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고려 궁중비사] 16. 亂中佳緣

鶴山 徐 仁 2007. 3. 8. 20:16
팔만대장경강조가 죽은 후에도 고려의 여러 장군들은 선전 분투했고 여러 번 적군을 물리치기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람을 보내어 강화를 꾀하기도 했으나 적군은 집요하게 남으로 남으로 진격해 내려왔다. 이렇게 되자 왕성조차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현종은 여러 신하들의 권유도 있고 해서 적의 예봉을  피하여 왕성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난 길을 떠났다. 도중에 왕을 원망하고 있던 김치양의 잔당들의 장난으로 여러 차례 위험한 고비를 겪다가 공주(公州)땅에 이르러서야 겨우 공주절도사 김은부(金殷傅)의 영접을 받게 되었다.
 
김은부는 영주 안산현(永州安山縣) 사람으로 성품이 몹시 근검했다. 성종 때엔 견관승(甄官丞)이란 벼슬을 지냈으며, 현종 때에 이르러서는 공주절도사가 되어 그 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전진 속에 시달린 왕을 대하자 김은부는 눈물을 흘리며 애석히 여겼다. 그는 동분서주(東奔西走)하여 예의를 갖추고 왕을 영접했다.
 
은부는 왕의 모습을 보고 무엇보다도 피난길에 조석조차 변변히  취하지 못한 것을 짐작했다. 그는 곧 왕을 자기 거처로 인도하고, 산해진미(山海珍味)를 갖추어 대접하니 실로 오랜만에 대하는 별식이었다. 
 
이때 음식 시중을 드는 여자들 틈에 끼어 한층 아리땁고  품위 있는 처녀가 왕의 눈에 띄었다. 특히 피난길에 여인을 멀리한 왕의 눈에는 그 처녀의  모습이 실물 이상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김절도사, 저기 저 처녀는 어떠한 처녀이오?"
 
왕은 앞에 끓어 앉아서 대접하는 은부에게 물어 보았다.
 
"예,  바로 신의 장녀이옵니다."
 
왕은 다시 곁눈질로 그처녀를 바라보며 "경은 좋은 딸을 두었구료. 이런 시골에서 보기 드문 가인인 걸."하면서 슬며시 눈웃음을 띄웠다.
 
그 이튿날 아침이었다. 은부가 장녀를 데리고 왕의 침실로 들어왔다. 처녀는 비단옷 한 벌을 들고 있었다.
 
"폐하 변변치 못한 것이오나 갈아입으시도록 준비했사옵니다."
 
은부가 이렇게 말하자 처녀는 그 옷을 왕의 앞에 공손히 놓았다. 
 
그러고는 딸에게 "그럼 너는 폐하가 갈아입으시는 걸 도와 드리도록 해라." 이렇게 일러놓고 은부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처녀와 단 둘만이 되자 왕은 처녀의 얼굴과 비단옷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탐스럽고 그윽한 정이 느껴지는 처녀였다. 왕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몹시 끌렸지만 처음 대하는 처녀일뿐더러 왕이라는 지위를 생각해서라도 경한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겨우 이런 말을 던질 뿐이었다.
 
"어느 틈에 이렇게 옷 한 벌을 다 지었는고?"
 
"어젯밤에 지었사와요."
 
"어젯밤에… 혼자서?"
 
"예."
 
"그렇다면 밤을 꼬박 새웠겠구먼."
 
처녀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가냘픈 눈두덩이 약간 분 것 같기도 했다.
 
왕은 더욱 고맙고 살뜰한 정이 끓어올랐다. 왕은 잠자코 전진에 헐고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기장이며 품이며 몸에 대고 잰 듯이 꼭 맞았다.
 
"어떻게 짐의 체격을 알고 이렇게 잘 맞는 옷을 지었을고?"
 
"눈짐작으로 지었사온대 맞으신다 하시니 다행이옵니다."
 
"눈짐작으로? 그대는 아리땁고 마음씨가 고울 뿐 아니라, 대단히 슬기로운 처녀로군."
 
왕은 칭찬해 마지않았다. 옷을 갈아입었으니 이제 떠나야 한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는지 모르니 길이 몹시 바쁘다. 
 
