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건 어렵게 만들고,
복잡한 건 단순화 시켜 유리한 국면을 창조하라 / 선동 대통령
정말, 대~단~해요, 우리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평통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1시간10분동안 웅변을 토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주우욱 읽어 봤다.
대통령의 수준을 정확히 알 수 있게 해주는 내용이었다.
말이 안되는 말, 앞 뒤가 모순된 말, 사실관계가 왜곡된 말,
자신의 편견을 진리로 착각하고 있는 말, 말과 행동이 다른 말---등이 곳곳에 녹아 있다.
듣는 사람은 헷갈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중은 5번이나 웃었고, 10번이나 '일동박수'를 쳤다.
특히 처음 조용하던 평통위원들은 뒤로 갈수록 연설에 심취,
연설이 끝날 무렵엔 3번이나 잇달아 박수를 쳤다.
요즘 같이 대통령 때문에 대부분 국민이 가슴 답답해 하는 시절에
비록 워커힐의 좁은 연회장에서나마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일동 박수를 10번이나 치는 일이 벌어졌다니
대단한 선동능력이다.
그야 말로 놀랠 노자다.
노무현 대통령은,
때론 웃고, 때론 울고, 또 때론 분노하는 모습을 적절히 섞어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조화시켜 가면서
청중을 서서히 빨아 들이는 능력이 있다.
모순과 왜곡, 편견,짜집기,
게다가 친숙한 대중언어를 구사하는
선동의 '기술'이 탁월하다.
청중이 간단히 알 수 있는 사안이지만 제대로 알려지면 자신에게 불리한 사안은
'매우 복잡하게 설명해 도대체 알 수 없는 사안으로 둔갑시키고,
이런 저런 사안이 얽힌 복잡한 사안은 단순화 시켜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내는,
그런 천재적 능력도 노무현 대통령에겐 있다.
일찍이 장인의 전력을 묻는 질문에
'그럼 마누라를 차란 말이냐'로 응수하는 순간 둔갑술 말이다.
매조히스트처럼 자신을 비하시켜, 그를 통해 오기를 자가발전시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저주를 폭발시키는 재주도 있다.
이런 유능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업보를 ,
지금 우리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
이렇게 덧 없이 언제까지 국가에너지를 길바닥에 쏟아버려야 하는지
다시 한번 절망하게 된다.
도대체 대통령이란 자리가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아무 개념이 없다.
그냥 대통령이면 집권기간 5년 동안 내내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해치울 수 있다는,
해치워야만 한다는
상스런 시정잡배같은 조폭 두목같은 의식속에 사로잡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긋지긋하다.
말을 쏟아낸지 하루가 다 되어 가는 지금 이순간,
아마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자기가 뿌린 말들로 시끄러워진 세상을 헤헤 거리고 즐기고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면 핏발이 선다.
'아직도 나는 죽지 않았다!'고 메롱~~~하는 모습.
진짜 무책임 정치의 극치다.
DJ도 YS도 그 이전의 노태우대통령도 후보시절이나 대통령 시절이나
연설을 재미있게 했다는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당시 유세장은 선거열기로 뜨겁긴 했지만
대개는 꾼들이나 열성지지자들이
만들어 내 연출한 풍경이지,
그들의 연설이 청중을 감동시켜 들었다 놓았다 했던 건 아니었다.
노무현 후보의 연설은 그렇지 않았다.
청중은 그의 말에 빨려들어가 사람을 흥분시켰다.
청중을 홀리는 선동 능력이 그에겐 있었다는 말이다.
후보시절엔 유용한 능력일 것이다.
각 대통령들의 연설은 유세때와 비교해선 훨씬 재미가 없다.
참모들이 정확하게 잰 내용에서
거의 토씨 수준의 오차밖에 없이 읽고 마는 게 보통이다.
그러니 그런 연설을 졸지 않으면서듣는 다는 건 참 고역이다.
대통령 후보로서나, 혹은 대통령으로서나
천하 세상사를 두루 모두 알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신의 말이 세상에 미치는 파장이 너무나 큰지라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대한 책임을 져야하니
재미없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스스로의 말에 책임을 지기위해선
계산된 말 밖에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국민에 대한 무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까이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면 된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처럼 말이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는 행태때문에 국민들 뇌리에 박힌 우리의 노대통령 이미지는
신중치 못한, 경박한 대통령이란 것이다.
한마디로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해 왔다.
지난 4년간의 그런 행적을 대통령 스스로는
매우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어제,
악마같은 저 국민들, 자신을 굴러온 돌로 여기는 저 국민들만 아니면,
대통령 권력을 마음껏 써 볼 수 있을텐데---
안타까워 하면서 책상을 내리쳤다.
