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작가 임동헌의 우리 땅 우리 숨결]강원도 영월

鶴山 徐 仁 2007. 9. 8. 22:06

 


사람은 오감(五感)으로 세상을 본다. 그러므로 정직할 수 있다. 아니다. 그러므로 착오를 일으킬 수 있다. 그 반대편에 카메라의 눈이 자리해 있다. 카메라의 뷰파인더는 오감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냉철하다. 그러므로 기계적 철학만으로 수용되는 피사체는 에스컬레이트된 인간의 감정을 절제시켜 지구상에 유일한 리얼리티의 세계를 가져다준다.

한 소녀가 흑백사진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던진다. 많은 사진 중에 제일 관심이 가는 사진이란다. 흑백사진의 존귀함을 이미 알아 버린 소녀는 강원도 태백에서 활동하는 사진작가 박종호씨의 딸 정선(12)양이다. 열한 살, 일곱 살짜리 두 동생은 사진에는 관심없이 전시장 여기저기를 뜀박질하며 놀기 바쁘지만 정선양은 줄곧 작품들 앞에 서서 진지한 시선으로 사진을 해석하기에 바쁘다.

“나중에 사진작가가 되려고?”

“아뇨.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누구 사진을 좋아해?”

정선양은 옆에 서 있는 아빠를 힐끗 올려다보더니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다.

“음, 우리 아빠 사진요.”

초등학교 5학년 소녀의 눈을 호사시킨 공간은 강원도 영월에서 열리고 있는 ‘2007 동강사진축제’(8월 3∼22일)다. 2002년부터 시작됐으니 올해가 여섯 번째 축제. 이 축제는 작품 걸어놓고 사진 마니아들의 발길을 기다리는 단순함에서 멀찍이 벗어나 있다. 내부 공간 영월은 ‘박물관의 고장’이란 말이 낯설지 않게 한국 최초의 공립 사진박물관이 자리한 곳이니 사진을 보고, 카메라를 만지고, 경험할 수 있는 자리가 동강사진축제다.

◇아버지를 따라 사진 전시회에 나선 박정선양. 초등학교 5학년이지만 박재성씨의 흑백사진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작품 전시를 박물관에 한정하지 않고 영월 학생체육관, 초등학교 운동장, 대로변, 아파트 옥상 외벽으로 확대했으니 그야말로 영월읍 어디를 가나 사진 천지다. 사진뿐인가. 디지털 카메라에 밀려났다가 다시 필름 카메라로 유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을 반영하듯 한쪽에서는 중고 카메라 벼룩시장이 열린다. 예부터 ‘유배지의 고장’으로 불린 영월이 사진 콘텐츠의 고장이 됐으니 한마디로 멋지다.

동강사진박물관 전시회 명칭은 ‘바라보기-상상하기’. 160년 사진 역사의 의미망을 적확하게 도출해 냈다는 느낌은 바로 ‘상상하기’에서 발견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끝난다면 사진의 역할은 거기에서 멈추는 법,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 유리 전시장 안의 갖가지 카메라를 들여다보노라면 호흡을 같이한 카메라 주인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전시관 밖에서는 등산을 마치고 온 사람들이 벤치에 배낭을 내려놓고 사진 얘기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카메라 제조회사의 이벤트용 대형버스 위에는 1000만원이 넘는 렌즈가 설치돼 구매욕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린다.

“나는 저런 렌즈 들고 다니다가 몸살날까봐 안 사는 거야. 암, 내 체격엔 너무 무겁지.”

◇관풍헌에서는 영월 사람 29명의 초상을 전시하는 ‘사람들의 초상’전이 열리고 있다. 29명은 모두 이웃과 다름없는 서민들이다.


박물관에서 나와 학생체육관으로 자리를 옮긴다. 거기, 영월사람들이 낯선 객을 반긴다. 전시 작품 중에서도 영월의 사진가들이 영월군 직동면 직동리 사람들의 생활상을 담은 사진들이 눈길을 끈다. 밭을 매는 백발의 할머니, 일손을 멈추고 밭뙈기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 노인 부부… 거의 모든 사진들이 전하는 메타포는 주름살인데, 거기에서 흙과 살아가는 영월사람들의 향기가 느껴진다.

