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현산 칠장사 철당간 현15 마디 철통. 전체높이: 11.5m 고려시대 조성 철당간:청주 용두사지 국보 제41호 962立. 갑사 보물 제256호 신라立. 법주사 조선후기立. 석당간:나주성북동 보물 제49호 고려立. 담양읍 보물 제505호 고려-1839년중건. 청동 : 용두보당 국보 제136호 호암미술관 고려作 73.8cm
칠장사 괘불석주
조선국 죽산 칠현산 칠장사 중수향화 사적비명, 大明崇禎44辛亥六月日立(조선현종12년 1671년)
칠현산 칠장사 일주문
칠현산 칠장사 己卯 道光 (1999年)
칠현산 칠장사 소조사천왕상
사천왕의 발에 밟혀... 조선시대 탐관오리들인강 !!!! 칠장사 濟衆樓
칠현산 칠장사 목어 칠현산 칠장사 대웅전 칠현산 칠장사 삼층석탑의 초층탑신 (문비와 쌍환)
칠현산 칠장사 鐘 정조6년 1782년조성 시주자 이언충
칠현산 칠장사 대웅전 석가삼존불
칠장사 지장탱 崇禎記元後五 戊子 (고종25년 戊子1888년) 칠현산 칠장사 명부전 명부전 외벽에는 궁예와 임꺽정의 벽화들로 가득하다
龍德太子 (궁예 다섯살때)의 활쏘는 모습을 바라보는 乳母...
삼매에 든 善宗大師
태조왕건 궁예역의 김영철의 카리스마.......
병해대사 (갓바치)의 설법을 경청하는 임꺽정 예하 여섯 두령들
칠현산 칠장사 명부전 임꺽정과 칠장마 벽화
김학봉 +곽오주 +황천왕동 + 병해대사 갓바치+ 道光大師▽ + 임꺽정 +이봉학 +박유복 +배돌석
나한전과 수령 650 여년의 나옹松
중수기 숙종29년(1703) 탄명스님
칠장사 나한전. 석조여래상과 상수나한상. 사탕봉지가 많이 쌓여 있는 민초들의 염원이..... 御使 朴文秀 1691~1756 32세 문과급제 암행어사{중종4년(1509)에 시작하여 고종29년(1892) 전라도 암행어사 이면상(李冕相)이 마지막}
칠현산 칠장사 산신각 칠현산 칠장사 산신탱 (佛2539년 조성 東京 申明淑 功德主보체)
칠현산 칠장사 원통전 혜소국사 비각
칠장사 혜소국사비 보물 제 488호 비좌귀부
칠장사 혜소국사 비신 (撰:김현, 書:민상제) 중간부분이 부서져... 가등청정과 노스님의 !!!!
혜소국사 비신 측면 (혜소국사:972~1054) 비: 1060년 세움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현묘탑비 국보 제 59호 ↕ (지광:984~1070. 비:1085 세움 )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부도비
혜소국사비 이수
칠장사의 엣영화를 .... 석조물들 칠현산 칠장사 삼층석탑 1층 탑신에 표현된 문비와 쌍환, 응향각
칠현산 칠장사 종무소 노우용력이다년(老牛用力已多年) 영파피천지수안(領破皮穿只受眼)
이파기휴춘우족(犁杷己休春雨足) 주인하야우가편(主人何若又加鞭) 늙은 소는 힘을 쓴지 이미 여러 해/ 목이 찢기고 가죽이 뚫려 다만 부처의 자비스러운 눈뿐이로구나/ 쟁기질과 써레질이 이미 끝나고봄물은 넉넉한데/
주인은 어찌 심하게 또
채찍질인가? 금광명최승왕경장 시암 배길기 丙午1966年 (是菴 1917~1999)
봉업사지 석불입상 보물 제 983호
칠장사 약수, 도적떼와 금바가지의 전설이 서려... (한여름에 한모금만 마셔도 가슴이 ..... )
궁예가 어린시절 활쏘는 연습을 하던 宮址
칠현산 칠장사 부도군 석종형 14기
靈閣 박옥산 + 이기홍 丙子年 칠장사 해우소 칠장사로 들어서는 초입의 "물레방아 손두부"집 앞 길건너에서 오가는 사도들을 .... ▼
칠현산 칠장사 (경기도
안성) 七賢山 錦北峰아래 포근히 내려앉은 고찰로서, 사찰이 번창할때는 건물이 대웅전을 비롯하여 총 56동 건물이 있었다고 전한다. 2) 혜소국사에 의해 칠악인이 칠현인으로 제도된 일곱 현인의 화신인 석조여래와 나한상 7구. 3) 나한전은 어사 박문수가 기도를 드리고 장원 급제를 했다고 전해지며, 당시의 과거시제인 夢中登科時의 현장이며, 옛날에는 과거 시험에 장원을 꿈꾸던 선비들이 많이 찾았고, 현재도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기도,공양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 대웅전, 천왕문 소조사천왕상, 혜소국사비(보물 제488호), 삼불회괘불탱(보물 제1256호), 오불회괘불탱(국보 제 296 호), 봉업사址 석불입상(보물 제 983호), 인목대비친필족자, 지장탱 (숭정기원후5戊子1888), 칠성탱, 대웅전鐘{정조6년(1782)시주자 이언충(李彦忠),}, 범종각, 명부전, 원통전, 궁지, 나한전 석조나한상, 철당간, 사적비, 부도14기, 영각, 제중루, 응향각, 성보유물관, 일주문, 산신각, 금북봉 약수, 傳 나옹松, 요사채 등등.
