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최성민 기자]
노고단은 일찍이 '구름 위 꽃밭' '하늘의 화단' 등 애칭으로 불려왔다. 그만큼 높은 곳에 이색적으로 꽃들이 많이 피어있다는 것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지금 노고단에 가면 여름꽃과 가을꽃, 그리고 일부 '철모르는' 봄꽃 등 10~20여 가지 꽃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다. 기온도 아래 쪽 평지보다 한결 시원해서(서늘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한발 앞선 가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날씨는 흐린 때가 더 많지만, 뭉게구름이 떠다니고 꽃이 함초롬히 피어나는 갠 날이면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주변의 암록색 산빛이 배경이 되어 이 '구름 위 꽃밭'은 더욱 환상적인 모습으로 변한다. 분홍색깔로 쪽빛 하늘을 받치며 몸 비벼대는 꽃들
노고단 생태계는 '아(亞)고산 생태계'라 하여 울창한 삼림과 나무가 자랄 수 없는 고산 중간에 있는 생태계로서 풀과 구상나무 등 키가 작은 나무들만 자란다. 노고단에서 40년쯤 자란 가장 큰 구상나무의 키도 2m 정도밖에 안 된다.
그 가운데서도 들꽃들이 피고 지는 것은 계절의 바뀜과 세상만사의 변화를 가장 선연하게 말해주는 '철학교과서'다. 노고단 야생화 낙원엔 지금 여름꽃 원추리와 가을꽃 이질풀꽃이 가장 많이 피어, '철바꾸기'의 주인공 노릇을 하고 있다.
노고단 들꽃밭엔 그 밖에도 동자꽃·참취꽃·도라지잔대꽃·모싯대꽃꿩의 비름· 기린초· 며느리 밑씻개· 며느리 밥풀꽃·짚신나물꽃·마타리·범꼬리·옥잠화·구릿대·물매화·여우팥 등 20여 종류가 함께 섞여 서로 몸을 비벼대고 있다.
꽃꽃마다 우리네 애틋하고 가련한 삶 이 지리산 들꽃 만나기는 우리 땅과 자연이 주는 토종 정서와 함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생명의 '아름다운 원칙'을 알게 해 준다. 들꽃에 담긴 사연이나 이름에 얹힌 이야기를 들으면서 들꽃길을 걸어가면 우리네 삶의 애틋한 자투리가 엿보이면서 지금 삶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옛날 강원도 설악산 한 작은 암자에 노승이 부모없는 아이를 데려다 기르고 있었다. 어느 해 동짓날 노승은 겨울채비를 위해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폭설이 내려 길이 막혔다. 며칠 뒤 눈이 그치자 서둘러 절에 돌아와 보니 동자는 노승을 기다리며 툇마루에 앉은 채 얼어죽어 있었다. 스님은 동자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다. 이듬해 여름 그 무덤가에는 동자승의 얼굴처럼 동그랗고 빨간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고약하게 시집살이를 하던 며느리가 밥을 짓다가 뜸이 들었는지 보려고 주걱에 붙은 밥풀 몇알을 물었다. 이것을 본 시어미가 집안 음식을 다 축낸다고 며느리를 마구 때려, 결국 죽게 만들었다. 이듬해부터 햅쌀이 날 즈음 빨간 입술에 밥풀을 문 모습의 꽃이 산속에 피어났다. "음식이 아니라 밥풀뿐이어요"라고 말하는 이 꽃엔 세상을 한탄스러워하는 정서가 담겨 있다. 수줍음을 잘 타서 산 속에서만 핀다고 한다.
/최성민 기자 덧붙이는 글 * 노고단 가는 방법 승용차는 호남고속도로로 전주~남원~구례, 기차는 구례구역(새마을호, 무궁화호)에서 내린다. 남원에서 구례로 가는 남원~밤재~산동마을~순천간 직통 국도를 타고 가다가 천은사 나들목으로 들어간다. 노고단은 천은사 앞을 지나 성삼재까지 올라가서, 성삼재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간다. 주차장에서 노고단까지 40분. 그동안 사람들의 무분별한 캠핑 등으로 환경이 많이 훼손돼, 노고단에서는 몇 년 전부터 자연 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다. 따라서 노고단 야생화 단지에 들어가려면 국립공원관리공단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예약, 신청하거나 노고단 안내초소에 당일 오전 9시 30분까지 도착해 신청해야 한다. 노고단 야생화를 보러 가는 길에 꼭 들러볼 곳이 있다. 구례읍 들머리에 있는 구례군농업기술센터가 그곳이다. 기술센터 안에는 지리산야생화학습원이 마련돼 있다. 지금부레옥잠과 이질풀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이곳엔 지리산 일대에서 철따라 피는 들꽃들이 다 내려와 있다. 야생화학습원에서는 설명을 곁들여 들꽃을 보여주고, 번식시켜 분양도 한다. 따라서 이 야생화학습원에 들러 야생화를 예습하고 가면 지리산 야생화들을 훨씬 친근하게 만나볼 수 있다. 문의 (061)780-2559(구례군농업기술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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