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oto 허영한 조선일보 기자
- 서울대 지리학과의 유우익(58) 교수는 우리나라 지리학계의 수장이다. 지리학은 물론 국토계획, 지역개발, 문화관광 등 다양한 분야의 논문, 저서와 에세이를 펴냈고 세계지리학회 사무총장까지 맡고 있다. 이런 그에게 요즘 세상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이명박의 이데올로그(Ideologue·이론적 지도자)’라고 알려지면서부터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대표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를 비롯해 ‘나들섬 남북 공동개발’과 ‘한반도 선벨트 개발’의 큰 그림을 그린 핵심 브레인이다.
대선 당시, 한반도 대운하와 관련한 ‘물길이 통하면 인심이 통한다’는 카피와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라는 공약 비전의 개념을 잡았다. 이 당선인이 시장이던 시절부터 그의 연설문을 작성해온 그는 ‘이명박의 또 다른 입’으로도 통한다. 한나라당 경선 당시 후보 수락 연설, 대통령 당선 기자회견, 대통령 당선인 신년사가 그의 손을 거쳤고 대통령 취임사도 쓰게 된다. 유 교수는 대통령 선거 후 청와대 안가에 초청받은 테니스 멤버 11명 중 한 명이다.
인수위가 확정되기 전인 12월 25일 이 당선인은 그에게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을 맡아달라고 했지만 유 교수는 “대학으로 돌아간다”며 이를 고사했다. 이후 그는 연말에 프랑스 파리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1월 10일 현재 그는 청와대 비서실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 1월 6일 유우익 교수를 만나 인터뷰했다. 유 교수는 그 동안 한사코 언론 인터뷰를 피해왔다. 그를 단독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 교수는 사진 촬영만큼은 한사코 않겠다고 했다.
지난 1월 4일 유우익 교수가 원장으로 있는 서울 신문로의 국제정책연구원(GSI)을 찾아갔다.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던 그가 사무실에 있었다. 하지만 직원을 통해 “기자와는 할 말이 없다”는 말만 전했다. 명함과 편지글만 남기고 되돌아왔다.
이틀 뒤인 1월 6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전원주택에서 사무실로 출근 중인 그와 전화 연결이 됐다. 그는 “그날은 개인적으로 미안했지만 만나도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인터뷰를 고사하던 그는 한참 동안의 전화 통화 끝에 “원 참, 내가 죄를 진 것도 아니고… 그러면 와서 차 한 잔 마시고 가라”고 했다.
일요일인데 일하시네요.
“기자들도 일하는데 교수라고 일 안 하나요?”
유 교수는 직접 외투를 받아서 옷걸이에 걸어줬다.
파리에는 다녀오신 건가요.
“네, 12월 27일 떠났는데 집안에서 상을 당해 31일에 바로 왔어요. 출국 날, 공항으로 방송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왔습니다.”
방송에선 못 봤습니다.
“내가 ‘새 대통령을 국민이 뽑았고, 지금 모두가 환호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고 결의하는 때가 아니냐’고 했어요. 사실 그렇지 않나요. 모두가 기대하고 흡족해하고 잘해보려는 시기인데 어쨌건 참모 중 한 명이 가는 뒷모습을 보여주는 건 좋지 않죠. 그건 생기 넘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고, 그건 당신들도 나도 원하는 바가 아니니 그냥 다녀오게 해달라고 했어요.”
기자들을 설득하셨네요.
“그게 바로 내 심정입니다. 인터뷰 사양하는 이유도 그렇고요.”
파리엔 왜 가신 건가요.
(유 교수는 파리 소르본 대학에 초빙교수로 1년간 머문 적이 있다.) “나는 독일에서 공부했지만 프랑스 지리학회의 정식 회원이에요. 세계지리학회 집행이사들을 모아서 밀린 얘기도 하고 친구들 만나서 포도주 마시고 놀다 오려고 했죠. 소르본 대학(4대학) 총장이 정말 친한 친구예요. 그런데 상을 당해 바로 온 거예요. 사실 연말 보내기에 파리가 참 좋은데….”
유 교수는 왜 자신이 기자들을 피하는지, 무엇이 답답한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인터뷰 전엔 “할 말이 없다”고 했지만 실은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정말 불편합니다. 일을 별로 많이 안 한 사람이 많이 한 것처럼 되면 미안하고 불편한 것 아니겠어요. 학생이 입학했다가 졸업하듯이 교수가 소신에 맞는 합당한 일을 한 뒤 그 역할이 끝나면 돌아가는 것이죠.”
선거 때엔 이명박 후보를 열심히 도우셨던 걸로 압니다.
“선거의 싱크탱크 장을 맡았고 정책, 연설문, 상담 역할을 하며 후보를 도왔죠.”
공식 석상에 서시기도 했나요.
“선거운동이라기보다는 강연회에 나가서 대운하 같은 정책 얘기를 했죠. 선거는 이제 끝났고, 이젠 또 다른 시기가 시작된 것 아닌가요. 그런데 정상적이고 보통의 일이 주위에 반향을 불러일으키니까….”
대통령 후보를 도운 뒤 학교로 가는 걸 두고 하시는 말씀이지요.
“네, 그렇게 떠들 일이 아니에요. 나는 호들갑스러운 것은 싫어요. 그래서 황 기자가 만나자고 했을 때도, 만나는 것 자체가 또 한번 호들갑을 떠는 것으로 보도될까봐 염려됐고요.”
