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대한민국 探訪

구름 내려앉은 숲, 꿈길을 걷는 듯…

鶴山 徐 仁 2007. 8. 30. 19:52

운길산은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크지 않은 산이다. 정상의 높이래야 610.2m 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산 백운대의 가슴 높이 정도밖에 안 되는 셈이다. 오르기도 쉽다. 산 아래에서 출발해도 1시간30분이면 닿을 수 있고, 걸음이 느려도 2시간이면 넉넉하다. 산 중턱 수종사 주차장까지 자동차를 타고 가면 30~40분이면 충분하다. 운길산이 가족 산행지나 가벼운 주말 산행지로 널리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산이 작다고 보잘것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천리 길을 달려온 남한강과 북한강이 몸을 섞는 두물머리를 조망하기에 이 산만 한 게 없다.

날씨가 좋으면 북한산, 남산, 검단산, 수락산 등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축령산, 천마산, 용문산 등 서울 동북부의 산들도 손에 잡힐 듯하고 적갑산, 예봉산을 잇는 산줄기도 그런대로 시원하다. 특히 산 중턱 수종사에서 내려다보는 한강쪽 전망은 숨이 막힌다. 수종사 선불장(選佛場) 앞 마당에 서면, 일찍이 서거정이 수종사를 두고, 동방의 사찰 가운데 가장 전망이 좋은 사찰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만해진다. 지난 7일 낮 운길산에 올랐다. 이 작은 산을 오르며 방수 등산복을 갖추고 배낭까지 방수커버로 둘러싼 것은, 아침부터 시시때때로 쏟아지는 비 때문이었다.


◆ 시로 만든 사찰, 수종사 = 조안면 진중리에서 수종사까지 오르는 찻길은 막혀 있었다. 8월 한달 동안 도로 보수공사를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내리는 비 때문에 수종사까지 차로 오를까 했는데, 공연한 미련이 없어져서 좋았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뚜벅뚜벅 산길을 걸었다. 날씨가 좋건, 비가 오건 역시 산길은 걷는 것이 제격이다. 산길 입구 안내판에서 운길산 정상까지는 2.1㎞. 수종사 앞에서 시작되는 등산로의 팻말에 운길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0.98㎞로 돼 있으니, 산길 입구에서 수종사까지는 1.12㎞인 셈이다.

사람들은 흔히 수종사가 절벽 위에 걸터앉아 있다고 하지만, 8월의 수종사는 짙은 숲 위에 앉아있다. 일주문 가까이에 이르면 숲의 느낌이 다르다. 비오는 날의 운무에 싸인 숲은 그런 느낌이 더하다. 일주문에서 ‘명상의 길’의 길을 따라가다, 석간수로 물 한모금 마시면 시작되는 계단길. 아름드리 숲 사이로 난, 그리 길지 않은 길이 끝나면 수종사다. 늘 그랬듯이 선불장 앞 마당 끝, 나지막한 담장 앞에 섰다. 운무에 가려 한강의 조망은 희미하지만, 탁 트인 전망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삼천헌(三泉軒)’의 쪽마루에 놓인 ‘묵언(默言)다실’이라는 작은 표지에 끌려 다실로 들었다. 띄엄띄엄 놓인 나무 찻상, 비가 내리는 날에도 다실에는 몇몇 객이 찻상 앞에 앉아 통유리 밖으로 한강을 내려다본다. 가지런히 다기가 놓인 찻상 앞에 앉으니, 옛 시인 묵객들이 쓴 시집에 눈에 들어왔다. 서거정이, 정약용이, 초의선사가…, 마셨을 차를 앞에 놓고 이들의 시를 읽었다. 창 밖에 빗소리, 간혹 풍경소리만이 땡겅거릴 뿐, 고요했다.

창 밖 멀리 구름 아래에는 풍진 세상, 세상의 번뇌 또한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다실을 나와 정의옹주 부도탑, 삼층석탑, 팔각오층석탑 따위를 둘러보고, 대웅보전 앞마당을 지나 조그만 해탈문을 나섰다. 세조가 절을 찾은 뒤, 기념으로 심었다는 두 그루 은행나무 아래에는 절을 찾은 이들이 세운 작은 돌탑들이 옹기종기 서 있다. 많아야 잔돌 10개, 저 탑을 쌓은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탑만큼이나 작은, 탑을 쌓아올린 이들의 작은 소망이 빗속에서 가만히 가슴에 다가들었다.

◆ 구름이 많아서 운길산인가 = 수종사에서 운길산 오르는 길은 두가지다. 하나는 산신각 옆으로 난 된비알을 따라 오르는 길이다. 이 길을 택하면, 수종사 뒤쪽의 수종봉(500m)을 넘는다. 또 하나는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 약수터 위에서 산을 오르는 길이다. 팻말에 운길산 정상까지 0.98㎞라고 적혀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 때문에 온 길을 되짚어 넓은 길로 오르기로 했다.

