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한국인들 중 미선이와 효순이를 모르는 사람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서해해전에서 전사한 우리 장병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윤영하소령
한상국중사
조천형중사
서후원중사
황도현중사
박동혁병장
이상 여섯 용사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요,
이 분들의 유족보상금은 병장 3천만원, 중사 3천5백만원, 소령 5천6백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들의 보상금을 따진다는게 죄송스럽긴 합니다만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효순이와 미선이의 경우 이런저런 명분으로 각각 수억원씩
중동에 돈 벌러 갔다가 죽은 김선일씨의 경우 역시 이런저런 명분으로 수십억원
광주사태시 죽은자들에게는 수억원씩, 손가락 하나 부러진 자에게 6천만원을 보상 해 줬다는군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적군의 총탄에 맞아 장열히 전사한 국군의 목숨이
폭도(일명 민주화유공자)의 손가락 하나값도 안 된다니 기가 막힐 일 아닙니까?
서해교전 전사자들은 김대중이가 죽였다고 나는 주장합니다.
1999년 6월 15일, 첫 번째 발생한 제1연평해전에서 북한은 함정 6척이 침몰하거나 심하게 파손되고,
북한군 수십명이 죽는 큰 피해를 입고 도망 갔읍니다.
당시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리 국군을 얼마나 자랑스럽고 든든하게 여겼읍니까?
그러나 김대중의 심사는 뒤틀렸읍니다. 그래서 '교전수칙을 새로 만들었는데
북한군이 먼저 발포하기 전에는 절대로 우리가 먼저 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후 2002년 6월29일, 복수의 잇발을 갈고 다시 침범한 북괴군 함정에
그 놈의 교전수칙 때문에 적함을 멀건히 바라보고만 있다가 기습공격을 당하여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장병들이 참수리호와 함께 차디찬 서해바다에 가라앉게 되었읍니다.
먼저 쏘지 말라는 것은 그냥 적의 총탄에 맞아 죽으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6명의 전사자 이상의 엄청난 파장이 또 있읍니다.
60만 우리 국군의 안보관과 사기를 허물어뜨리는 결정타인 것입니다.
이런 기막힌 일을 저지른 김대중은 '현명하게 대처하라'는 암호 같은 말을 남기고
전용기 타고 일본으로 날아 가 일왕과 나란히 앉아 축구 구경했읍니다.
이런 억울하고도 기가 막힐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요?
김대중은 죽기전에 반드시 대한민국 법에 의해 그 죄과를 물어야 한다는게
제 주장입니다.
사진은 여섯명의 전사자들과 그들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었던 참수리호의 인양 모습입니다
그리고 벽돌 사진은 6.25전쟁시 참전하여 전사한 미군들의 넋을 기리고자 지어진
미국 우스터시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관'에 미군들과 함께 전시된
서해해전 전사자의 이름을 새긴 벽돌 입니다.
'精神修養 마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따뜻한 마음으로 손잡아 주세요. (0) | 2008.07.06 |
---|---|
내 등의 짐 (0) | 2008.07.06 |
마음을 다스리는 글 (0) | 2008.07.05 |
지금 시작하고, 지금 사랑하자 (0) | 2008.07.05 |
이룰 수 있기 때문에 목표는 존재한다 (0) | 2008.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