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의 은퇴 이후 녹슨 전차군단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던 독일이 새로운 신형엔진을 장착했다. 신형엔진은 바로 루카스 포돌스키. 그는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성인무대에 데뷔해서 단숨에 독일을 대표하는 공격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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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이라 불리며 지난 독일월드컵에서 활약했던 포돌스키는 이번 유로2008을 계기로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닌 진정한 월드클래스의 선수로 거듭나고 말았다. 이번 대회는 그에게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 국가를 부르지 못하는 선수
경기에 앞서 양팀선수들이 입장을 했다. 양팀의 국가가 번갈아 울려 퍼지는 동안 멀뚱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선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은 비장했다. 2년 뒤 그는 비슷한 상황을 또 맞이했다. 이때도 역시 그는 양쪽 팀의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6월 8일(이하 현지시각), 독일과 폴란드전에서 뛴 루카스 포돌스키의 이야기이다. 포돌스키는 2년 전 월드컵에서도 폴란드를 적으로 맞아 싸운 적이 있다. 이때 포돌스키는 " 독일 국가를 부를 수 없었다. 나는 폴란드 사람이니까. 하지만, 폴란드 국가도 부를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독일 국가대표니까 " 라며 자신이 양팀의 국가가 울려 퍼지는 동안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두 개의 조국을 가지고 있기에 폴란드 전에서 골을 넣고도 세레모니를 할 수 없었던 포돌스키는 폴란드 남쪽 글리비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운동선수 집안으로 어머니는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였고, 아버지는 1980년 폴란드 리그에서 우승도 경험한 유명한 프로축구선수였다. 그러다가 1987년 포돌스키 가족은 서독으로 이주하게 됐다. 그러나, 그는 폴란드와의 인연을 놓지 않기 위해 계속 폴란드어를 공부하며 매년 수 차례 폴란드에 있는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클럽 팀 FC쾰른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했던 포돌스키를 본 폴란드 언론은 그를 폴란드 대표팀에 합류시키자는 의견을 개진했다. 하지만, 그 당시 폴란드 대표팀 감독이었던 파베우 야나스는 " 분데스리가에서 겨우 몇 경기에서 활약했을 뿐인 햇병아리를 뽑을 수는 없다. 더욱이 그는 소속팀에서 주전도 아니다 " 라며 폴란드 언론의 주장을 일축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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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당시 독일 대표팀 감독이었던 루디 펠러는 포돌스키에게 유로2004를 위해 독일 대표팀에 합류해 줄 것을 부탁했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폴란드 국가대표팀의 자리를 계속 기다릴 수 없었던 포돌스키는 결국 펠러의 제의를 승낙하게 됐다.
★ 쾰른의 자랑
포돌스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축구선수의 길을 걷기 위해 베르크하임 유소년 팀에서 실력을 쌓기 시작했다. 이후, 포돌스키는 FC 쾰른에 입단하며 18세에 성인팀 경기에 데뷔하게 됐다. 그는 데뷔하자마자 연일 언론을 뜨겁게 달구는 눈부신 활약을 펼치더니 결국 4번째 경기 만에 첫 득점에 성공했다. 이후 그는 19경기 출전에 10골이라는 무서운 활약을 펼쳤다. 18세라는 나이에 10골이라는 기록은 역사에 남을만한 기록으로 평가되며, 더욱이 그 당시 쾰른은 분데스리가와 2부 리그를 왔다갔다하는 정도의 전력의 팀이었기에 더욱 가치가 있었다.
포돌스키의 최대 장점은 어느 곳에서나 슛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지난 03-04시즌 뮌헨과의 원정경기에서 폭발시킨 35m 중거리 슛이나 뭔헨글라드바흐와의 홈경기에서 터트린 슛 등이 그의 슈팅능력을 증명하는 좋은 예들이다. 그는 이런 슈팅들로 독일 국영방송에서 선정하는 월간 베스트 골에 7번이나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기록은 90년대 초반 독일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불리었던 클린스만과 타이기록이다.
이런 포돌스키를 빅 클럽들이 가만히 놔둘 리 만무했다. 레알 마드리드를 비롯한 함부르크, 브레맨 등 많은 팀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2006년 포돌스키는 바이에른 뮌헨과 계약하게 됐다.
★ 쌓여가는 커리어
포돌스키는 루디 펠러의 권유로 유로2004 독일 대표팀에 승선하기는 했지만 기회는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포돌스키는 대부분의 경기를 교체로 출전했고 더욱이, 독일은 예선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그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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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표팀 감독이 클린스만으로 바뀌며 그의 고공행진은 시작되었다. 클린스만의 무한한 신뢰 속에 '클린스만의 남자'라고 불리며 대표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포돌스키는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 컵에서 4경기 출장에 3골 1도움을 기록하며 클린스만의 신뢰에 보답했다.
그리고 자국에서 열린 2006월드컵에서 포돌스키는 전 경기에 선발출장하며 팀을 4강에 올려 놓았다. 특히 16강전이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경기시작 12분만에 2골을 성공시키며 팀 8강 진출의 일등공신이 됐다. 경기시작 12분만에 2골이라는 기록은 1962년 월드컵 이후로 오직 3명의 선수만이 보유하고 있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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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벼락 같은 슈팅은 포돌스키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이런 슛은 뛰어난 골 감각과 함께 어떤 자세에서도 슛이 가능한 순발력과 유연성 바디밸런스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유로2008 예선과 본선에서도 그의 재능은 어김없이 빛을 냈다. 그는 예선전 9경기에서 8골 2도움을 올려 팀 내 득점선두를 달리는 괴력을 발휘했는데, 그것도 그 중 2경기는 교체 출장인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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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본선에서도 그는 맹활약하여 4강전 포함 5경기 3골 2도움을 올려 매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터키와의 4강전에서는 터키에게 선제골을 내줘 계속 밀리던 분위기에서 천금 같은 동점골을 어시스트. 경기의 전세를 어느 정도 회복시켜 독일을 결승으로 진출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독일 대표팀 53경기에 출장해 28골을 성공시켰다.
★ 클럽에서는 암울한 그의 미래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펄펄 나는 그이지만,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전혀 반대의 상황인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는 2006년 이적한 이후 그는 클로제와 루카 토니에 밀려 이들의 백업 요원으로 만족해와야 했으며,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47경기 출장해 겨우 9골 밖에 못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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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뮌헨은 08/09시즌부터 대표팀 시절 그를 기용해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체제로 바뀌지만, 언론 보도에 의하면 클린스만 감독은 전과 똑같이 그를 교체멤버로만 사용할 계획이고, 같은 대표팀 공격수인 마리오 고메즈를 영입한다는 소문까지 만연해 포돌스키는 그를 데뷔시켜준 친정 팀 쾰른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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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에서 거성으로 커버린 루카스 포돌스키. 이번 달에야 겨우 만으로 23살이 된 그지만, 독일의 유로 우승에 꼭 필요한 선수로 벌써 자리매김 하였다.
★ 포돌스키의 프로필
이름: Lucas Podolski
출생일: 1985년 6월 4일
출생지: Gliwice, 폴란드
신체조건: 180cm, 81kg
포지션: 포워드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FC 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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