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해안선은 8천년전에 이루어진다.
즉 빙하기가 그 때 완전히 끝난 것.
8천년전 이전의 빙하기때는 해안선이 위와 같았다.
당시에는 지금의 서해 , 남해의 얕은 바다가 평야지대.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
지금보다 날씨가 추웠으므로 당시 한반도 북부지방은 사람 살기가 지금보다 더 어려웠고
위에 녹색 지역이 사람살기 좋았던 곳.
[지구 기온 변화표]
위 표를 보면 [기원전 1만3천년전]
즉 1만5천년 전부터 지구기온이 갑자기 올라간다.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물도 급격히 높아진다.
그리하여 남부 황해평원(현 충청도, 전라도 앞바다)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세계로.
개를 데리고.
1만5천년 전부터 세계로 퍼져나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후에 다루기로 한다.
즉 1만5천년전부터 지구기온이 급격히 올라간다.
1만3천년 전에는 대강 다음과 같은 모습이 된다.
마문명의 중심지는 경기도 앞바다로 이동한다.
기온이 올라갔으므로 예전에는 비교적 추웠던 경기도 앞바다 쪽이
따뜻해졌다. 예전의 충청도, 전라도 앞바다 평원처럼.
붉은점은 강화도
단군왕검께서 왜 강화도에다가 참성단을 만드셨는지 알 수 있다.
1만2천년전~8천년전까지 다시 지구기온이 급격히 올라가면서
바다물이 들이차고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은 현 남한지역으로 대대적으로 올라온다.
(현재의 해안선은 8천년전에 완성된다.)
전남 화순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
즉 8천년전 고인돌이 있는데
이는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이동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고인돌은 황해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문화였던 것.
왜 한반도에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 몰려있는지
왜 한반도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들이 있는지
이러한 상황이 그 이유를 알려주고 있다 하겠다.
[고인돌(전남 화순)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한눈에 보기에도 참 오래된 고인돌들이다.
현재 확인된 것이 8천년전 것인데
그보다 더 오래된 것들도 있다고 본다.
저 돌의 아래에 땅을 파고 석관을 만들고 사람을 매장했다.
사람을 매장하지 않은 고인돌들도 있는데
이는 제단(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인 것으로 본다.
큰 건 3백톤 짜리도 있다.
저렇게 큰 돌을 사람이 깍아서 만들고
그것을 옮겨서 세웠다는 것.
이상 고인돌 (전남 화순)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songjukmae/12153933?nil_profile=blog
석관이 땅 속에 있는 [남방식 고인돌]을 고인돌의 원조로 본다.
석관이 땅 위에 있는 [북방식 고인돌]은 후대에 나타난다.
강화도 고인돌 (북방식 고인돌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진 출처 - http://cafe133.daum.net/_c21_/home?grpid=dfsj
강원도 양구 고인돌 - 북방식 고인돌
(장승(황헌만 사진, 이종철 외 3인 지음, 열화당, 1993)에서 인용)
[고인돌 집중지역]
고인돌은 한강 이남에 특히 많이 존재한다.
이는 황해평원 마문명이 한반도 얕은 바다 중에서도
현 남한바다에 존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겠다.
고대황해평원 마문명에서 남한땅에 전해진 고인돌문화는
차차 황해도 등으로 북상한다.
대동강에서 제주도까지의 영역은
세계고인돌의 절반이 몰려있는 대단히 특수한 곳.
[한반도 남부]의 고인돌문화는 차차 [한반도 북부와 만주]로 전파된다.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 [남방식 고인돌]을 변형시킨
[북방식 고인돌] 문화가 생겨난다.
[고인돌 분포도]
고인돌 문화는 차차 퍼져서
한반도 북부와 만주로 전파되고
산동반도와 일본 규슈 지방으로도 전파된다.
물론 산동반도의 고인돌도 한국보다 훨씬 늦은 것들이고
일본의 고인돌은 한국보다 5천년 이상 늦다.
일본의 고인돌은 약 2천4백년전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전해준 것인데
그들은 쌀농사와 금속문명도 같이 전파해준다.
그전까지 일본은 계속 원시석기시대였고
기원전 4백년이 되어서야 한국인들에 의해서 문명화된다.
이것을 학계에서는 [야요이(彌生) 문명]이라 부른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 지식인들의 심각한 컴플렉스가 되어
일제때 극심하게 한국고대사를 왜곡, 날조하게 된다.
모든 일은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검룡소 [儉龍沼] -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에 있는 소(沼).
남한강 발원지.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검룡소[儉龍沼]의 검[儉]자는 [단군왕검 檀君王儉]의 검[儉]자.