욕심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깊은 정을 맺거나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지금의 처지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왕은 처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내 오늘 일은 결코 잊지 않으리라."라는 한 마디 말 속에 모든 정을 표시하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떼었다.
 
왕에게는 이미 두 왕후가 있었다. 원정왕후(元貞王后)와 원화왕후(元和王后)로 피난길에도 왕을 따라오기는 했다. 
 
그러나 두 왕후는 모두 혈족 결혼으로서 정책적인 이유로 맺어진 것 인만큼 살뜰한 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또 등극하기 전에는 정적의 독수(毒手)를 피해서 중이 되어 산중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여인과의 접촉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
 
그러므로 나이 이십팔 세나 되어 김은부의 딸에게 첫사랑을 느끼게 된 셈이었다.
 
김처녀의 모습을 가슴에 안고 다시 남으로 내려간 왕은 그 해 정월 십삼일에 나주땅에 당도했다.
 
여기서 왕은 글안[契丹]진영에 가서 적군의 철병을 요구하도록 보낸 하공진의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공진은 지난날 여진인을 친 때문에 글안군의 침공을 초래케 한 장본인인만큼 이렇게 왕이 황성을 버리고 피난길을 떠나게까지 된데 대해서 통렬히 책임감을 느꼈던 모양이었다.
 
왕이 남쪽으로 행차한다는 소식을 듣자 이보다 앞서 죄가 풀려 원직을 복구했던 하공진은 왕의 앞에 꿇어 엎드려 진언했다.
 
"글안은 원래 딴 뜻이 있어서 신이 여진인을 친 것을 기화로 침공하였사오나, 겉에 내세운 명분은 어디까지나 전왕을 내몰은 강조의 죄를 따진다는 것이었사옵니다. 그러하온데 이미 강조가 그들 손에 잡혔사오니 더 이상 전화를 확대시킬 명분이 없을 것 이온즉 사람을 보내어 철병을 청하면 응할 수도 있을 줄로 아뢰오."
 
글안군의 철병은 왕도 간절히 원하던 바였다. 일이 뜻대로 될는지 아니 될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공진의 진언을 받아들여 고영기(高英起)와 함께 글안 진영으로 보냈다.
 
창화현에 당도한 공진 등은 낭장 장민(張旻)과 별장 정열(丁悅)에게 왕의 친서를 주러 먼저 글안 진영에 들어가서 할 말을 일러 주었다. 즉 '우리 국왕께서 친히 오시기를 원합니다만 귀군의 군세가 두려울 뿐 아니라, 내란을 만나 남쪽으로 피신하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배신 공진 등을 보내어  왕의 뜻을 전하려 합니다만 공진 등도 역시 겁을 먹고 진영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으니 바라건대 군대를 물려 주셨으면 합니다.'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장민 등이 적진에 당도하기도 전에 적의 선봉이 이미 창화에 쳐들어 왔다. 공진은 하는 수 없이 직접 적진으로 들어가서 글안주를 만나서 장민 등을 시켜 하려던 말을 얘기했다.
 
공진의 말을 들은 글안주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공진을 쏘아보며 "네 말이 사실이라면 너의 왕은 지금 어디 있는고?"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공진은 시침을 뚝 따고 말했다.
 
"남쪽으로 행차하신 것까지는 알고 있사오나 어디 계신지는 알 수 없사옵니다."
 
"그래?  그렇다면 너희 국왕이 갔음직한 남쪽 땅이 얼마나 먼 곳인고?"
 
글안주는 다시 이렇게 물어보았다. 하공진은 글안주가 고려 남쪽 땅의 지리에 밝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천연스럽게 얘기했다.
 
"우리 땅이 대국과 비길 바는 못됩니다마는 그래도 남쪽 끝까지 가자면 몇 만리나 될는지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이옵니다."
 
"몇 만리나 된다?  그렇다면 속히 불러올 수도 없는 일이로군."하고는 일단 회군하기로 했다. 
 