유 교수는 “작은 일이지만 내 진의가 있지 않겠느냐”며 “그게 각색되고 포장되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 진의가 무엇인가요.
“글쎄요. 세상엔 능력있고 훌륭한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나와 이명박 후보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서 의기투합해서 함께 일을 도모했어요. 그래서 그 일이 이뤄졌어요. 그런데 이제 대통령이 되셨기 때문에 사적인 인연을 뛰어넘어 넓은 세상에서 훌륭한 인재를 구해서 쓰셔야 해요. 선거 기간 동안 치열한 활동을 통해 가까워진 그 위치는 비켜서 주는 게 도리고요. 그게 대통령이 된 분에 대한 도리라는 말이죠.”
유 교수는 ‘넓은 세상’과 ‘새로운 인재’라는 단어를 여러 번 반복했다.
“(당선인이) 국회의원이나 시장 후보일 땐 나의 후보, My favorite candidate(내가 제일 좋아하는 후보자)였다는 말이죠. 하지만 이제 대통령이 되셨으니 온 국민의, 나라의 대통령이죠. 그분을 도울 분도 넓은 세상에서 많이 나와야 해요. 과거의 사적인 인연으로 인해 내가 막아서고 있으면-막아서려고 해서가 아니지만-안 된다는 그런 뜻이 조금 담겨있어요. 굳이 의미를 찾는다면 말이죠. 그런데 이게 무슨 폼이나 재고 멋 부리는 것처럼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언론 보도에 많이 언짢아하시는데요.
“내가 마치 영웅이나 된 것처럼, 굉장한 일을 한 학자인 것처럼 보도되는 건 사실과 다르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아요.”
(이튿날 통화에서 그는 기자들이 자꾸 거짓말로 지어 쓰고, 자신을 어릿광대로 만든다며 심한 불편함을 표현했다.)유 교수는 자신이 왜 불편한 심정인지를 조목조목 말하면서도 “내가 떠나고, 안 떠나고에 대한 얘기는 가급적 안 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럴수록 불편한 마음, 진실을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쏟아지는 외부 시선과 관심이 부담스럽다 못해 정말 괴롭다”고 했다. (인터뷰 이튿날 이후 대통령 취임사를 그가 쓴다는 소식에 언론들은 “떠났다가 일시 컴백” “권력과의 이별인가”라고 보도했다.)
언론에서 교수님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본업에 좀더 충실하려고 하는 걸 마치 대통령을 버리고 떠나가는 것처럼 보는데 그건 아니에요. 그런 게 남들에게 재미있을지 몰라도 진실이 아닙니다.”
그는 ‘본업(本業)’ 얘기를 꺼냈다. “국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곁에 정치인, 행정가 분들이 있어야죠. 그분들은 본업이 그거니까요. 내 본업은 정치, 행정이 아니라 선생이에요. 선생을 하다가도 대통령이든, 누구든 내가 생각하기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 해야지요.”
당선인과는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제가 말씀 드렸고, 그분도 부탁하셨지만 언제든지 꼭 내가 필요하고 꼭 있어야 할 일이 있으면 부르시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판단되면 도와드린다고 했어요. 저는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을 그대로 갖고 있는데, 어느날 아침에 ‘바이바이’ 하면서 떠나는 사람처럼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그는 서울대에서 호암교수회관 운영을 맡았던 일화를 꺼냈다.
“서울대에 컨벤션센터와 숙박시설을 갖춘 호암교수회관이라고 있는데 학교에서 저더러 그걸 운영하라고 한 적이 있어요. 내 전공으로 봐선 아니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결국 2년간 봉사했어요.”
개인적으로 원치 않아도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신 겁니까.
“교수는 학생 가르치고 학문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하지만 자신이 속한 학문의 사회, 국가 같은 공동체가 그의 지적 능력을 요구할 때 끝까지 외면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봐요. 이런 생각으로 이번 일을 도와드렸고 이제 내 할 일이 끝났으니 가는 거예요.”
대통령직인수위에서 일해 달라는 제의를 받으셨지요.
“네.”
그때 고사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할 사람이 많고,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이 많으니까요.”
대통령 당선인이 섭섭해 하진 않던가요.
“같이 해줄 것으로 기대하셨지만…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과 꼭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식별해야지요.”
본인이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보셨습니까.
“내가 설령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잘할 사람이 많은데 내가 거기 가서 비키라고 하겠나요.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데, 내 일을 제쳐놓고 인수위에 가서 이전 정부가 잘했네, 못했네 하는 건 아니지요. 독일 속담에 있듯이, 그건 내(가 마실) 맥주가 아닌 거지요. 그런 심정인 거죠.”
(영어에도 ‘이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는 뜻의 ‘It’s not my cup of tea’란 표현이 있다.)
그를 아는 학계 인사들은 유 교수를 “지리학계의 거장이면서 마음이 따뜻하고 털털한, 천상 학자”라고 말한다. 그가 쓴 ‘장소의 의미’라는 답사기를 읽다 보면 거창하지 않고 소박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난다. “자연이 수려한 나라가 아름다운 나라다. 그러나 진정 아름다운 나라는 그런 자연과 인간의 심성이 어우러진 나라다. 내가 구하는 아름다운 나라는 그 위에 이치가 통하고 도리가 바로 서서 아름다운 삶이 이루어지고 이어지는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