그는 이미 후보시절에도,
'재미 좀 보기위해' 수도이전공약을 서슴지 않고 내뱉고
지키지도 못할 아파트 분양 원가공개등을 쏟아 냈다.
지금 후보시절의 그런 컨텐츠의 유부실을 새삼 따지려는 게 아니다.
후보시절, 그런 행위는 또 눈감아 줄 수도 있을 법하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입맛에 맞추다 보면
오버도 불가피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자신의 편견과 아집의 틀속에 자신을 깊이 가두고
분노의 말을 쏟아내고 있는 모습에 다시 끊임없이 절망한다.
그리고 왜 그렇게 자학하고 있는지 안타깝기도 하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노무현 대통령 자신은
전방위의 국가가 당면한 모든 문제에
모두 통달했다는 과대망상에 빠져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대단히 논리적으로 청중을 설득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앞뒤가 어긋나고, 사실관계 해석에
자신의 편견과 오만이 깊이 개입되어
깊게 왜곡되거나 색칠 된 사실을 가려 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을 현장에서 들은 평통위원들은
아마 장장 70분동안 계속된 연설을 들으면서 진이 빠져
기억에 남는 것은 잡배의 막말과
희화화된 국정의 농단에서 받은 감동뿐이지 않을까 싶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갈수록 오기로 똘똘 뭉쳐
죽기살기로 스스로 만들어 낸 '적'과 싸우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 같다.
남은 1년, 대통령 때문에 얼마나 큰 피해를 더 감수해야 할 지 걱정이다.
아직도 그의 손엔 너무나 많은 권력이 쥐어져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기득권 세력에의해 박탈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다시 대통령의 자학을
자신의 자학으로 치환시켜 카타르시스를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깃발 아래 뭉치자며 몰려다닐 때, 또 한번 비극이 시작될 수 있다.
그게 더욱 두렵다.
노 대통령이 퇴임후 국회의원이나 부산시장 같은 데도 뜻이 있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그의 선동 재주는
국민소득 2만달러 나라에선 꽃피울수 없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그가 같고 있는 능력을 사장시키지 않기 위해서
아프리카나 남미쪽으로 그 재능을 수출하는 길을 모색해 보는 것이 좋겠다.
아마 남미쪽에선 최고 인기 상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측을 해본다.
열 받은 아장아장
한번 어떤 오류들을 범하고 있는지 보자.
노대통령 민주평통 상임위 발언 전문
1년에 한 번 이렇게 함께 보는 아주 소중한 기회인 것 같습니다. 세 분 건의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내용이 참 좋습니다. 우선 수준이 전문가 수준입니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직접 정책 보조를 받거나 또는 내각을 통해서 도움을 받고 있는 그 사람들의, 그 전문가들의 수준에 조금도 못지 않는 아주 전문적 수준의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뜨끔한 데가 있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가슴이 뜨끔한 데가 있지요. 전체 내용에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비판한 내용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뜨끔합니다.
첫 번째 뜨끔한 이유는, 세 분 위원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아주 구체적인 특별한 내용 이외에는 정책 기조가 똑같은 방향에 서 있는데, 왜 같은 말씀을 또 반복하실까, 이런 의문이 하나 생기고요. 두 번째는 건의 중에 원칙이라든지 신뢰라든지, 또는 일관성, 국민적 합의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이라는 것은 이 점에 있어서 우려가 있다 하는 것을 표명하신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잘 알아들었습니다. 제가 구구하게 변명 드리거나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제가 뜨끔했다라고 하는 첫 번째 문제에 관해서는 모든 정책이 우리가 지향한다고 다 그대로 되는 것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로 가려고 하지만 막히는 수도 있고 또 부득이 돌아가야 되는 수도 있고 지체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 문제에 관해서는 조금 변명할랍니다. 변명하기 전에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저도 요즘 제 아내하고 한 이틀에 한 번씩 말다툼을 합니다. 저더러 아내가 자꾸 신문 보래요. 저도 신문을 직접 보기도 하고, 또 신문을 요약 분석한 보고를 따로 보고받기도 하는데, 신문 보고 나가서 참모들하고 대화를 하면 자꾸 엇나간다. 결국 나중에 맞추어보면 제가 부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대통령이 긴장하더라도 정보가 입력이 되는데, 이것은 몇 날 몇 시, 어느 자리에서 누구에게 들은 얘기이고, 이건 몇 날 몇 시에 어느 보고서에서 본 얘기고, 이것은 어느 신문에서 본 얘기고, 이게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 정보라는 것은 접수되면서 일정하게 그럴 듯하다 싶어서 반응이 딱 일어나면 그냥 자기의 기억으로 입력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입력되어 버리고 그런 인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인식을 가지고 있다가 그 일을 책임지고 있는 참모하고 만나서 얘기해 보면 이게 말이 앞뒤가 안 맞습니다. 우리 안보실 참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차례 그런 것을 반복하고 한 다음에는 요즘은 좀 늦더라도 좋으니까 좀 기다립니다. 안보실의 보고를 먼저 받고 그 다음에 신문이나 이런 것은 구문으로 다시 참고삼아 정리하는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란 자의 정보 판단이 그래 여기서 한마디 줏어 듣고, 저기서 한가지 보고 받고, 어느 신문에서 보고--,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가?
