부어올라 너무 아팠다. 그래도 다른 소대원들에게 미안해서 차마 포기하겠다는 말이 안 나왔다. 이들은 이미 기자에게 '동지'였다. 몇번이나 망설이다 결국 앰뷸런스에 탔다. 21일 새벽 1시였다.
새벽 2시30분쯤 불암산에 오르던 신입 생도 남세경(여·20)씨가 뒤처졌다. 지도관 생도가 군장을 벗겼다. 남씨는 눈물 괸 눈으로 이를 악물더니 자기 군장을 도로 빼앗아 들고 냅다 뛰었다. 남씨의 오기는 금세 옆 소대원들에게도 전염됐다.
오전 6시30분쯤 신입 생도들이 흰 입김을 뿜으며 육사 교문에 들어왔다. 기자를 제외한 전원이 행군을 완료했다. 김현석(58) 육사 교장(육군 중장) 등 장교 30여명과 군악대 20여명이 박수를 쳤다.
대대장 생도 구성모(24·육사 4학년)씨가 쩌렁쩌렁 외쳤다. "진심으로 너희들이 자랑스럽다. 너희들은 이제 전쟁 나면 해외로 도망가서 자기 몸만 챙길 철부지들이 아니다. 이제 너희들은 이 시대의 마지막 화랑이다."
신입 생도들은 축축한 눈으로 남은 힘을 쥐어짜 군가를 불렀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이들은 오는 27일 훈련을 마치고 정식 육사 생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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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군사관생도들의 식사모습은 어떨까. 전설적인 육사의'직각식사'훈련 모습을 카메라가 잡았다. ‘직각 식사’란 식사를 할 때 절도를 지키기 위해 직각으로 수저를 들고 직각으로만 먹는 방법이다. 신입 생도들은 기초훈련 5주동안 면류를 제외하고 모든 식사 때 직각 식사를 한다. /이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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