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敎育.學事 關係

아이들에게 영어학원보다 중요한 것

鶴山 徐 仁 2007. 3. 22. 19:02
2007년3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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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영어학원보다 중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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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있는 NGO(비정부기구) ‘국경 없는 기자회’를 취재하고 오는데 어려운 숙제를 받은 듯 마음이 무거웠다. “18년째 감옥에 있는 미얀마의 언론인 윈틴 기사를 같은 아시아 국가인 한국에서도 많이 써 달라”는 로베르 메나르 사무총장의 당부 때문이었다. 그는 “외교관들이 기사를 번역해 본국에 보고할 것이고, 언론 탄압을 가하는 정부도 외국 여론은 의식할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해 줬다.

내 일에 쫓겨 다른 아시아 언론인의 운명까지는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처지라 생경한 부탁에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파리에 20명의 직원을 둔 작은 NGO가 국제적 명성을 갖게 된 것도 이렇듯 내 나라, 남의 나라 가리지 않는 세계화된 시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불타는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한국 사회에서 자라난 토종 한국인으로, 나는 서구 사회에서 이런 유의 일상화된 세계화를 접할 때마다 충격받고 학습하느라 숨가쁘다. “유럽 외교관들은 자기 나라 국익뿐 아니라 인권이나 언론 자유 같은 보편적 가치를 위해서도 일하는데, 아시아 나라들은 정부부터 이런 문제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메나르 사무총장의 말도 내내 뇌리를 맴돌았다. 북한 인권 문제를 집요하게 유엔 인권위원회에 상정한 것이 바로 EU(유럽연합)였는데, 이런 맥락에서 보니 이해가 됐다.

얼마 후, 비슷한 문화적 충격을 또 받았다. 초등학교 2학년 된 아들과 세계 지도를 펴 놓고 지도 찾기 놀이를 할 때였다. “이번엔 아프리카 나라, 짐바브웨가 어디 있을까?” “응~, 찾았다, 여기!” 작은 손가락으로 지도를 꾹 누르며 아들은 자랑스럽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엄마, 짐바브웨는 내가 1유로 내고 사 먹는 빵과 과자로, 거기 사는 친구들 도와주는 바로 그 나라예요.”

아이가 다니는 파리 외곽의 국제학교에서는 한 달에 두 번씩 학부모들이 자원봉사로 빵과 과자를 구워 간다. 그걸 전교생이 1유로(약 1200원)씩 내고 사 먹는다. 그렇게 모은 돈을 짐바브웨 어린이들을 돕는 데 쓴다. 학교 게시판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짐바브웨 어린이들이 보낸 감사의 편지가 붙어 있다. 아이들도 짐바브웨 친구들한테 편지를 쓴다.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받은 용돈 1유로를 통해 ‘내 힘으로 지구촌 어딘가에 사는 친구를 돕는다’는 세계화의 작은 실천을 경험하는 것이다. 고사리 손에 ‘세계’를 담고 커 나간다.

흔히 프랑스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일상에 ‘세계’가 있다. 아파트 벽에는 시민단체들이 ‘안 입는 옷이 있으면 ○일 ○시까지 현관 앞에 놓아 달라”는 공고문을 붙여 놓는다. 그걸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에 사는 어린이에게 보낸다. 수퍼마켓에서 파는 한 생수 병에는 ‘이 물 1?를 사면 니제르에 우물을 파 그곳 어린이들에게 물 10?를 공급해 줄 수 있다’는 기업의 후원행사 설명이 붙어 있다. 프랑스 NGO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이름도 ‘국경 없는 기자회’ ‘국경 없는 의사회’처럼 ‘국경 없는…’으로 시작되는 명칭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의 세계화는 어떤 모습일까?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자면 영어가 필수’라며 세 살배기부터 영어 학원으로 등 떠미는 사회다.
하지만 국경 없는 시대에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영어만이 아니다. 내 나라, 남의 나라 가리지 않고 세계적 가치와 이슈를 공감하고 실천하는 것, 그렇게 ‘큰 그릇’으로 가르치고 키우지 않으면 편협하고 폐쇄적인 한국인이라는 오명을 쉽사리 벗기 힘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든다.


강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