★증시혜소국사비명'(贈諡慧炤國師碑銘 1060立), 보물 제488호,
속명:이정현, 안성 출생. 1054년 83세로 입적. 저지르고 있었다. 그 때 문득 한 노스님이 나타나 그를 꾸짖었다.이에 화가 치민 가등청정은 칼로 노스님을...갑자기 스님은 사라지고...잠시후 비전(碑殿)에 올라가보니 혜소국사의 비가 부서져 있어, 그것을 보고 혼비백산한 가등일행은 서둘러 칠장사를 떠났다고 한다. 한편 혜소국사 부도탑도 이 때 왜적의 만행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인목대비친필족자(仁穆大妃親筆簇子) 인목대비 七言詩 계비繼妃에 책봉冊封 되었으며 선조의 유일한 적자嫡子인 永昌大君을 낳았다. 이 족자는 인목대비가 광해군에 의해 경희궁(西宮)에 幽閉되었다가 仁祖反正으로 복위된 해인
인조 원년(癸亥1623)에 억울하게 죽은 친정 아버지(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을 위하여 칠장사를 願堂으로 삼아 다시 세우면서 친히 종이에 써서 이 절에 下賜한 것이다. 이때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도 써서 내렸다 한다 현 동국대박물관 소장. 칠언시 친필족자는 세로 110cm,가로 50cm의 직사각형으로 글은 七言詩로 되었으며, 하단에는 서예가 裵吉基가 丙午初夏1966(1917~1999)년 발문/跋文이 있다.
비유 하면서 썻다. 그런데 이 싯귀 사이 사이에는 아주 가는 글씨로 社誼스님의 축원문이 쓰여 있는데 그 내용은 比丘社誼(비구사의)는 衣食이 항상 넉넉하고 孝로 봉양할 上佐가 있기를 바라며 그밖에 모든 소원이 성취하게 되길 바란다는 뜻이다 . 社誼 스님은 高宗1878년에 이 절의 주지로 있엇던 高僧으로 알려져 있다
★나한전과 나옹 소나무(松) 1703년(숙종 29) 대법당의 괘불을 조성했던 탄명스님의 중수기가 빚바랜채 걸려 있다. 나와 급제했다 한다. 관찰사, 병조판서, 어영대장, 호조판서, 우참찬을 지냈다. 암행어사는 파견 지역에 도착한뒤 또는 서울을 벗어난 후에야 임금이 내린 어찰을 뜯어볼 수 있었다. 임금의 밀지가 사전에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1509년 중종이 시원 이며 1892년 高宗이 전라도 이면상(李冕相)이 최종 암행어사이다.
칠장사의 지형이 배(舟)모양과 같아 돛대의 역할을 하도록 이 당간지주를 세웠다고 전한다.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국보 제 41호 철통20개 원형고려광종13년962조성). ◎공주 갑사 :철당간 (보물 제 256호 철통28중 24 신라시대 조성). ◎보은 법주사 :철당간 (原1007년-
현1927조성) . #임꺽정 병해대사는 명종 연간에 生佛로 숭앙받던 스님으로,흔히 갓바치로 불렸는데 임꺽정의 스승, 갓바치인 스승 병해대사를 만나러 꺽정은 자주 칠장사에 온다. 꺽정에게 무예를 가르치고 자신의 愛馬 칠장마를 주는데 이 상황이 명부전 벽에 그려 있다. 곳이 바로 칠장사이다. 꺽정은 이곳에서 의적들을 규합하고 일곱 두령과 피를 나눈 형제가 된다.
였던 궁예는 乳母의 손가락에 눈이 찔려 한쪽 눈을 잃는 기구한 운명에 처해진 채 유모를 따라 이 곳 칠장사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활 연습을 했다 한다. 명부전 뒤편에 있는 궁지(弓地)는 바로 궁예가 활 쏘는 연습을 하던 곳으로, 활을 잘 쏘아 궁예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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