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이 섬을 몰고 바다를 쟁기질하다 |
배 위에서 바라보는 소섬 '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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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꿈에서 본 듯한 신비의 섬 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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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속의 섬, 곳곳에 아름다움의 극치를 빚어내는 우도 팔경
하늘에는 '천진관산'(天津觀山)이 땅에는 '지두청사'(地頭靑莎)가, 낮에는 '주간명월'(晝間明月)이 밤에는 '야항어범'(夜航漁帆)이, 앞에는 '전포망도'(煎浦望島)가 뒤에는 '후해석벽'(後海石壁)이, 동에는 '동안경굴'(東岸鯨窟)이 서에는 '서빈백사'(西濱白沙)가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순식간에 뺏어버린다는 소섬 우도.
섬 속의 섬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섬 우도에 가면 눈을 오래 둘 곳이 없다. 우도 도항의 들머리 천진동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마치 왕처럼 여러 오름을 거느리고 있는 웅장한 한라산(천진관산)이 나그네의 우쭐댐을 한껏 비웃는다. 우도봉(132m)에 서서 우도를 바라보면 오름의 잔디가 그대로 푸르른 바다로 흘러가는 것(지두청사)만 같다.
햇살이 유리구슬처럼 쏟아지는 아침 10시에서 11시쯤 '광대코지'라는 바다동굴에 서면 새파란 바닷물이 동굴 천장에 비치면서 천장의 동그란 무늬와 어우러져 달을 띄운다(주간명월). 우도에 어둠이 밀려들면 고기잡이배들이 내뿜는 휘황찬란한 불빛(야항어범)이 밤하늘과 바다에 비치면서 보는 이의 눈을 멀게 한다.
북제주군 구좌읍 종달리에서 바라보는 우도는 말 그대로 소 한 마리가 짙푸른 바다를 목장으로 삼아 한가롭게 누워있는 모습(전포망도)이다. 우도봉 뒷편에서 바라보는 높이 20m 정도의 얇은 돌판을 쌓아올린 듯한 기암절벽(후해석벽)은 그대로 돌폭포가 되어 바다로 쏴아쏴아 쏟아질 것만 같다.
검은 모래가 펼쳐진 영일동 '검멀래' 바닷가 끝자락 절벽 아래에는 커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동안경굴이 커다란 콧구멍을 벌리고 있다. 서쪽 바닷가를 바라보면 세계에서 세 곳뿐이라는 희고 깨끗한 산호 모래밭(서빈백사)이 보석이 나는 밭처럼 드러누워 무지갯빛 햇살을 아름답게 튕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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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 일출봉에서 바라본 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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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도로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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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평선이 소의 고삐를 쥐고 바다를 쟁기질하다
2006년 1월 1일(일) 오후 4시. 는개가 흩날리는 성산 일출봉을 지나 우도로 간다. 성산 일출봉에서 바라보는 우도(제주도 북제주군 우도면)는 짙푸른 바다를 쟁기질하고 있는 소의 모습이다. 수평선이 우도의 고삐를 쥐고 '이랴~ 이랴~' 소잔등을 때리자 쟁기에 걸린 바다가 파도를 일으키며 그대로 고랑을 이루는 것만 같다.
누가 우도를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 했던가. 나그네가 보기에는 분명 우도는 바다를 논으로 삼은 소가 수평선이라는 고삐에 묶여 끝없이 바다를 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저만치 금세라도 손에 잡힐 듯한 우도를 바라보며 성산포항에 이르자 잠수함과 유람선을 타려는 사람들과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다.
사실, 우도의 속내를 샅샅이 살펴보려면 요금이 무척 비싸게 여겨지는 잠수함이나 유람선을 타는 것보다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도항선을 타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다. 도항선을 타고 우도에 내리면 우도의 속내를 제대로 훑어보기도 전에 그대로 마지막 배를 타고 다시 돌아와야만 할 것 같다. 우도에서 하룻밤을 지새울 계획 또한 없다.
