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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

鶴山 徐 仁 2008. 5. 4. 16:42
[사람들] 베일 벗은 아프간의 여전사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
한국인 의료·봉사단원 23명이 무장단체 탈레반에 납치된 작년 7월 weekly chosun에는 ‘네오 탈레반의 실체’라는 기사가 실렸다. 앞서 같은 해 3월에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의 미 공군기지 앞에서 자행된 자살폭탄테러 현장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 사진과 르포가 독자를 찾았다. 모두 프리랜서 사진작가 ‘김주선’의 작품이다. 이제 그가 필명을 벗고 포토저널리스트 정은진(38)이라는 본명으로 책을 냈다.

‘카불의 사진사’. 편도 비행기표 한 장 달랑 들고 떠난 2006년 8월 16일부터 교민 강제 철수 명령으로 카불을 떠나야 했던 2007년 8월 10일까지, 1년 동안 정씨가 생생하게 촬영하고 내밀하게 기록한 아프간 현장 보고서다.

▲ 아프간 현장 보고서 '카불의 사진사'를 낸 정은진씨 / photo 이구희 조선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아프간에 도착한 첫날밤 정씨는 숙소인 무스타파 호텔에서 노트북을 켜고 파일 하나를 만들었다. 워드 파일의 이름은 ‘카불 저널’. 1년 사이 원고지 2000장 분량으로 늘어난 일기는 이번 책의 모태가 됐다. “분쟁 지역을 숱하게 다니며 셔터를 눌렀지만 뭔가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때가 처음입니다. 숙소에 돌아와 하루 동안 일어난 일과 감상을 틈틈이 기록했죠. 사실 저에겐 일종의 치유 작업 같았어요. 재난 현장을 취재하며 피폐해진 제 마음을 일기를 쓰며 추슬렀기 때문이죠.”

책은 2007년 6월, 세계적 보도 사진전인 페르피냥 포토 페스티벌 ‘케어 인터내셔널 휴머니티 르포르타주’의 그랑프리로 자신의 작품이 선정됐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정씨는 책 14~15쪽에 있는 사진을 가리켰다. ‘아프간 산모 사망률: 카마르(Qamar) 스토리’라는 이름의 작품. 26세 아프간 산모가 제왕절개로 출산한 뒤 합병증으로 사망하기까지 2주간의 모습을 담은 10장의 사진 중 하나다. 정씨는 “1년에 2만5000여명의 산모가 출산 중 세상을 떠나는 아프간 여성의 현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사진”이라고 했다.
▲ 김주선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던 당시의 모습
아프가니스탄에서 보낸 1년을 그린 ‘카불 일기’ 편에는 떨어진 사체 조각이 널린 자살폭탄 공격 현장, 탈레반의 돈줄인 양귀비 밭 초토화 작전, 한국인 봉사단원 피랍사건 등 현장 얘기가 숨가쁘게 이어진다. 생존과 도약을 위한 살인적인 경쟁 속에서 유쾌하게 살아가는 동료 사진기자들의 얘기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성공하는 사진가와 그렇지 않은 사진가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 성공한 사진가는 아주 일을 질리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야. 하루에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는 줄 알아? 메모리 카드 20기가 정도의 사진을 찍어. 250기가 사이즈 외장 하드를 열이틀 만에 다 채우고 돌아갔어.”(‘뉴스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사진기자’ 중).

“애인 생각이나 결혼할 생각을 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 바닥은 그만큼 살벌하다. 한쪽을 완전히 포기해야 다른 한쪽을 이룰 수 있는 게 사진계다.… 사진만 생각하고 살자. 사진만 생각해도 나는 이미 30대 후반이다. 앞으로 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명예를 원한다면 편한 삶을 버려라’ 중).

‘부르카 밑의 웃음소리’ 편에서 정씨는 남자에겐 천국이지만 여자에겐 지옥과 다름없는 아프간 여성의 열악한 현실을 그대로 그려냈다. 동양인 여자를 창녀 취급하는 아프간 남성들의 시선 속에서 생활해야 했던 버거운 일상도 가감 없이 드러냈다.

▲ 정은진씨의 페르피냥포토 페스티벌 수상작 '카마르 스토리'
‘나는 여기에 왜 왔는가’ ‘왜 이곳에서 이 고생을 하는가’. 정씨는 아프간에 머물면서 이런 의문에 부딪히고 회의에 휩싸일 때마다 앞서 기록한 일기를 되짚어보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이겨내야 한다’ ‘견뎌야 한다’ 같은 글귀를 보면서 초심(初心)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동양화과와 미국 뉴욕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정씨는 미주리대 언론대학원에서 포토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를 세상에 각인시킨 작품은 2004년 12월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 쓰나미 참상. 2006년 5월에는 타임지 아시아판 표지 사진으로 나오기도 했다.

정씨는 현재 ‘월드 픽처 뉴스(World Pic ture News)’의 전속 기자로 지구촌 분쟁과 재난의 뉴스 현장을 발로 뛰고 있다. 그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가장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현재의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휴머니티를 애절하게 표현해 감동을 주고, 그러면서도 최고 수준을 잃지 않는 사진가 집단인 매그넘(Magnum)과 세븐(VII)의 작가를 좋아…, 아니 존경합니다.”

정씨는 2월 중순 중앙아프리카로 떠난다. 무기는 캐논 디지털 카메라 2대와 롤라이 등 필름 중형카메라 2대, 그리고 후지 파노라마 카메라. 그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5개월 걸리는 일정 동안 아프리카에서 만난 인연들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겠다”고 했다. 오는 4월에는 일시 귀국해 사진전을 열 예정이다.

냉정하고 치밀해 보이는 인상. 하지만 그의 사진과 글 속에는 따뜻한 인간애가 흐른다. 뉴욕타임스의 유럽권 사진 담당 편집자인 다프네 앙글레는 책 말미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은진의 사진 작품은 그저 대상을 촬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작품을 매우 성숙한 사진가의 눈과 탁월한 포토 스토리 능력으로 다시 만들어낸다. 정은진은 사진을 통해 감동적인 스토리를 보여준다. 그녀의 포토 스토리는 아름답게 빛나는 장면들로 이뤄져 있다. 이는 정은진이 상처를 어루만질 줄 아는 감수성과 인간에 대한 존경심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씨가 그동안 필명을 사용한 이유는 뭘까. 그는 “환갑을 넘기신 부모님들께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김주선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면서 “들어도 금방 잊어버릴 만한 평범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부모님은 외동딸이 ‘험한’ 사진기자 일을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했다. 아프간 피랍사건 당시만 해도 부모님께 아프간행을 극구 숨긴 이유도 현장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에 일어날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어서라고 했다. 놀람과 충격으로 아빠는 심장마비, 엄마는 우울증에 빠질 게 분명했다는 것. 몇 달 전만 해도 “언젠가는 아시게 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던 정씨는 “이제 ‘커밍아웃’을 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면서 웃었다. “본의 아니게 부모님께 거짓말을 했지만 어떤 역경도 헤쳐갈 수 있는 강인한 인간으로 성장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부모님께 책을 바치며 용서를 구합니다.”


/ 채성진 기자 dudmi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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