직동리는 ‘핏골’로 불릴 정도로 애환이 많은 곳. 한국전쟁 전에는 빨치산에 의해 우익 청년단 백여 명이 목숨을 잃은 데다 호환을 당한 사람들이 많아 지금도 곳곳에 호식총(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무덤에 떡시루를 씌우고 삼베할 때 쓰는 쇠꼬챙이를 꽂아놓은 곳)이 있을 정도로 골짜기가 깊은 대표적인 화전민 마을이었다. 그런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찍혀 나온 사진 앞에 서면 문득 문명의 이기 앞에 사족을 못 쓰고 사는 삶이 부끄러워진다.

◇영월이 사라진 꿈꾸며 개최하는 동강사진축제는 2002년부터 시작돼 올해가 여섯번째다. 매년 여름 열리며 올해는 오는 22일까지 계속된다.


전시장 입구에는 중고 카메라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한때는 재산 목록 1호로 장롱 깊숙이 보관되곤 했을 카메라들의 몸체는 주인의 온기를 다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카메라는 새로운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영월초등학교로 발길을 옮긴다. 일명 지붕 없는 전시관이다. 학교 주차장 자리에 사진기자 6명이 내놓은 보도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회 명칭은 ‘신문사진에 반하다’. 화려한 조명은 없지만 초등학교 교사 벽에도 사진이 걸리고, 학교 밖 아파트 옥상 벽에도 사진이 걸렸으니 이만하면 영월 외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사진전 자체가 사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 이만하면 성공작이다.

읍내 관풍헌으로 자리를 옮긴다. 관풍헌은 550년 전 단종이 사약을 받고 승하한 곳. 관풍헌 벽에 영월사람 29명의 초상이 걸려 있다. 그들의 초상이 의미 있는 것은 잘나고 못난 것과 상관없이 바로 이웃이라는 점. 집배원, 택시 운전사, 학생, 식당 주인, 양어장 주인이 역사적인 공간의 벽체에 자리하고 있으니 사진전은 곧 ‘민중의 힘’에 대한 은유로 작용한다.

영월읍 곳곳에 사진의 향기가 배어나게 된 것은 솔직히 동강의 힘이다. 영월의 수해 위험 때문에 댐 건설이 추진됐지만 환경단체는 물론 수해 당사자인 영월사람들조차 동강의 자연미를 위해 댐 건설을 반대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오늘의 자연미 넘치는 동강은 국민이 지켜낸 강이기도 하다.

◇영월초등학교 주차장에 마련된 신문기자들의 ‘신문사진에 반하다’전. 학교 밖의 아파트 옥상 벽면에도 사진이 걸려 사진전의 이색 풍경을 연출한다.


호우 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간밤에 100㎜가 넘는 빗줄기가 쏟아진 탓에 동강은 황톳빛이다. 황톳빛 물결 위로 고무보트 위에 몸을 실은 사람들이 스릴을 즐기며 내려온다. 문산리 래프팅 출발장에서는 교관의 지시에 따라 쪼그려뛰기와 맨손체조로 PT체조를 하는 선남선녀들의 모습이 보인다. 저마다 패드 한 개씩을 지급받고, 노젓는 법을 배우는 모습에서는 동심이 느껴진다.

“양현 앞으로 하면 패드를 물 속에 넣고, 하나 둘 다음에 셋 넷 해가며 힘차게 패드를 당기는 겁니다. 알았습니까아?”

“네에.”

“복창 소리 봐라. 알았습니까아?”

여름 한철 래프팅 수입으로 대목을 올리는 사람들은 어느새 유격 조교 못지않게 노련한 교관이 됐고, 동강을 찾은 사람들은 초단기 교육을 받고 동강의 물결에 몸을 싣는다. 황톳빛 물결, 출렁거리며 여름을 지나는데 그 물결 위로 사진 몇 장이 함께 인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