그렇다면 진짜 한심하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정보관리를 하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진짜 우리는 불쌍한 국민이다.
도대체 어떻게 대통령이란 사람이 저렇게 한심하게 정보를 수집- 관리하고,
그리고 또 판단하는지를 보면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됐을 때 제 판단이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러면 주는 것만 받아먹고 시민들의 폭넓은 다양한 정보는 차단되는 것 아니냐 그런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문, 방송, 인터넷, 이 모든 정보를 정부가 전부 다 실시간 전부 정리를 합니다. 정리를 해서 그 중에서 정부의 정책에 관련된 기사로서 그 말이 맞다, 사실도 맞고 때로는 의견이 맞고, 그럴 때에는 그것을 전부 정리를 다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 다음에 잘못된 것은 전부 고칩니다. 이것은 언제까지 시행령을 고치겠다, 이것은 언제까지 법을 고쳐야 되니까 입법 조치를 취하겠다, 이것은 예산 조치하겠다, 이것은 우리가 그냥 처분으로서 알아서 하겠다, 전부 보고서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 함량없는 쓸데 없는 소리. 대통령의 아래사람 하는 일을 자신이 뭤땜에 자신이 하는 일처럼 난리법석인가?
이 보고서를 쓰면 그것을 우리 정책실에서, 국무조정실에서 1차적으로 체크하고 정책실에서도 체크하고, 국정홍보실에서는 기사의 건수를 전부 체크해서 주간 보고를 저한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제가 너무 바빠서 비서실장이 한 번 더 챙겨보고 월간 보고로 하게 해달라고 좀 줄였습니다. 시스템이 안착됐기 때문이지요.
뭐하느라 바쁜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아래사람에 맡기면 되는 겁니다.
당신이 혹시 관심있으면 그냥 물어보면 되고, 당신은 큰 방향만 살피면 됩니다.
틀린 보도면 어떻게 하냐, 대강 어름한 것은 그냥 넘어가고, 좀 심하고 명백한 것은 반드시 정정보도를 청구합니다. 정정 요청하고, 듣지 않으면 정정 보도 신청을 냅니다. 신청해서 안 되면 소송까지 가서 청구까지 합니다. 물론 정정보도도 있고 반론도 있고 합니다. 그 다음에 항의도 있고요. 항의 정도로 하고 끝내는 것 있고, 그다음에 절반 맞고 절반이 한 쪽이 엉성해서 오해가 생길 소지가 있는 것은 해명을 달아줍니다. 이 활동을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틀린 보도를 어름하면 그냥 넘어간다고? 이 양반아, 요즘은 토씨 틀린 것까지 바로잡습니다를 내고 있는 형편이다.
시대가 바뀌어 독자가 그렇게 요구 있기 때문이다.
아니 대통령이 만나는 기자들은 하나 같이 ' 1980년대식' 기자들만 있나?
아니면 기자들을 제대로 만나지도 않으면서 머리속에 있던 고려적 기자에 대한 생각만으로 설레발을 푸는건가?
결과를 제가 전부 수렴해 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정보 흘려버린다, 그렇게는 아닙니다. 그리고 개인이 혼자 이 신문 저 신문 뒤적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체계적이고 완벽하지요.
진짜 주사같은, 아니 청와대는 직급 인플레가 워낙 심하니, 3급 행정관같은 소리하고 있다.
그게 대통령 통치행위와 무슨 상관인가. 아래 사람 하는 일까지 일일이 대통령이 다 챙기고 있다고 자랑하는 건가?
대통령이 진짜 시시콜콜한 일에 깊이 빠져 있다고 고백하는 건가 뭔가?
