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병원에 입원하고 난 뒤로, 물을 술처럼 대하는 '물주(酒)'도 마셨지만 어느새 술은 내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바쁘고 힘들다면서도 이틀 걸러 술잔을 대합니다. 대기업 임원인 고등학교 동창생은 '올해도 폭탄주 마시자'라고 쓴 연하장을 보내왔습니다. 위장(胃腸)은 마지막까지 말이 없는 법이지요.
오늘은 문단(文壇)의 '주호'(酒豪)로 불리는 임우기(문학평론가)씨가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2박3일씩 술 마시고, 대낮에 술집에 앉아 취한 목소리로 "빨리 여기로 와. 보고 싶어"라고 전화를 걸어오는 양반이었지요. 결국 그도 일 년 전 술병으로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온갖 질병을 종류별로 몸에 달게 된 것이지요. 그럼에도 반성은 없고, 제게 "술을 끊더라도 아우와는 꼭 한잔 하고 끊겠다"고 합니다.
사람이란 왜 이리 과거로부터 바뀌어지지 않을까요. 예전의 나로부터 떠나지를 못합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일 초에 약 50만 개, 하루에 약 432억 개씩 만들어지고 사라진다고 합니다. 몸이 세포로 구성돼 있으니, 세포가 바뀐다는 것은 내 몸이 늘 바뀐다는 것이지요.
세포 속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유전자가 들어있습니다. 이치가 그렇다면, 오늘 거울에 비친 나는 어쩌면 어제의 내가 아닐 수 있지요. 세포가 바뀌었으니. 내일에 있을 나는 또 오늘의 내가 아닌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어제 했던 어리석은 짓을 오늘도 똑같이 따라 하는 걸까요. 내 몸속에서 세포의 '세대교체'가 숨가쁘게 진행되지만, 죽는 세포나 생겨나는 세포나 그놈이 그놈이기 때문일까요.
일본의 생물학자 모토카와 타츠오씨가 쓴 '시간으로 보는 생물이야기'를 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물 중 79%는 몸으로 흡수되고, 나머지 21%는 배설물로 버려진다는 것이지요.
몸으로 흡수된 음식물은 에너지가 되겠지요. 하지만 이 에너지 중에서 겨우 2.5%만 생장(生長)에 쓰입니다. 생장이란 '변화', '과거와의 바뀜'을 말하는 것이지요. 배설물로 버려지는 비율을 포함하면 더 형편없이 미미해집니다.
밥 먹은 것을 통해 얻은 에너지 중 97.5%는 생명을 현상 유지하는 데만 쓰입니다. 먹은 것의 거의 모든 에너지가 호흡을 통해 산화(酸化)되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지요. 간신히 지금의 몸을 지키기도 힘든데 변화까지 해낼 힘이 없다는 뜻 같기도 하고….
모토카와씨는 "동화된 에너지의 대부분을 마냥 태워 없애버리고 나중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니, 조직 생산 기계로 보면 몹시 효율이 나쁜 기계인 셈"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현재의 우리는 늘 과거의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고, 과거의 끈에 묶여있는 것일까요. 남편 분들은 저 같은 부류를 닮아서는 안 되고, 닮으려고 노력해도 안 됩니다.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최보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