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주말]'마음 허허로울 때' 나를 향해 떠나는 여행…장항선

鶴山 徐 仁 2008. 2. 24. 22:32




장항선은 원래 충남선이었다.

1922년 천안~온양 구간이 개통되고, 31년에 지금의 천안~장항 사이 전 구간이 개통됐으니, 어느덧 일흔 일곱이 되는 노선(老線)인 셈이다.

나이만큼이나 장항선은 허리가 굽었다. S자를 그리며 구불거리는 레일을 따라가다 보면 이따금 몸이 기우뚱 기우는데, 그 느낌이 싫지 않다.

빠르지 않은 속도 때문에 철도 주변의 풍경도 더욱 한가해 보인다. 볏짚더미 사이 잔설을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덧 마른 풀이 가득한 언덕이 눈앞을 가리고, 이내 작은 호숫가를 빙돌아가기도 한다.

간혹 재밌는 일도 벌어진다. 역도 아닌 곳에서 갑자기 정차를 해의아해 하는데,‘ ... 사람들이 길을 건너는 중이라 잠시 정차를 한다’는 안내방송이흘러나온다. 마을버스나 다름없는 풍경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낡은 기차에 앉아 덜컹 덜컹 반복적으로 흔들리는 바퀴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손님이 없으니 좌석번호와 상관없이 아무데나 자리를 잡으면 그만이요, 앞좌석을 돌려 마주보게 하고는 다리를 올려놔도 흉 볼 사람이 없다.

아무 생각 없이 곤한 잠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시간이 없어 엄두를 못 내던 책을 펼쳐들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장항선 무궁화호 기차는 깊은 사색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지극히 평온한 마음으로,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서, 시간의 제약 없이 '생각' 이란 걸 해 본 지가 도대체 언제인지. 아무런 긴장감 없이, 느리게 움직이는 창밖 시골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2006년 지금의 나는 어디로 달려가는 것일까.' 라는 화두에 아주 오랫동안 발목을 잡히고 만다.

장항선은 144km의 길이에 무려 27개나 되는 역이 있다. 비가림막만 간신히 있는 간이역에서부터 달랑 푯말만 있는 간이역에서까지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고만고만한 작은 역들 가운데 광천과 대천 사이‘청소(靑所)역’에 내렸다.

하얀 벽돌과 초록색 지붕이 낯설고 예쁘다. 5평이나 될까 싶은 작은 대합실엔 세월을 30년쯤 거슬러 올라간 듯한 풍경화와 석유난로 그리고 몇 줄 되지 않는 열차시간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청소역사를 바라보며 잠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공상을 해본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며 대합실을 서성이는 남자가 있고, 세상살이에 지쳐 문득 고향을 찾은 여자가 있어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는... 청소역을 배경으로 하면 상상도 아름다워진다.

역사 앞의 철길은 긴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기차가 오갈 때만 드물게 딸랑딸랑 종소리가 들릴 뿐, 먼 곳 개 짖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한길. 아늑한 풍경만으로도 진심이 통할 것 같은 곳이다.

시작하는 연인, 삶에 찌들어 서로에게 관심을 가져주기 힘들었던 부부, 대화 없이 지내던 서먹한 부자가 있다면 단연 권해주고 싶은 장소다.

철길을 걷다, 몸이 추워지면 역사 앞 다방에 들러도 좋을 것이다. 반백의 다방 마담이 끓여주는 달콤한 커피도 특별한 맛이지만, 낡은 소파와 따듯한 석유난로는 지나간 시간들을 떠올려 주기에 충분하다. 청소역에는 하루 6번, 두세 시간 간격으로 기차가 선다. 새로 도착한 기차를 타고 다시 종착역을 향해 길을 떠났다. 종착역이라는 야릇한 서운함을 뺀다면, 장항역에는 별 멋이 없다.

그냥 시멘트 건물이다. 대신 장항역에서 어른 걸음으로 10분쯤 걸으면 군산으로 넘어가는 여객선을 탈 수 있다. 장항에서 군산까지 차를 몰고 가면 30분, 배를 타면 15분이 걸린다.

소요시간으로만 따지면 별 이득이 없는데다, 배삯도 1300원으로 버스비 보다 비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쉼 없이 배를 탄다. 왜일까? 아마도 습관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도로가 좋아져도 수백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동안 뗏목을 타고, 통통배를 타고 오가던 습관을 쉽게 놓을 수 없어서가 아닐까 추측을 해본다. 예상대로 여객선 안의 승객은 대부분 어르신들이다. 난로위에 젖은 장갑을 놓고 말리며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의 얼굴엔 익숙한 편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군산항에 도착해 5분 정도 걸으면 부산의 자갈치 시장을 능가한다는 거대한 어시장이 있다. 생물을 파는 상점이 백여 곳, 건어물을 파는 곳이 50곳쯤 되는데, 전국 각지에서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장을 보다 시장 밖을 바라보면 거기에 또 시원한 바다가 있어 지루하지도 않다. 기차를 타고 걷고 또 배를 타고... 어찌 보면 참 번잡한 여행을 했다 싶다. 그런데도 전혀 지치지않는 이유, 그것은 장항선의 정겨움이 있지 않을까. 언제부턴가 기차의 생명은 속도가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시속 300km를 넘긴 KTX에 가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장항선은 사람이 먼저다. 시간과는 상관없이 후미진 시골마을까지 굽이굽이 찾아가 사람들을 태운다. 사람이 먼저인 곳,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곳. 승객이 거의 없는 기차임에도 불구하고 장항선 무궁화호 열차엔 인정이라는 것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장항선의 곡선 구간들도 대부분 직선화된다고 한다. 그 덕에 편리해지는 사람도 많겠지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메마른 겨울처럼 가슴 속이 허허해 질 때, 이제는 어디를 찾아가야 하나... 섭섭해진다.

나를 향해 떠나는 여행
항상 번잡한 소리에 파묻혀 산다.
언제나 바쁘다.
빠듯한 일상 속에서 살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조차 잊고 산다.
이름표 속의 나, 주민등록증상의 나.
거미줄 같은 관계 속의 나는 있는데, 진짜 나는 없다.

메마른 겨울 날씨만큼이나 가슴 속 깊은 곳이 허허로울 때면,
장항선 낡은 무궁화호 기차에 올라도 좋다.
항상 번잡한 소리에 파묻혀 산다.
언제나 바쁘다.
빠듯한 일상 속에서 살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조차 잊고 산다.
이름표 속의 나, 주민등록증상의 나.
거미줄 같은 관계 속의 나는 있는데, 진짜 나는 없다.

메마른 겨울 날씨만큼이나 가슴 속 깊은 곳이 허허로울 때면,
장항선 낡은 무궁화호 기차에 올라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