게다가 주변 가까운 곳에 [단군왕검]께서 만드셨다는 [태백산 천제단]이 있다.
[서해에 살던 이무기가 강줄기를 거슬러 왔다]는 얘기는
고대 황해대평원 [마문명] 사람들의 이동으로 볼수 있는 것 같다.
마야 - 마이아 즉 마이(마사람)의 땅(아)
마이란 말은 지금도 어매(어마이), 아지매(아지마이) 등의 말 속에 남아있다.
이렇게 주로 한반도 남부, 중부 지역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황해평원을 [마]라 불렀듯이 한반도 중남부를 [마]라 불렀고
이 지역은 나중에 [마한]이라 불리게 된다.
마한은 5세기(삼국시대 후반부)까지 존재했다.
저 [황해평야 대강]을 고대한국인들은 무어라 불렀을까.
[밀이내(미리내)]라 불렀을 것이다.
[밀이의 강]이라는 것인데
당시 사람들은 스스로를
[ㅁ.] 또는 [ㅁ.ㄴ] 또는 [ㅁ.ㄹ]로 불렀을 것이다.
[ㅁ.ㄹ] -> 말, 멀, 몰, 물, 믈, 밀
[말(언어), 멀이(머리), 물이(무리)]
나중에 [밀이내(미리내)]는 은하수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는데
원래는
땅에는 땅의 미리내 - 대강(大江)
하늘에는 하늘의 미리내 - 은하수
둘 다 남북으로 걸쳐 있는 큰 강.
[미르(밀으 : 용)]와 [미리내(밀이내)]
고대한국어로 용(龍)을 [미르(밀으)]라 한다.
예로부터 [한미르]라는 말이 전해져 오는데
이는 보통 [큰 용]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또한 [한미르]란 다른 말로 [한(漢)의 용]
즉 [황해대강에 사는 용]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 국보 제228호
조선 태조 4년(1395)에 고구려 천문도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천문도 각석.
한국 하늘의 별들을 돌에 새긴 것.
위의 둥그런 [노란 강]이 바로 미리내(밀이내 - 은하수)
그런데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좌우가 [서동(西東)]이 아닌 [동서(東西)]로 되어있다.
북
동 서
남
으로 되어있는 것.
위 그림처럼
북 현무
동 청룡 서 백호
남 주작
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
이것을 동과 서를 바로잡으면
은하수의 모양은 다음과 같이 반대방향이 된다.
은하수는 대강 위 그림처럼 왼쪽(서쪽)으로 불룩한모양.
서울을 지나는 한강(漢江)이 왜 은하수 한(漢)자를 썼는지 알수 있다.
[한강 미리내(은하수)]를 보시라.
위 그림은 서울 한강이 대강으로 흘러 바다로 나가는 모습.
하늘의 은하수와 같은 모습.
( 북한강은 금강산 부근에서 시작하고
남한강은 태백산 부근에서 시작한다.
금강산과 태백산 ! )
은하수를 한자로 [천한(天漢)] 즉 [하늘의 한(漢)]이라 하듯이
[한강 - 황해 대강]은 그냥 [한(漢)]이고
은하수는 [천한(天漢)]인 것.
(백과사전 ->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0045900)
[한강(漢江)]이 왜 [한강(韓江)]으로 안불리고
[한강(漢江)]으로 불려 왔는지 이해가 가는 일이다.
그런데 고대 기록의 한강 즉 한수(漢水)는 3군데.
한강, 대동강, 압록강을 모두 한수(漢水)라 부른 기록이 있다.
그 이유는 다음 그림을 보면 쉽게 아실 수 있다.
[대동강 미리내]
[압록강 미리내]
고대에 나오는 한수(漢水)라는 기록은 한강, 대동강, 압록강 중 하나다.
3강을 모두 한수(漢水)라 불렀다.
중국의 한수(漢水)라는데는 양자강 지류에 불과한 일종의 [모방]
이는 [원조인 한국 김치]와 일본 기무치의 관계와 비슷하다.
[한(漢)]자가 가리키는 [종족이름]은 원래는 한국민족을 가리킨다.
[황해평야 대강] 지역 (특히 그 동부)에 살았던 민족이 한민족.
즉 한민족의 [한] 이라는 말을 표현하는 한자가
桓(한), 韓(한) 뿐만 아니라
漢(한)도 있었던 것.
그래서 서울에도 [한강(漢江)]이 흐른다.