그래서 이제 신문기자들이 글을 쓸 때 굉장히 조심합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습관이 점차점차 붙어갑니다.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대신에 괘씸하거든요. 옛날에 공무원들은 안 그랬는데, 요즘 공무원들은 또박또박 말대꾸를 한단 말입니다. 옛날의 장관님들은 기사가 뭐가 나갔든 간에 장관이 ‘편지 잘 받았네. 언제 술이나 한잔하지.’ 이렇게, 설사 술 안 사더라도. 인사를 이렇게 하고 넘어가는데, 요즘은 장관은 안 나오고 과장, 국장, 사무관 이 사람들이 나와 가지고 당신 기사를 그거 정확하지 않소, 또박또박 따지게 괘씸하게 됐단 말이지요. 어쩌겠습니까? 철저히 파는 거지요. 정말 먼지 나는 것 없나? 잘못된 것 없나? 철저하게 파지요. 별수 있습니까? 공무원들 정신 바짝 차려야지요. 대통령이 일일이 다니면서 감사원장한테 감사 좀 잘하라고 장관 보고 내부 감사 잘하라고 이렇게 할 필요가 없지요. 기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철저히 챙겨주니까요. 그렇습니다. 괜찮은 시스템 아닙니까?
어디서 1980년대 구악기자 모습만 머릿속에 각인해 놓고 평생 써먹나?
하긴 청와대 이백만기자나 양정철 기자,
아 이병완기자 같은 자만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란 생각도 든다.
말과 행동을 따로하는 기자들만 봐 왔으니 그런 '기자관'을 깨기는 정말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요새 기자들은 토씨 틀린 것 까지 독자의 지적받고 바로잡습니다 쓰고 있다니까.
자신이 국회의원시절부터 기자들한테 소주 한잔이라도 사보고 저런말 하면 이해하겠네.
꼽사리 껴서 얻어먹기만하고 이제와서 기자들한테 술께나 산 경험이 있는 것처럼 퉁수 불고 있다는 건 정치부 고참기자면 다 아는 일이다.
수없이 있는데 ,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은 그것입니다. 제가 제일하고 싶었던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한테 원칙 없는 정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슬픕니다. 그러나 어쩔 수 있습니까? 슬프다 말하고 또 노여워하면 그것도 문제가 되고 그렇지요.
원칙없는 정부로 인식되고 있다고?
군사독재 시절처럼 '인식만 바로잡으면',
다시말해 '인식만 때려 잡으면' 없는 원칙이 생긴다고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군.
원칙이 없는 것을 원칙이 없다고 말하는 데,
그것을 슬프다 노여워한다는 게 말이되는가?
제가 좀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어디 가서 항상 강연할 때 절대로 빠트리지 않는 말 한마디가 있습니다. 신뢰입니다. 민주주의 못 해도 신뢰가 있으면 사회가 유지되고, 민주주의 해도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가 유지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신뢰를 나는 우리 사회적 가치의 최상의 위치에 있는 가치로 본다, 항상 그렇게 얘기를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정책 신뢰성이 계속 문제가 되니까 이 또한 제가 또 부끄러운 일입니다.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자숙해야 한다.
일관성, 이건 같은 것이지요. 일관성과 신뢰라는 것은 사실은 비슷하게 맞붙어있는 것이지요. 생명이지요. 국민적 합의 뭐 이런 등등 다 이런 것인데,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소위 원칙들이, 제가 가장 존중하고 꼭 실현하고 싶었던 참여정부의 최대의 목표가 지금 이렇게 지적받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좀 더 노력하겠습니다. 아니면 좀 더 다른 데 냉정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건 뭐 숙제입니다. 저는 결코 승복하지 않습니다. 승복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증명할 방법도 없습니다. 자신이 가장 존중하고 실현하고 싶었던 최대 목표가
지적받고 흔들리고 있는 게 싫다는 심정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그 지적에 승복하지 못하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설득할 방법도 없으면서
결코 승복하지 못하겠다니, 이건 뭐 유치원생 땡깡인가 뭔가?
건의 주신 부분에 대해 사실 다 좋은 말씀입니다.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고 말씀이 나온 김에, 나온 계기에 한번 얘기 해보자. 원칙이라는 것 말이지요. 상호주의, 거기에 대칭되는 원칙은 뭘까요? 일방주의 아니겠습니까? 문법상 그렇습니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상호주의에 대응하는 참여정부의 정책은 실용주의입니다. 왜냐하면 상호주의라는 것은 형식적이고 경직된 원칙이 될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해나가는 데 조건이 다르고 서로의 처치가 너무 다른데, 생각도 다르고 다른데, 상호주의 해서, 어떤 분이 말씀하는 것처럼 니가 한 대 때리면 나도 한 대 때리고, 이게 상호주의 아니겠어? 간단하게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남북관계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닙니다.
억지로 이해는 하겠는데---
대통령이면 분명한 어법을 써야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원.
상호주의에 대칭되는 원칙이 '문법상' 일방주의라고?
상호주의에 대응하는 참여 정부 정책은 실용주의인데,
상호주의는 형식적이고 경직된 원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실용주의라니--,
말은 번드르르 한데,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 사람 한명도 없을 것 같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 하면서 항상 또 누군가가 나서서
통역해 줘야하는 말을 해대니 '한국사람 맞습니까?" "맞고요."
