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게 가져야 더 많이 얻는다
내가 아마도 욕심이 많기 때문에 무소유를
그렇게 강조하게 된 듯하다.
내가 늘 가만히 반성해 본다.
지금도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오두막 살림에서 보면
다기도 한두 벌이면 될 텐데 서너 벌 있고,
또 읽은 책도 한두 권이면 족한데
그것도 오십여 권이 넘는다.
또 생활 도구도 이것저것 가진 게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 스스로 무소유를 주장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넘치는 세상일수록
가난의 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가난이 아니라
선택한 가난을 실천해야 한다.
내 글만 읽고 나를 현품대조 하러 온 사람들이
법정 스님하면 잘 생기고 싱싱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별 볼 것 없고 바짝 마르고 쭈글쭈글하니
실망의 기색이 영영하다.
그때마다 속으로 나는 미안해한다.
거죽은 언젠가 늙고 허물어진다.
늘 새차일 수가 없다.
끌고 다니다 보면
고장도 나고 쥐어 박아서 찌그러지기도 한다.
육신을 오십 년, 육십 년 끌고 다니다 보면
폐차 직전에 도달한다.
거죽은 언제가는 허물어진다.
생로병사하고 생주이멸(生住異蔑)한다.
그러나 보라, 중심은 늘 새롭다.
영혼에 나이가 있는가.
영혼에는 나이가 없다.
영혼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그런 빛이다.
어떻게 늙는가가 중요하다.
자기 인생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 이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이 사랑할 수 있다.
이 다음 순간은
지금 이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사람은 지금 이순간에서 피어난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맑고 작은 것으로 살아가려면 될 수 있는 한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써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큰 것과 많은 것에는 살뜰한 정이 가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추구하다보니
무뎌져서 작고 적은 것에
고마워할 줄을 모르게 되었다.
거듭 말하지만,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가지려 하지 말라,
둘을 갖게 되면 그 하나마저 잃게된다.
모자랄까 걱정하는 그 마음이 바로 모자람이다.
그것이 가난이고 결핍이다.
- 법정 스님/산에는 꽃이 피네 가운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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