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고 싶다
- 김재진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소한 습관이나 잦은 실수
쉬 다치기 쉬운 내 자존심을 용납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직설적으로 내뱉고선 이내 후회하는
내 급한 성격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
스스로 그어 둔 금 속에 고정된 채
시멘트처럼 굳었거나 대리석처럼 반들거리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 헤치고
너를 만나고 싶다
입꼬리 말려 올라가는 미소 하나로
모든 걸 녹여버리는
그런 사람..
가뭇한 기억 더듬어 너를 찾는다
스치던 손가락의 감촉은 어디 갔나..
다친 시간을 어루만지는
밝고 따사롭던 그 햇살
이제 너를 만나고 싶다
막무가내의 고집과 시퍼런 질투,
때로 타오르는 증오에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내 못된 인간을 용납하는 사람
덫에 치여 비틀거리거나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도 하는
내 어리석음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 살아가는 방식을 송두리째 이해하는..
너를 만나고 싶다.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 김재진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일까
아프지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온다던 소식 오지 않고 고지서만 쌓이는 날
배고픈 우체통이 온종일 입 벌리고
빨갛게 서 있는 날
길에 나가 벌 받는 사람처럼 그대를 기다리네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까닭없이 자꾸자꾸 눈물만 흐르는 밤
길에 서서 하염없이 하늘만 쳐다보네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한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 김재진
문이 닫히고 차가 떠나고
먼지 속에 남겨진 채 지나온 길 생각하며
얼마나 더 가야 그리움이 보일까.
얼마나 더 가야 험한 세상
아프지 않고 외롭지 않고
건너갈 수 있을까.
아득한 대지 위로 풀들이 돋고
산 아래 먼 길이 꿈길인 듯 떠오를 때
텅 비어 홀가분한 주머니에 손 찌른 채
얼마나 더 걸어야 산 하나를 넘을까.
이름만 불러도 눈시울 젖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얼마나 더 가야 네 따뜻한
가슴에 가 안길까.
마음이 마음을 만져 웃음을 짓게 하는
눈길이 눈길을 만져 화사하게 하는
얼마나 더 가야 그런 세상
만날 수 있을까.
눈물
- 김재진
꺼내어도 꺼내어도 내 마음속에 들어 있는 당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생각은
생각이 아니라 구속이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내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는 그 생각은
사랑이 아니라 징역이다.
제 형기 다 채우고 만기 출소한 아들 입에
두부를 떠 넣는
죄 없는 어머니의 눈물 같은,
사람이 사람을 잊을 수 없다는 그 생각은
생각이 아니라 형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