대통령이 쉽게 쉽게 이야기하면 되지
뭔 말을 배배 꽈서 알아 들을 수 없게 만드나?
그러고 나중에 왜 나를 이해해 주지 않냐?고 목소리를 높이니 원,---
듣는 사람도 갑갑하다.
결국 우리가 추구하고 하고자 하는 목표, 평화, 신뢰, 이런 목적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놓고 그때그때 우리가 판단해야지, 그냥 상호주의라는 원칙에 묶어두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결코 일방주의적 퍼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목표를 놓고 신뢰를 확보하고, 결국은 남북간에 대화로서 보다 큰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유익하냐, 그래서 실용주의, 상호주의에 대응하는 정책 개념은 실용주의라고 이해해 주십시오.
진짜 한심하게 말하고 있다.
대강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실용주의에 입각한 상호주의에 그 기조를 두고 있다.
그런데 남북이 서로 처한 국내외적 환경이 다르니,
추구하는 정책이 일방적인 퍼주기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는 협력과 이해가 필요하다--뭐 대충 그런 내용일 것 같은데---
역시 꽈배기처럼 꼬였다.
저는 대북 송금 사건의 수사의 법률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명시적으로 반대 의견을 표시한 적도 없습니다. 이것이 많은 논란되고 있습니다만, 남북 간에 대화와 교류에 있어서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이 투명성이기 때문에 저는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추세가 투명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 비록 통치 행위라 할지라도 투명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고 합법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어서 제가 이 점은 참여정부부터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 해서 수용했습니다. 사실은 남북관계 형성에 있어서 초법적인 통치 행위가 성립할 소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단 하나 그것은 국민들이 수용해 줄 때만 최고 통치권자의 초법적인 통치 행위를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이지,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마당이면 어려운 것 아니냐, 그 당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잘했는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당시 저의 선택이었다. 이것도 하나의 원칙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옛날에 논란 됐지. 지금 그거 기억하는 국민 몇명이나 있나.
중요한 것은 스스로 밝혔듯이,
'단 하나 국민들이 수용해 줄 때만 최고 통치권자의 초법적 통치 행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법적인 행위가 그럴진대,
모든 법적인 통치행위는 국민들이 수용해 줄때만 통용되는 것이다.
국민의 소리에 귀닫고,
'국민들이 지적하고 흔든다고 승복하지 못하겠다'니 그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또 지금 이제 그동안에 몇 번 작은 일들은 있었습니다. 원칙을 가지고, 북한에서 대화를 중단했을 때 한국도 중단해 버리고 일방적 통보가 왔을 때 내가 거절하라고 명령하고 했습니다. 한 번은 거절했는데, 우리 통일부라는 데가 그렇습니다. 통일부가 어쩌든지 일이 되게 하려는 부이기 때문에, 명시적으로 지시를 해도 아 이건 좀 다릅니다. 하고 해석을 조금 달리해 가지고 어지간하면 대화를 끊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점을 크게 문책하지 않았습니다. 문책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문책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러 가지 대북 지원이 중단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원칙이기도 하고, 원칙이라기보다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북 지원을 끊고 있는 것은 인도주의 원칙 또 무슨 상호주의 원칙, 이런 원칙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전략적으로 유리하겠다, 그 판단이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동시행동원칙이나 정부, 민간 분리 원칙, 다 동의합니다. 동의하고 그렇게 노력하겠습니다. 또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해야 된다는 정 민 위원님, 비핵 공영, 이런 이름을 쓰진 않지만 이렇게 가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좀 공포해 가지고 좋은 이름을 한번 우리도 차용, 이대로 차용하든지 한번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그 다음에 냉전 구조 해체와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큰 틀의 합의를 북핵 문제 해결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9.19 공동선언에 보면 바로 이 문제가 다 같이 들어 있습니다. 평화 체제에 관한, 평화체제협상에 관한 조항도 들어 있고, 또 동북아 다자 안보 체제까지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9.19 공동선언을 그것이 지금 그냥 저렇게 표류하고 있으니까 아무 가치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새로운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동북아 다자 안보 체제라는 개념이 들어 있습니다.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때 9.19성명이 나왔다. 그 뒤에 미국이 한발 물러서고, 물러섰다기보다 BDA 문제가 딱 걸렸는데, 참 저도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에서 9.19 성명을 서명하고 있는데, 그 2, 3일 전에 미국 재무부에서는 이미 방코델타아시아에 대한 계좌 동결 조치를 해 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지금 보기에는 국무부가 미처 몰랐던 것 아닌가, 북경에서 모르는 상태에서 그 하루 이틀 전에 제재는 나와 버렸고, 나온 것을 풀지 못하고 여기까지 와 버린 것 아닌가 이렇게 볼 수도 있고, 또 나쁘게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 이렇게 볼 수도 있고 , 어떻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는 또 한편 보면 재무부하고 국무부 사이에 이 점에 관해서 원칙에 관한 해석이 많이 달라서 정치적 유연성을 좀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재무부는 법대로 가자 이런 것처럼 추측이 됩니다만, 잘 알 수가 없다. 여러 가지들이 있지요. 그래서 이제 좀 9 19 선언이 그냥 탄생하자마자 땅에 묻혀버렸지만, 또 봄이 오면 싹이 트고 올라오면서 바로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와 평화구축 나아가서는 동북아시아의 다자안보체제, 또는 평화체제 이 방향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방향으로 가겠다.
