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精神修養 마당

[스크랩] 긴 이별의 예감-동대구 역을 떠나면서

鶴山 徐 仁 2006. 12. 10. 10:42
추석날 새벽 아버님 제사를 모시고 나서 대구로 내려갔다. 온 집안 식구들이 예수교 신자로 변해서 나혼자서만 서울에서 아버님의 제사를 모신다.
누님댁에 계시는 노모(89)를 뵈었다. 노모를 뵙는 순간 근 30분을 노모를 보살피고 대화하였다. 반년만에 많이도 노화가 깊어진 듯하여 나 자신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주변에 둘러선 동생들과 조카들의 인사를 받았다. 서울 삽네 대학선생 합네 소설을 씁네 하면서 노모를 누님과 동생들에게 맡겨 놓고 일년에 두번씩 찾아오는 나를 이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내 아들놈들이 완전히 노쇠한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하면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니 나의 불효가 가슴을 파고 들었다.
설날이 아니지만 나는 조카들과 온 혈족들에게 적은 금액이지만 정성을 담아 조금씩 갈라 주었다. 부모를 모시지 않는 나의 미안하고 괴로운 마음의 표현이었다.
맡아들을 겨우 알아보시고, 며느리를 맏아들의 '마누라'로 알아보셨다.신기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지기능이 거의 정지되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얼굴은 온화하셨다. 줄곳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띄셨는데 웃음기가 느껴졌다.
누님이 직접 장만하신 송편을 먹었다.
떠나는 맡자식을 보고 또 우실까봐 잠시 잠든 사이에 집을 나섰다.
올해 여든 한 살에 드신 처외삼촌을 뵈었다. 몸이 좋지 않으셨다.퇴계의 직손으로 대구에서는 큰 서예가로 통하시는 분이시다.내어놓는 차와 다과가 안동풍습 그대로라 옛 양반댁의 풍취를 느끼게 했다.
주변에 여든이 넘으신 어른들이 여럿 계신다. 명절이 되어 이분들을 찾아뵈니 인생의 허무감이 한결 가슴을 파고 든다. 내일은 올해 여든 다섯인 장모님을 찾아뵈어야 한다. 아직 정신은 깨끗하시지만 무릎이 좋지 않으시다.
귀경하기 위해 동대구역으로 나오니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나의 본고향이랄까 나의 본질이랄까 하는 데를 다녀온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일까 목구멍이 말라왔고, 알 수 없는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도대체 사는 것이 무엇일까...헤어지는 마당에 나는 누님의 어깨를 가볍게 끌어안으면서 소리없이 울었다. 누님 이제는 고이 아버님 곁으로 보내드립시다...사는 것이 무언인가, 새삼스런 의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차창에 기대어 생각에 잠겼다.
두분 부모님들을 다 유택으로 모신 나의 담쟁이 친구분들은 이런 순간을 어떻게 지냈을까...나는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출처 : 경대사대 부중고1215회 재경동기회
글쓴이 : 정소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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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들처럼 많은 동창을 배출하지 못한 탓에 많지 않은 동창 가운데 훌륭한 작가로서, 대학강단의 훌륭한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마음에 선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다들 흐르는 세월 속에서 고령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제 몫을 잘하고 있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건강하게 오랫 동안 활동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