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國際.經濟 關係

믿음 주는 독일, 의심받는 일본

鶴山 徐 仁 2007. 4. 12. 22:09
2007년4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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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주는 독일, 의심받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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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메르켈 총리(左)와 일본 아베 총리(右)

아키코는 프랑스인 남편과 결혼해 파리에서 사는 30대 후반의 일본인 주부다. 얼마 전 이들 가족과 점심을 먹고 주말 오후를 함께 보냈다. 결혼 초 두 나라의 문화 차이 때문에 사소한 농담 한마디가 부부 싸움으로 번졌던 에피소드며, 일본에서 인기 있는 한국 드라마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한·일 간의 껄끄러운 역사 문제에까지 대화가 이르게 됐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망언,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 주제로 떠오르자 아키코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문제는 우리 세대인 것 같아요. 요즘 일본의 10대, 20대는 좀 나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는 학교 다닐 때 그런 걸 배운 적도 없고, 정보도 거의 통제돼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부분은 까맣게 모른 채 자라났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남편 브루노도 이런 얘기를 꺼냈다. “프랑스도 잔인한 역사가 있었어요. 독일과 전쟁할 때 식민지였던 알제리나 아프리카 사람들을 전쟁터 총알받이처럼 동원했죠. 하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 그런 부끄러운 역사는 교과서에 제대로 나와 있지 않았어요. 나중에 TV 다큐멘터리나 책에서 진상을 접하게 됐지요.”

브루노는 “어느 나라든 부끄러운 역사는 있을 수 있는데 중요한 건 독일처럼 그 기억을 후손들이 가슴에 새기고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에, 얼마 전 EU 탄생 50주년 행사가 열렸던 독일 베를린의 흥겹던 축제 분위기가 떠올랐다. 베를린의 행사 현장에서 내내 눈길을 끈 것은 외교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앙겔라 메르켈(Merkel) 독일 총리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독일은 전후 오랫동안 ‘경제 대국, 외교 소국’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명실 공히 유럽의 리더로 떠올랐다. EU 27개국 지도자 중에 홍일점인 메르켈 총리가 나머지 26명의 유럽 정상들 앞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유럽의 미래를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메르켈 총리는 행사 내내 자크 시라크(Chirac) 프랑스 대통령과도 다정한 모습이었다. 유럽 통합의 역사는, 서로 피 흘리며 전쟁했던 독일과 프랑스가 손잡고 화해하면서 그 토대 위에 가능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일본과 독일은 나란히 2차대전의 전범 국가였다. 전후 급속한 성장을 통해 세계 2·3위의 경제대국이 됐다는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두 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너무 차이가 난다. 유럽에는 독일이 “또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하는 눈초리도 없고, 메르켈 총리가 발 벗고 나서면 유럽과 세계 평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각광받는다. 반면 일본이 힘을 과시할 조짐이 보이면 주변 국가들은 바짝 긴장하고 의심한다.

독일은 반세기 넘게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전 세계를 향해 거듭 사죄하고 엄청난 배상을 했다. 그 덕에 역사의 족쇄에서 풀려났다. 독일처럼 매도 먼저 맞는 게 낫지, 집단 망각과 부인을 거듭해온 일본은 스스로 족쇄에 더 단단히 묶이는 자폐 증세까지 보이면서도 사죄를 거부한다.

얼마 전 이스라엘을 방문한 메르켈 총리는 나치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는 기념관을 방문해 묵념하고 이런 글을 남겼다. “과거를 아는 사람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용기있게 과거를 말하는 독일 덕에 유럽은 담(국경)도 허물고 공동의 번영을 꿈꾼다. 고장난 녹음기처럼 “과거를 묻지 마세요”를 반복하는 일본과는 그런 멋진 미래를 함께 꿈꾸는 날이 과연 올까?


강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