평통위원들 앞에서 하는 연설이니 대강 이 대목만 전달했으면 됐네 싶다.
그다음에 우리 신뢰 말씀도 주시고, 일관성 말씀, 합의, 말씀 다 주셔서 그렇다. 이렇게 노력을 하겠다. 대북 정책 협의체제, 소위 각계각층의 대표적 지도자들 또는 원로들 하는데, 제일 어려운 것이 이분들 모아놓으면 서로 통화가 안 됩니다. 말을 다르게 쓰고 있거든요. 우리가 좌우대립을 너무 심하게 겪었고 전쟁까지 치르고 독재라는 세월을 거치는 동안, 식민지, 좌우대결, 군사 독재, 이것 하는 동안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게 돼버린 것이다.
'통화'가 안되는 가장 큰 원인 제공자가
본인 이란 걸 아직도 깨닫지못하고 있군요~
안타깝습니다. 아니.진짜 불쌍합니다.
그래서 언어가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개념이 달라서요. 참 좋은 얘기인데, 이것을 못하고 있는 거지요. 제가 이것 한번 해 보자고 맨 처음에 고건 총리를 기용했었지요. 그래서 고건 총리가 다리가 되어서 그 쪽하고 나하고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그랬는데, 오히려 저하고 저희 정부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 왕따가 되는 그런 체제에 있는 것이지요. 중간에 선 사람이 양쪽을 끌어당기질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그런 결과가 되기도 하고요, 하여튼 실패한 인사다. 결과적으로 실패해 버린 인사지요.
신문 안 읽는다더니 이날 아침 '독선과 무능한 노무현 정부'라고 고건인터뷰를 본 모양이네.
링컨 대통령의 포용 인사가 제가 김근태씨나 정동영씨를 내각에 기용한 그 정도하고 비슷한 수준이다. 링컨 대통령 책에 오래 오래 남고 남들이 연설할 때마다 그 분 포용인사 했다고 인용했는데, 저는 비슷하게 하고도 인사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사니까 (일동 웃음 ) 힘들다. 링컨 흉내 좀 내려고 해 봤는데 , 잘 그게 잘 안 되네요. 재미가 별로 없다.
역시 우물안 개구리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같은 당에서 함께 정권을 창출해 놓고,
선거과정에서 조금 삐딱한 걸 껴안고
장관시켜줬다고 그 걸 포용인사라고 포장하는가?
생각이 새 대가리도 아니고, 그러니 욕을 먹지.
반대자에 대한 포용이 필요했지,
당신들끼리의 감정싸움 해소를 놓고
링컨의 포용인사라고 포장을 해대니,
그 뻔뻔함에 링컨이 무덤에서 뛰어 나오겠다.
하여튼 그렇게 말씀드리고요. 시간이 좀 괜찮냐? 좀 더 말씀을 드릴까요? (일동 박수) 우리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거든요. 우리 정부 또는 우리나라에서 이 사안은 통일외교안보정책 사안입니다. 큰 틀에 있어서 안보의 영역에 포섭되는 일이라고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지요. 안보 문제와 하여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표리관계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통일을 왜 해야 되냐, 더 잘 살기 위해서 더 사람답기 위해서 이런 목표가 있을 것입니다만, 보다 더 절실한 것은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첫 번째이고 , 일단 평화가 확보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이고, 그 다음에 그를 통해서 우리가 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면 더 좋은 것이고요.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는 덴 천재적 소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글로 읽어도 잘 이해가 안가는 데 말로 듣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 했을까?
