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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직' 중산층입니까?
'우리나라 5가구 중 1가구꼴로 월 소득 500만원 이상'. 어제 한 포털 사이트에 뜬 경제 기사 제목이다. 통신사인 연합뉴스에서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작성했다. 그런데 비난 일색의 댓글이 엄청 붙었다. 쓴 기자를 힐난하는 글에서부터 "통계가 완전 조작 수준이다" "통계청을 아직 믿느냐" "부자들을 위한 물타기 기사다" "대신 월 200만원 미만 가구가 80%다"는 내용들이었다.
통계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객관적' 통계조차 분통 터뜨리며 거부할 만큼 민심은 울적하고 피폐해졌다.
돌이켜 보면 80년대 말, 90년대 초 다 함께 중산층의 꿈에 부풀었던 시절은 '중산층 인플레이션(팽창)' 시대였다. 소형차 타고 일요일에 온 가족이 놀이공원만 가도 '마이 홈, 마이 카'의 중산층 삶에 행복해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 디플레이션(수축)'이 벌어지고 있다. 일자리 잃고 사업 부도난 '중산층 낙오자'들이 배출됐고, 남은 중산층에도 엄청난 세포분열이 일어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서울과 지방, 서울 내에서도 강북 사느냐 강남 사느냐, 한 회사 내에서도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로 자산과 소득 격차가 벌어진 탓이다. 무너진 중산층보다 '중산층 의식'이 더 많이 무너졌다.
이런 사회 계층의 변화를,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20대80'이라는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우리나라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은 346만4500원(올 3분기). 앞서 '세전(稅前) 월 500만원 소득'은 소득 상위 20%와 80%의 경계쯤에 선 수준이다. 대기업의 40대 간부, 서울의 30대 맞벌이 가정의 월 소득 정도다.
하지만 중산층 앞줄에 선 이들조차 "당신은 중산층인가요?" 물으면 상당수는 "아직은 그럴지 모르지만…" 하고 자신 없는 대답이 돌아올 수밖에 없다. 허리 휘는 서울의 집값과 물가, 사교육비에 살기는 팍팍하고, IMF 외환위기 이후 또다시 닥쳐오는 불황으로 언제 일자리 잃고 '중산층 낙오자'가 될지 모르는 불안한 현실은 마찬가지다. 한때 국민의 70~80%가 중산층이라고 응답했는데, 최근엔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2명 중 1명꼴, 4명 중 1명꼴에 불과하다는 비관적 여론조사도 나온다.
미국의 신(新)엘리트 계층을 분석한 책 '보보스'로 유명한 언론인 데이비드 브룩스(Brooks)는 최근 뉴욕타임스지(紙)에 '중산층 낙오자(The Formerly Middle Class)'란 칼럼을 썼다. 이번 불황으로 미국인 상당수가 집도, 일자리도 잃고 중산층에서 탈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 중산층 낙오자들이 새로운 사회 세력을 형성하며, 현실에 불만을 품고 사회 운동을 주도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의 한파로 우리 사회도 비슷한 충격이 예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중간 소득의 절반 미만을 버는 계층 비율)은 17.5%로, OECD 평균(10.8%)보다 훨씬 높다. 가난한 국민들도 아직 너무 많다.
10년 좌파 정권에 염증난 국민들이 찍은 우파 정부지만, 이명박 정부는 좌파 정부보다 훨씬 더 불평등 해소, 가난 구제, 평등한 사회 같은 '좌파적 복지 정책'에 관심 기울이며 사회 불안을 줄여가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 80%에 몰매맞은 20%를 구제하는' 역할에만 급급한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사회 통합' '연대 의식(solidarity)'을 화두 삼아 '80%를 감싸 안는 따뜻하고 책임 있는 20%'를 만들어야 한다. 현실보다 더 빠르게 무너진 국민들 마음을 다독이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엄청날 수 있다.
- 강경희 경제부 차장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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