이것은 물론 하공진의 청을 들어 주었다기보다 전선이 몇 만리나 연장된다면 보급에 큰 고생을 해야 할 것이며, 장졸들의 사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이므로 일단 그런 조치를 취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공진 등을 볼모로 끌고 갔다. 어쨌든 적군이 철수했다는 보고를 받자 왕은 그달 이십일일  나주를 떠나 황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왕의 마음은 황성 궁중으로 향하기보다 공주 땅에 있을 김처녀에게로 곧장 달렸다. 그러기에 두 왕후만 사람을 달려 먼저 보내고 왕 자신은 다시 공주땅으로 발길을 옮겼다.
 
왕이 행차한다는 기별을 받자 김은부는 멀리 마중을 나와 지난날보다도 한층 더 융숭히 영접했다. 김은부가 정성을 다해서 대접하는 산해진미도 물론 달가운 것이었지만, 그보다도 아쉬운 것은 한시도 잊지 못하던 김처녀의 모습이었다.
 
"이곳에 오니 마치 오래 비어 두었던 자기 집에 돌아온 것 같구료. 모든 것이 반갑고 모든 사람이 정답고…"
 
나이 젊고 수줍은 왕은 자기 심중을 직접 드러내지 못하고 겨우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김은부는 왕의 뜻을 재빠르게 짐작했다.
 
"이곳에도 폐하의 성덕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사옵니다. 특히…"하고 잠간 말을 끊다가 "밤이나 낮이나 폐하를 사모하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낸 한 처녀가 있사옵니다."
 
그리고는 슬쩍 눈웃음을 쳤다. 그 말에 단순한 왕은 낯이 붉어지며 다급히 묻는다.
 
"그 처녀가 누구요?"
 
"곧 대령하겠사옵니다."
 
김은부가 눈짓을 하니 시종을 들던 자들이 일제히 물러가고 그 대신 꿈에도 잊지 못하던 김처녀가 들어왔다. 
 
전보다 어딘지 초췌해 보이는 김처녀는 그래도 정성껏 단장한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다소곳이 절을 하더니 꿇어 엎드렸다. 그리고 손에 들었던 고운 보따리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어느덧 방문은 굳게 닫히고 방장마저 내려진 속에 처녀와 단둘이만 대하자 왕의 가슴은 그저 뛰기만 했다.
 
"고개를 드오. 무엇이 그리 부끄럽다고?"
 
왕은 자기 자신의 수줍음을 꾸짖기라고 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처녀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가물거리는 촛불 아래 반짝이는 처녀의 두 눈은 억만 가지 정을 담고 호소하는 듯 왕에게는 느껴졌다. 
 
처녀를 만나면 이런 말도 하리라, 저런 말도 하리라, 벼르고 벼르던 왕이었다. 그러나 막상 대하고 보니 말문이 막혀 그저 망설일 뿐이었다. 방안 공기가 어색해졌다.
 
그러자 처녀가 앞에 밀어 놓았던 보자기를 펴기 시작했다. 수줍은 왕은 그것을 보자 겨우 말할 거리를 찾았다.
 
"그건 또 무엇인고?" 하고 보따리 속을 들여다보았다.
 
왕의 이마가 처녀의 이마와 거의 마주 닿게 되자 성숙한 여인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왕은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찔끔해서 물러앉았다. 수줍어 보이고 연약해 보이는 처녀가 오히려 왕보다 대담했다.
 
"폐하, 이것을 갈아입으시어요."
 
처녀는 왕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왕은 다시 용기를 얻었다.
 
"오, 또 옷을 지었구먼. 그대가 손수 지은 건가?"
 
"예."
 
"솜씨도 참 곱구먼. 감도 좋고…"
 
왕은 손으로 부드러운 비단옷을 어루만졌다.
 
"이 옷을 짓느라고 얼마나 수고를 했을 고?"
 
별로 그렇게 느껴서 한 말은 아니었다. 말꼬리가 끊어질까 보아 그저 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미 수줍음을 거둔 처녀는 정이 넘치는 눈으로 왕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한올 한올 바늘을 뜨면서 폐하의 용안을 그리어 보았사옵니다…"한다. 
 