서울 한강이 [한강(韓江)]이 아니고 [한강(漢江)]인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
즉 고대 한민족은 (서울) 한강을 (황해대평원) 한강으로 흘러드는
[대표적인] 강으로 보았던 것.
원조 漢(한)민족은 한국민족을 가리킨다.
중국이 스스로를 漢(한)족이라 하는 건 일종의 '짝퉁'인 면이 많다.
강북
ㅣ ---------------------------------------
ㅣ <- <- <- (서울) 한강(漢江)
ㅣ ㅣ--------------------------------------
ㅣ ㅣ 강남
ㅣ ㅣ
ㅣ ㅣ 경기도
ㅣ ㅣ
ㅣ 한강 ㅣ
ㅣ (漢江) ㅣ 충청도
ㅣ ㅣ
ㅣ = 황해 ㅣ
ㅣ 대강 ㅣ 전라도
ㅣ ㅣ
원래 [황해평야 대강]을 가리키는 글자인 [漢(한)]자는
[夫 + 口 + 풀(草)] 의 물(水) 라는 말이다.
夫(지아비 부)자는 원래 [하늘(天)에 관통한 훌륭한 사람]을 뜻하는 말이고
口(입구)자는 원래는 [훌륭한 사람(성인)이 진리를 말하는 것]을 뜻한다.
( 그래서 형(兄)자도 원래는 [진리를 말하는 훌륭한 성인(聖人: 지도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대강]을 가리키는 [漢(한)]자는
[풀이 많이 있는 (평야지대인 황해대평원)에서 성인(聖人)이 진리를 말하는 그 곳의 물(水 : 강)]
을 뜻하는 말.
나중에 먼 훗날 중국 한고조가 나라이름을 [한(漢)]이라 지은 것은
이러한 것을 흉내낸 일종의 [짝퉁]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한족(漢族)]이라 하는 것도 마찬가지.
[원조 한족(漢族)]은 [황해대평원 대강 즉 한강(漢江)]의 동쪽에 살고 있던 민족.
그 민족은 스스로를 태양민족, 하늘민족이라는 의미로 [한]이라 불렀고
그 [한]자를 한문으로 쓴 것이 [桓(한)]이고 [韓(한)]이고 [한(漢)]이다.
황해대강(大江)의 이름이 [한(漢)]이었다는 것은
한라산 [漢拏山]의 위치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전편에 나왔던 호주 시드니대학 보고서의 그림.
위 그림에서 보이듯이 황해대강은 한라산을 향하고 있다.
한라산[漢拏山]의 한자 뜻은
한[漢]을 끌어당기는[拏: 당길 라] 산이라는 뜻이다.
절묘하지 않은가.
실제로 한라산[漢拏山]은 한[漢] 즉 황해대강을 끌어당기고 있다!
황해대강은 한라산을 향해서 흐르고 있다.!
그래서 한라산은 한라산[漢拏山]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한라산 [漢拏山]이 한라산 [漢拏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희한하다.
사람들이 다 잊어버렸던 황해대강의 존재를
한라산은 그 이름으로 지금까지 우리에게 외치고 있었다.
' 찬란했던 당신들의 뿌리를 잊지말라'고.
1만 2천년전 낙동강 하류 김해평야 삼각주 기름진 들은 지금보다 훨씬 컸다.
지금의 부산 앞바다가 당시에는 평야지대였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부산이 한국 제2의 도시인 것처럼.
당시 [황해대강 삼각주] 다음으로 [낙동강 삼각주]가 컸을 것이고
그곳에 살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의 부산의 어느 산 이름이 부산이었다고 본다.
[고대의 낙동강 삼각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
삼각주는 농사짓기도 좋고 바다와도 가까와서 사람들이 많이 산다.
지금의 낙동강 하류 바다속에도 많은 고대 유물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낙동강 삼각주 마문명]은 [영남문화권]의 뿌리가 된 것으로 본다.
습관처럼 [마...그래서...마...그런데...마...]하는 [마...문화권]
[영남 문화권]
위 [영남 문화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8천년전 배가 발견된 곳.
저 곳에서 발견된 배는 발견 위치를 보아도
시골에서 쓰던 작고 단순한 것에 불과.
당시 진짜 큰배들은 남해 바다속에 묻혀있을 것이다.
즉 남한의 서해 남해는 세계최고의 고대유물 보고.
섬들이 많다고 하여 다도해라 부르는데
그 섬들이 고대에는 산들.
고대 [낙동강 삼각주] 사람들은 지금 마산의 어느 산을
[마산] 즉 [어머니산]이라 부르고
지금 부산의 어느 산을 [부산] 즉 [아버지산]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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