한 핏줄을 같이 하고, 말을 같이 쓰고, 문화를 함께하는 사람이 하나로 함께 통합되어서 사는 것이 보다 사람답게 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통일해야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래서 평화다. 평화라는 것이 안보의 핵심 개념이거든요. 왜 안보가 뭐냐,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안보의 목적이고 평화도 안보의 목적 아닙니까? 그러나 고유의 의미에서 우리가 안보라고 얘기할 때는 평화,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적 활동이지요. 전쟁에게 이기는 것보다는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겠나? 그래서 평화를 지향하는 안보, 이걸 좀 확실하게 했으면 좋겠다. 전쟁에서 이기는 안보, 그것보다는 그렇게 평화를 지향하는 안보라는 개념을 확실히 하면 좋겠고요. 어떻게 할거냐, 대화를 지향하는 안보를 해야 된다. 안보를 위해서 끊임없이 대결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결, 안보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상대를 경계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상대를 경계하는데 거기에 적대적 감정이 들어가고 불신이 들어가고 또, 그렇지요. 적대감 감정과 불신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안보가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인지 전쟁을 예방할 수 있느냐, 적이 공격했을 때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수준, 나는 털끝도 안 다치고, 아니면 거의 껍질이나 약간 벗겨지고 찰과상 정도 입거나 타박상 정도 입고 완전히 제압하는 수준, 그러면 확실하지요. 안보를 위한 대비가 확실하지요.
진짜 횡설수설하고 있군.
국가 안보를 말장난으로 지키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다음에 이제 적어도 저쪽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공격을 해서 이길 수 없다, 싸움을 해서 이길 수 없고 따라서 점령할 수 없고, 따라서 지배할 수도 없다, 이 단계를 한번 생각해 보자. 이겨도 점령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냐? 점령해도 지배하지 못하면 전쟁을 일으킨 보람이 어디에 있겠냐? 그러면 그 가능성이 없으면 상식을 가진 사람이면 전쟁 시작 안 할 거다, 그래서 이기지 못할 수준이면 되지 않겠느냐, 한 대 때릴려고 하다가 한 대 반을 맞을 형편이면, 붙었는데 팔 하나 부러트렸는데, 자기 팔은 두 개 부러져버렸다, 이 정도면 제정신 가진 사람이면 안 하지 않겠느냐, 목적을 어디까지, 목적을 어디에 둘 거냐, 힘의 비교를 어느 정도에 둘 거냐, 그 다음에 그런 것을 판단해 보고 정신없는 짓 안할 것이다. 그러면 상대를 평가해 본다 이거지요. 상대가 제정신이 멀쩡한 사람인지, 아니면 완전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돌아버린 사람인지, 아니면 영 머리가 아주 나쁜 사람인지를 판단해 봐야 되는 것이지요.
세상의 전쟁이 상식으로 치러졌냐?
세계사 공부좀 더 해야 겠다.
북한이 핵 쏘겠다면 일제 때 이모시기 처럼
피흘리지 않기위해 나라 갖다 바칠 양반이네.
그러니까 이 전제, 이 전제를 할 때 그래서 이 전제가 부도덕한 사람이고 약간 맛이 간 사람이고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이제 비정상인 사람으로 되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 패널들이 저한테 ‘노 후보, 김정일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오?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예’ 하면 그날로 박살나는 거거든요. 아니오 해도 곤란하고, 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것이 한국 유일의 정치 풍토, 정치 문화 아닌가, 그 사람도 판단력은 있겠지요. 어떤 기준의 판단력, 민주주의 사회 기준의 사고력과 분석력을 가지고 있는 판단력이냐, 공산주의 또는 주체사상이라고 하는 그 체제에 거기에 맞는 수준의 그것을 기준으로 봤을 때 그 수준에서는 적어도 판단력이 있지 않겠느냐, 쉽게 말해서 사람이 저 죽을 짓 하겠냐, 이런 것이지요. 궁지에 몰리면, 완전히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이런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인데, 저 죽을 짓까지 무릅쓸 만큼 돌아버린거냐, 아니면 이상한 사람이냐, 이것까지 우리는 합의를 못 이루고 있는 거거든요.
우리 한국사회가 그 정도 합의가 안 되는 겁니다. 저 사람 제정신 맞아, 어떤 사람은 설마 제정신이겠지, 어떤 사람은 걔 완전 돌았어, 이런 거거든요.
그래서 멀쩡할걸, 이러면 그날로 박살이 나는 겁니다.( 일부 웃음 )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거든요. 이 기준을 가지고 우리의 안전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지요? 어느 정도의 전쟁을 예방한다고 할 때, 났을 때는 안 다쳐야 하는데 어쨌든 전쟁에 이기더라도 많은 상처를 입지 않습니까? 많은 손실을 입으니까, 그러니까 안 나게 해야 하는데, 안 나게 하는 그 억지력의 판단 기준이 정상적인 사람을 기준으로 할 거냐, 돌아버린 사람을 기준으로 할거냐, 이 문제를 가지고 우리 한국이 얼마만큼 심각하게 싸우고 있는지 아십니까?
별 걸 다 합의 가 필요하다고 보네.
갈 수록 열받아 이젠 육두문자가 나오기 직전이다.
이사람아,
저 사람이 상식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돌아버린 놈인지
우리끼리 합의해서 결정할 사안이 아니네.
