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호치민과 고 딘 디엠

鶴山 徐 仁 2009. 3. 2. 15:04

 
   
   
  서정후 님께 드립니다.
     
호치민과 고 딘 디엠

베트남에서 남과 북의 대결이 치열하였던 때에 북월남의 지도자는 호치민(胡志明, Ho Chi Minh, 1890~1969)이었고 남월남의 지도자는 고 딘 디엠(吳廷琰, Ngo Dinh Diem, 1901~1963)이었다. 호지명은 공산주의자였고 고 딘 디엠은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였지만 둘이 공통점이 있었다.
둘 다 철저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자였다는 점과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겨레와 국가에 헌신하였던 점이다. 호지명은 “조국과 결혼하였다”고 하면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공적 생활에 헌신하였다. 디엠은 철저한 가톨릭 신앙인으로 젊은 날 한 때는 신부가 되려하였다. 그도 독신으로 생활하며 헌신적이고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호지명은 지금까지도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성공한 지도자로 삶을 마무리 했으나 고 딘 디엠은 실패자로 삶을 마쳤다.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미국에도 버림받은 채 쿠데타군에 잡혀 처형당하는 비극으로 끝났다. 두 지도자의 삶의 여정을 살피며 우리들이 배울 바가 많다. 우리 한국인들은 호지명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점 때문에 무조건 나쁘게 보려는 의식이 있다. 그러나 그가 품은 사상이나 신념을 떠나 호지명은 위대한 지도자가 지녀야 할 덕목들을 골고루 갖춘 인물이었다.

한편 디엠 대통령의 경우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 역시 호지명 주석처럼 청렴하고 헌신적이고 유능하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3가지 과오가 있었다.

첫째는 자신은 청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형제들을 과도하게 사랑하였다. 형과 동생 그리고 일족에게 권력을 맡겨 국정을 요리하게 하였다.

둘째는 자신이 철저한 가톨릭 신자인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가톨릭 인재들만을 발탁해서 중요한 일을 맡기는 잘못을 저질렀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타 종교인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못하였다.

셋째는 자신은 민족주의 정신이 투철하였음에도 지나치게 미국이란 외세(外勢)에 의지하여 국가의 활로를 열어 나가려 하였다. 민족 스스로의 힘을 길러 그 힘을 바탕으로 삼아 미래를 도모하려 하지 못하였다. 그런 점에서 디엠 대통령은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소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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