처음 10여분은 계단이 많은 가파른 오르막이다. 후두두둑, 산길을 오르길 기다렸다는 듯이 빗줄기가 세차진다. 키큰 산벚나무 ,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따위 잎 큰 나무에 떨어진 빗물이 모자로, 어깨로, 배낭으로, 뚝뚝 떨어진다. 지난 겨울에는 산을 오를 때마다 눈길이더니, 여름에는 산을 오를 때마다 빗길이다. 겨울 산행은 눈길이 좋듯이 여름 산길은 역시 빗길이 좋다. 등산복 안에서 땀에 흠뻑 젖는 옷, 그러고 보면 여름 산행에서 옷이 젖기는 비가 오나 오지 않으나 한가지다.

20분쯤 쉬엄쉬엄 길을 오르니 갈림길이 나온다. 수종봉을 넘어온 길이다. 여기부터 능선길이다. 길 옆 큰 바위에 오르니 눈앞이 훤하다. 발 아래 멀리 북한강을 가로지르는 철길과 양수교, 팔당댐이 운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하고, 강변으로 국도가 달린다. 도로 위쪽으로 펼쳐졌을 강 건너에 있을 검단산이나 유명산, 용문산 따위는 위치만 짐작될 뿐이다.

바위를 떠나 10분도 못 가 운길산 정상이다. 정상에 선 안내판은 구름이 가다가 산에 걸려서 멈춘다고 하여 운길산이란다. 두물머리를 앞둔 산, 그래서 산 이름에 구름이 많다는 뜻의 ‘운(雲)’자가 들어간다는 것이야 짐작하겠지만, ‘길(吉)’자를 ‘(구름이) 산에 걸려 멈춘다’고 풀이한 것은 운치라고는 없는 해석이다. 정상에서 계속 나아가면 새우젓고개, 새재 고개를 거쳐 예봉산에 이른다. 운길산에서 수종사 쪽으로 원점회귀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나 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적갑산, 예봉산을 넘어 팔당쪽으로 내려온다. 쏟아지는 비와 운무를 핑계로 사진기도 꺼내지 않은 채 하산을 서둘렀다. 하기야 사진을 자꾸 찍은들 무엇 하리. 산에서 본 모든 것들, 잠시 가슴에 담았다 시간이 지나 잊어버리면 되는 것인데….

가는 길

6번 국도를 이용해 양평 쪽으로 가다 팔당댐을 건너기 전, 조안 IC에서 청평 방향으로 빠진다. 45번 국도를 타고 양수교 앞에서 청평 방면으로 직진, 2㎞ 정도 더 가면 왼쪽으로 조안보건소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을 해서 계속 따라가면 산길 입구에서 운길산 안내판이 나타난다. 수종사 바로 아래 주차장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으나, 길이 가파른 편이다.

또 주말에는 산길이 좁아 여러 대의 자동차가 오도가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주차장도 부족하므로 산 입구에 자동차를 두고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걸어서 오르고 싶은데, 오가는 자동차가 거슬리는 이들은 진중리보다, 송촌리에서 산길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조안보건소에서 1㎞ 정도 더 가면 나오는 연세중 앞에서 좌회전, 적당한 곳에 자동차를 세운 뒤 수종사 길로 오르면 된다.

즐길거리, 먹을거리

운길산이 있는 북한강변에는 수종사 말고도 볼거리, 먹을거리가 지천이다. 이중 가족이나 연인이 찾을 만한 곳으로는 능내리 다산 정약용 유적지와 삼봉리 서울종합촬영소가 대표적이다. 양평 두물머리, 세미원 등지에서 호수와 연못과 정원, 갈대숲을 감상하며 걷는 것도 운치가 있다.

음식점으로는 벌건 김칫국으로 시원하게 국수를 말아주는 송촌리 죽여주는 동치미국수(031-576-4020) 집, 냉면과 오이소박이 김치맛이 정평있는 개성집(031-576-6467)이 잘 알려져 있다. 또 서울종합촬영소 입구에서 강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갓 볶아 갈아낸 커피로 뽑아낸 제대로 된 커피와 바닷가재와 샤토브리앙, 달팽이 요리가 함께 나오는 수준 높은 정찬 코스, 그리고 매주 금요일 저녁 소규모 클래식 연주회를 즐길 수 있는 왈츠와 닥터만(031-576-0020)이 있다.

또 백조를 형상화한 건물로 6번 국도에서 잘 보이는 ‘오데뜨’(031-772-6041)는 드넓은 정원을 가진 카페로, 스테이크와 해물도리아 등을 맛볼 수 있으며, 함께 운영하는 ‘두물머리순두부’에서는 황태찜과 야외바비큐 등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