우리는 상식있는 사람일때와 돌아버린 놈일 때,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게 국가안보입니다.
지금 신문에 나오고 있는 여러 가지의 무슨 어찌 보면 만화 비슷한 얘기들이 사실은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정신 가진 사람이면 지금 한국을 향해서 북에서 한국을, 한국에게 도발적 행위를 한다는 것은 그것은 바로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적절하게 관리해 나가면 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인데,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끔 저희더러 사상 검증을 하는 거지요. 장관 지명해 가지고 국회 청문회 내보내놓으면 6.25가 남침이오 북침이오 묻거든요.( 일동 웃음 ) 제가 한국전쟁 6.25 전쟁이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르는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할 만한 사고력을 가진 대통령이라는 전제가 붙지 않느냐? 참 억울하거든요. 저는 제정신입니다. ( 일동 웃음 및 박수 )
0.00000--1%에도 대비해야 하는 게 국가안보다.
그래 0.0000---1%가 현실화 되어
전쟁이 나고 수십만이 목숨을 읽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노무현 대통령 왈
"내가 신이냐? 역사상 그런 걸 알아 맞춘 사람있으면 나와보라고.
그걸 알면 내가 로또 복권을 샀겠다"면서
책임 회피할 게 틀림없다.
세상에 미친놈이 스스로 미쳤다고 하는 거 못봤다.
누가 뭐랬나?
스스로 제정신이라고 우기는 걸 보니 진짜 미친 모양이다.
이래서 어렵다. 모든 것을 전쟁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힘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대화로서 해야 되는 것인데요, 이 대화의 전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야 된다. 나아가서 존중해야 됩니다. 상대방의 의견이 옳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된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 됩니다. 이런 것을 이른바 철학적으로 상대주의라는 것 아니겠느냐? 관용이라는 말이 한마디로, 관용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요. 관용, 이것이 대화의 전제지요. 대화를 통해서 남북문제를 풀어가고 전쟁, 주먹질, 주먹을 꺼내기 전에 말로 먼저 좀 하고 이것이 대화를 통한 안보 아니겠냐?
자신이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만 관용을 요구하는군.
김정일이 또라이 짓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대해서도 '존재를 좀 인정'해라.
왜 그렇게 자기 모순적인가?
그래서 남북간 대화하려고 하는데 인간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이거지요. 또 우리 국내에서도 대화를 좀 할려고 하니까 인간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가치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척사위정론이라고 하는 사상 체계를 가지고 서학 한다고 수백명씩 잡아 죽이고, 마침내 1866년경에는 8천명을 잡아 죽였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역사에서 그렇습니다. 선비정신 같이 좋은 것은 우리가 이어받아야 되겠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적 사상에 이와 같은 위험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다시 한 번 더 돌이켜봐야 된다. 성찰해 봐야 된다. 성찰해 보고 그것이 끊임없이 사람을 반대편을 죽이는 문화를 만들어 왔거든요. 그래서 사문난적이라고 하고 척사위정, 이 두말로 표현되는, 철저히 타도해 버리는 문명, 문화 이것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을 우리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사람아! 당신의 반미도 척사위정론과 다를바 없네.
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당신 태도도
'끊임없이 반대편을 죽이는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제발 그 한계를 극복하기 바란다.
다음에 우리 안보 좀 조용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조용하게 안보하면 되는데, 정부가 안보, 안보하고 나팔을 계속 불어야 안심이 되는 국민의식, 인식, 이것 정말 참 힘들다. 북한이 미사일을 쐈어요. 쐈는데, 강원도 북쪽 어디에서 저 함경북도 앞바다 어느 쪽으로 미사일을 쐈는데, 한국으로 그 미사일이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 않은가? 다 알고 있는 일이지 않은가?
육갑을 떨어요.
미사일이 눈 달렸냐?
정치적 정세, 안보적 정세가 장기적으로 총체적으로 서서히 변화해 가는 것이지, 그날 큰일 나는 것 아니거든요, 그날 전쟁 나는 것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정부가 나서 가지고 국민 여러분! 미사일을 쐈습니다. 라면 사십시오, ( 일동 웃음 ) 방독면 챙기십시오. 이것 해야 하느냐? 새벽에 비상을 걸어야 합니까? 아침에 보고를 받았다. 보고받고, 긴급히 안보상임회의를 소집하자고 했는데, 하지마라, 하지 맙시다. 하지 맙시다, 국민들을 놀라게 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선동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네.
라면 사고 방독면 챙기고 하는 건 국민들이 자구책으로 하는 거지,
국가가 라면사라고 떠드라고 누가 그랬냐?
왜 없는 걸 만들어내냐?
아이고, 지겨워서 그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