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발표된 국방개혁 2020에 따라 추진중인 병력 감축과 군 구조개편은 상비전력 뿐만 아니라 예비 전력의 미래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예비전력의 병력 규모를 현재 300만 명에서 2020년까지 150만 명으로 줄이는 대신 실전적 훈련과 전투물자를 충분히 확보해 명실상부한 정예군으로 거듭나도록 한다는 것이 군 당국의 복안이다.
이를 위해서 현재 읍면동 단위로 구성된 3800여 개의 예비군 중대 중 1500여 개를 감축하는 한편 전투와 작전, 군수분야에서 오랜 경험과 실전능력을 갖춘 장교출신 전역자를 예비군 지휘관으로 참모 2600여 명을 선발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또 향토사단 예하에 향토방위대대, 지역동원 센터, 예비군 훈련센터를 설치해 실전적 교육훈련과 동원시스템의 개선을 이루겠다는 복안이다.
그동안 예비군의 정예화를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는 지적은 군 안팎에서 계속 제기돼 왔다. 유사시 북한군의 위협에 대처하고 미래 안보환경에 적합한 전력체제를 갖추려는 예비전력을 상비군에 버금갈 만큼 '업그레이드' 시키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작업의 중요성은 북한군의 예비전력 현황을 보더라도 잘 드러난다. 사실상 '병영국가'인 북한의 예비전력은 교도대 62만 여명, 노농적위대 572만 여명, 붉은 청년근위대 94만 여명 등 총 728만 여명에 달한다.
우리 군 당국은 이보다 훨씬 많은 74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은 110만 명의 상비군 외에 막대한 예비 전력으로 개전 이후 한미연합사의 공세를 저지하고 보름이내 남한 전역을 점령한다는 전략을 고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연합군이 질적으로 전력 우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종심이 짧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발발할 경우 북한군의 예비전력은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전후방이 사라진 전장에서 예비전력은 사실상 상비군과 같은 수준의 전투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세계 최대 규모인 북한군 특수부대의 후방 침투를 저지하려면 예비전력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리언 러포트 전 주한미군 사령관도 재임 시 "한국은 현역 외에 유사시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200만의 예비전력을 보유해 어떤 군사적 위협도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 하기도 했다. 미래 전장 환경에 부응하기 위한 예비전력의 변혁은 이미 굳어진 대세로 보인다.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은 오래전부터 군사변혁(RMA)을 통해 상비전력과 함께 예비 전력의 '환골탈태"를 앞장서서 추진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의 예비전력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을 거치면서 상비전력에 육박하는 수준의 전투력을 보유하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젠 상비전력의 지원 역할에서 벗어나 각급 제대별로 상비전력과 완벽한 팀워크를 이뤄 저강도 분쟁을 물론 테러와의 전쟁, 평화유지 임무에 적극 참여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발간된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주간 국방논단 '미국예비군의 기동전략체제로의 전환의미'에서 정원영, 김규현 박사는 미국이 상비전력과 예비전역의 실전적 통합(TFI)을 달성한 대표적인 국가라고 분석했다. 미국 예비군은 1990년대부터 실전(實戰)에 매우 높은 기여를 통해 지금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논단에 따르면 1995년이래 보스니아 사태와 코소보 사태 때 소집된 미국 예비군 규모는 각각 약 3만 5000명과 약 1만 1000명 수준이다. 또 1, 2차 이라크 전에는 약 26만 5000명이, 하이티 민주주의 복구작전 때는 8000명이 참가했다.
이 같은 실전적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국 예비군은 21세기 전장에 적합한 군 구조 개편과 현대화를 강력히 추진해 왔고, 지금은 이 같은 미 예비군 원정대(AREF : Army Reserve Expeditionary Force)의 창설까지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테러전에 부응하기 위해 추진 중인 AREF는 장비로 무장하고 동원체제도 '지역 고정형'에서 '기동형'으로 바꿔 언제든지 필요한 지역에 신속히 투사할 수 있는 '21세기형 원정 예비군'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예비군 전력 현황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변 강대국들의 끊임없는 외침을 이겨낸 소강국 답게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잘 짜여진 예비군 조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스라엘 예비군은 역종별로 전시에 군부대를 보조하는 14∼17세기 청소년층으로 구성된 가드나를 비롯해 주력부대인 제1예비역, 지원부대인 제2예비역, 민방위 등으로 나뉜다. 가느나와 제1예비역은 여성도 편성돼 남성과 똑같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스라엘 예비군의 가장 큰 특징은 별도의 예비군 전담기구나 부서가 없고, 총참모부 예하에서 상비전력과 동일한 지휘체계를 따른다는 점이다. 이 같은 지휘 체계의 일원화는 예하부대까지 이어져 상비군과 예비군이 전평시 각종 임무를 한 지위체계에서 수행하도록 돼 있어 고도의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
또 유사시 이스라엘의 지상 전력을 비롯한 주력군은 소집된 예비군 주축으로 편성되고 매우 수준높은 예비군 교육훈련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스라엘 예비군들은 매년 최대 55일 간의 훈련기간을 통해 각개 전투부터 여단 규모 이상의 부대전술훈련까지 받게 된다. 상비군과 다름없는 조직체계와 훈련을 받는 이스라엘 예비군은 유사시 24시간 내 전 병력을 소집할 수 있는 신속한 동원 태세까지 갖추고 있다.
영세 중립국으로 상비전력이 없는 스위스의 예비전력도 눈여겨볼 사례다. 우리나라와는 안보환경이 전혀 다르지만, 스위스도 어느 나라 못지 않은 강력한 예비전력을 보유 운용하고 있다. 스위스의 예비전력은 크게 민병대와 민방위로 나뉘고, 민병대는 연령별로 정예군(20대 초반∼30대 초반), 보충군(30대 초반∼40대 초반), 후비군(40대 초반∼50대 초반)으로 세분화된다.
스위스의 예비전력의 주요 특징은 동원 체계를 매우 간소화시켜 유사시 48시간 내 60만 명 이상의 대군을 소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이다. 또 개인화기를 비롯한 훈련 장비들을 각 가정에 보관함으로써 장비 보관 및 유지에 들어가는 예산을 크게 줄이고 군사 훈련 요소를 가미한 각종 스포츠 대회를 각지에서 연중 개최해 평소 예비군 훈련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현재는 물론 미래에 직면할 안보환경을 고려할 때 예비 전력의 정예화는 앞서 언급한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시급한 군사적 과제이지만, 인력과 예산투자는 상비 전력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고 있다. 많은 국민들도 예비군이나 동원 분야에 대한 관심이 소홀한 게 사실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예비군 훈련을 거추장스럽게 여기거나 아예 불참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남북 화해무드가 확산되고 평화체제가 본격 거론되면 예비전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평화체제의 핵심과제인 남북간 군비 축소가 본격 추진될 경우 상비 전력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럴수록 예비전력의 기능과 책임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물론 주변국과 당당히 어깨를 겨룰 수 있는 미래 안보역량을 갖추기 위해선 상비전력 뿐만 아니라 예비전력의 발전을 위한 민군의 노력이 절실하다. 예비 전력의 선진 정예화는 21세기 한국안보를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깨달아야 할 때라는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라고 본다.(konas)
윤상호(동아일보 기자)
출처: 월간 '自由'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