에라~ 모르겠다. 나그네는 잠수함을 타기로 했다. 잠수함을 타기 위해서는 우선 배를 타고 우도 앞바다까지 가야 한다. 하긴, 그 배를 타고 가더라도 해식애(해안에 나타나는 급경사의 절벽)가 아름다운 우도의 모습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우도 앞바다에서 잠수함으로 갈아타면 우도의 속내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와 아름다운 산호초까지 샅샅이 살펴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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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뱃머리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섬 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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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동굴은 소의 눈동자일까 콧구멍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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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암절벽 곳곳에는 아름다운 물결무늬가 물결치고 있다
성산포항에서 배를 타고 파도를 가르며 바라보는 성산 일출봉의 모습은 색다르다. 하긴, 무엇이든 그 품에 안겨 있는 것과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은 다르지 않던가. 우도 또한 마찬가지다. 아까 성산 일출봉에서 우도를 바라보았을 때는 소가 바다를 쟁기질하고 있는 모습이었으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소의 모습은 사라지고 기암절벽들만 앞을 가로막는다.
우도에 점점 가까이 다가서자 그저 위태롭게만 보이던 기암절벽에 잔잔한 물결무늬가 아름답게 물결치고 있다. 여기 저기 뻥 뚫린 동굴이 언뜻 소의 커다란 눈동자가 되었다가 이윽고 소의 콧구멍이 되어 큰 숨을 내쉬는 것만 같다. 기암절벽 또한 파도가 철썩일 때마다 소의 머리처럼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는 것만 같다.
저만치 동굴 들머리와 갯바위 위에는 낚시꾼 몇 명이 짙푸른 바다 위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있다. 몇 마리나 낚았을까. 어떤 고기를 낚았을까. 새해 첫날 저 낚시꾼들은 바다에 낚싯줄을 드리운 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행여 고기를 낚으러 온 게 아니라 새해 첫 날 바다를 낚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닐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언뜻 낚시꾼들의 모습이 기암절벽 여기저기 피어난 연보랏빛 해국처럼 어여쁘게 보인다. 그래. 나그네 또한 이대로 배를 타고 저 곳에 닿아 저 낚시꾼들처럼 새해 첫날 짙푸른 바다를 낚고 싶다. 그때 안내방송이 요란하게 흘러나온다. 우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얼른 잠수함으로 갈아타라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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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도 곳곳에 절벽을 이루고 있는 기기묘묘한 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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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용암지대라는 소섬 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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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호빛 모래밭에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사랑이 숨어 있다
아무리 바라보아도 곱고 아름답기만 한 섬 우도. 관광안내자료에 따르면 우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조선 헌종 9년(1843년) 때부터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고 그 이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하나도 없었던 버려진 섬은 아니었다. 우도에서 나는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우도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그 뒤 숙종 23년(1679년)에 이곳에 목장이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어 순조 23년(1823년)부터 이 지역 사람들이 잇달아 우도의 개간을 요청하게 되었고, 헌종 8년에 이를 허가받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우도에 들어가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하기 시작한 것은 헌종 9년 봄부터란다.
관광안내자료를 다시 뒤적인다. 자료에는 "우도 주민들의 성씨는 김해 김씨, 제주 고씨, 제주 양씨, 파평 윤씨, 곡부 공씨, 진주 강씨, 진주 정씨 등이 성씨를 이루고 있다"고 나와 있다. 그중 우도에서 집성촌의 형태를 보이고 있는 성씨는 조일리의 김해 김씨와 제주 고씨, 오봉리의 제주 고씨라고 되어 있다.
"우도 주민들은 대부분 우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본토박이들입니다. 과거 우도의 주민들은 우도 안의 같은 마을에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 주민들 대부분은 우도 안에 외가, 처가, 친정, 친가를 두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역적 연고관계로 우도 주민들의 대부분은 앞으로도 우도에서 계속해서 살아가길 원합니다."-'도항선 안내방송' 몇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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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843년 조선 헌종 9년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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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에 가면 아름다운 사랑이 숨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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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용암지대라는 소섬 우도. 섬 그대로가 한 폭의 수채화요, 보석덩어리인 아름다운 섬 우도. 신이 빚어놓은 신비스런 절경이 새록새록 숨쉬고 있는 꿈의 섬 우도. 그곳에 가면 지금도 영화 '시월애'의 그 은주(전지현)가 성현(이정재)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 가면 지금도 흰빛 산호 모래밭에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사랑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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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도여 안녕! 다시 올 때는 널 가슴에 품어 놓지 않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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