그 말에 "오, 그렇듯 짐을…" 왕은 떨리는 소리로 이렇게 외치다가 말끝을 맺지 못하고 또 머뭇거린다. 
 
다른 일에는 상당히 슬기롭고 과단성도 있는 왕이었지만 이런 일에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막막할 뿐이었다.
 
"폐하, 어서 갈아입으시어요."
 
처녀는 먼저 하의를 펴든다.
 
"오, 갈아입어야지. 누가 지어 준 옷이라고…"
 
왕은 헌 옷을 훌훌 벗고 처녀가 들고 있는 옷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처녀는 그 옷을 내어주지 않고 들고만 있었다. 입는 것을 돕겠다는 시늉이었다.
 
왕은 하의에 한쪽 다리를 꿰다가 너무 당황한 나머지 기우뚱하고 몸이 기울어졌다.
 
"폐하…"
 
처녀는 육중한 왕의 상반신을 풍만한 자기 가슴으로 안아 받들었다. 아무리 수줍은 왕이었지만 이미 두 왕후를 맞은 몸이었다.
 
그러나 처녀는 왕의 두 팔이 허리에 감기려 하자 재빠르게 빠져나가 두어 걸음 물러섰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하면서 여전히 눈으로는 웃고 있었다.
 
"안 되다니… 이제 와서…"
 
왕은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다가갔다. 수줍었던 왕이지만 한 번 불길이 당겨지자 자제 할 줄 모르는 짐승처럼 변해 벼렸다.
 
그러나 처녀는 요리조리 피하며 지껄였다.
 
"폐하,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그러시면 소녀는 혼사길이 막히옵니다."
 
"혼사가 무슨 상관인고? 궁중으로 데려가면 될 것 아닌고?"
 
"궁중으로 데려가시면 소녀를 후궁으로 삼으시려는 뜻이옵니까? 소녀는 그런 자리는 싫사옵니다. 그런 뜻에서 소녀를 가까이 하신다면 혀를 끊는 한이 있더라도 폐하의 뜻을 좇지 못하겠사옵니다."
 
"누가 후궁을 삼는다고 했는고? 어엿한 왕후를 삼겠다는 거지."
 
왕은 앞뒤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왕후를 봉하시다니요? 지금 폐하께는 왕후가 두 분이나 계시지 않사옵니까?"
 
"왕후는 몇 사람이든지 봉할 수 있는 거야. 둘이면 어떻고 셋이면 어떻담."
 
"셋 중에 하나란 말씀이어요? 그런 건 싫사옵니다. 소녀는 소녀만을 사랑하는 분에게 몸을 맡기고 싶사옵니다."
 
"아따! 왕후가 셋이라고 다 한결같이 사랑하겠소? 사랑이 가는 곳은 오직 한 곳 뿐이지."
 
연정이 제법 왕의 입을 미끄럽게 했다. 처녀는 왕의 두 눈을 말끄러미 응시했다.
 
그리고는 왕이 식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했는지 비로소 품에 안기었다.
 
그 후 왕은 김은부의 집에서 엿새를 묵은 다음 황성으로 돌아갔는데 왕은 과연 환도 즉시로 처녀를 왕후로 삼았으니 곧 원성왕후(元城王后)이다.
 
원성왕후는 왕과 제九대 덕종(德宗)과 제十대 정종(靖宗)을 낳았으니 깜찍한 시골 처녀의 야망은 최고로 이루어진 셈이다.
 
장녀를 왕후로 미는데 성공한 김은부의 세력은 갑자기 강대해졌다. 그리고 세력이 강해지면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정이다. 김은부는 장녀와 의논해서 자기 세력을 공고히 하는 뜻에서 두 딸을 다시 왕후로 들여보냈으니 곧 원혜(元惠)왕후, 원평(元平)왕후가 그렇다.
 
이렇게 되니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다던 처녀의 속삭임도 결국 왕의 마음을 낚으려는 술책이 아니었다면 부친의 정략결혼에 순정을 희생시킨 셈이다.
 
그 후 김은부는 형부시랑(刑部侍郞), 호부상서(戶部尙書), 중추사(中樞使) 등을 역임하다가 현종 팔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딸들의 덕을 단단히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