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춘추관 당상의 인견 때 《현종실록》 조사의 결과가 주달되었는데, 그 요점은 아래와 같은 것이었다. 1.
대단히 긴요한 일 가운데 빠지거나 잘못된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2. 실록 찬술에는 일정함 범례가 있게 마련인데, 《승정원일기》만을 의지하여
초솔(草率)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혹 앞뒤가 뒤바뀌거나 한 가지 일이 거듭 나와 요령이 없다. 3. 인출 때 교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오자(誤字)가 많으므로 후세에 전하여 고신(考信)의 책으로 삼을 만하지 못하다. 4. 시헌력(時憲曆), 대통력(大統曆)의 호용(互用)이나
역법(曆法)의 논의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5.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것은 하찮은 대화까지도 모두 옮겨 기록하였고 제대로 문장이 되지 못한
것까지 기록하였다. 6. 내용이 소략하고 기사의 전후 맥락이 통관(通寬)되어 있지 않다. 조정에서는 이러한 부정적 논의를 근거로 개수를 결정하고
실록개수청을 설치하여 같은 달 29일에 김수항(金壽恒)을 총재관으로 임명하고 도청 당상 및 도청 낭청을 차출하여 개수에 착수하였다. 실록청은
대개 도청과 1, 2, 3방(房)으로 조직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현종개수실록》은 현종 때의 시정기가 세초(洗草)되어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1, 2, 3방을 설치하지 않고 도청 당상과 도청 낭청 및 등록 낭청만을 임명하여 개수하였다. 그후 10월 26일에 왕비 김씨[仁敬王后]가
승하하여 당분간 실록 개수청을 폐지하려고 하였으나 공조참판 이단하(李端夏)의 주장으로 계속 편찬하게 되었다. 숙종 8년 7월 3일에 인출을
시작하여, 9년 3월에 간행을 마치고 행장, 애책문, 시책문, 숭릉지 각 1건을 부록으로 붙였다. 실록개수청의 찬수관은 아래와 같다. 총재관:
김수항(金壽恒) 도청 당상: 이단하(李端夏), 신정(申晸), 이민서(李敏敍), 이익상(李翊相), 김만중(金萬重), 이선(李選) 도청 낭청:
신완(申琓), 심수량(沈壽亮), 김진귀(金鎭龜), 심유(沈濡), 이세백(李世白), 이돈(李墩), 신필(申畢), 박태보(朴泰輔),
권두기(權斗紀), 이사영(李思永), 임영(林泳), 이여, 박태손(朴泰遜), 오도일(吳道一), 서종태(徐宗泰) 등록 낭청: 윤세기(尹世起),
이굉(李宏), 한구(韓構), 김구(金構), 윤덕준(尹德駿), 조형기(趙亨期), 김호(金灝), 유득일(兪得一), 이선부(李善溥),
강석규(姜錫圭), 권항(權恒), 김석(金晳), 이동욱(李東郁), 이율, 이언강(李彦綱), 유명일(兪命一), 김만길(金萬吉), 권지(權持),
정제선(鄭濟先), 고익형(高益亨), 정상박(鄭尙樸), 윤홍리, 이직, 임환(林渙), 양중하(梁重厦), 심평(沈枰), 황흠(黃欽),
조석주(趙錫胄), 정추(鄭推), 신명원(申命元), 김시휘(金始徽), 신계화(申啓華), 박세준, 이삼석(李三碩), 최석항(崔錫恒),
최규서(崔奎瑞), 윤지익(尹之翊), 서종헌(徐宗憲), 이이명, 김우항(金宇杭), 양성규(梁聖揆), 김홍정(金弘楨), 유명웅(兪命雄),
김홍복(金弘福), 이덕성(李德成), 박태유(朴泰維), 김일성(金日省), 홍수헌, 심권(沈權), 윤세희(尹世喜), 이두악(李斗岳),
이정겸(李廷謙), 김덕기(金德基)
2.《현종개수실록》의
내용
《현종개수실록》은 편찬의 체제나 기본적인
사실의 서술에 있어서 원본인 《현종실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남인과 서인의 당론(黨論)에 관련된 내용이나 인물 비평 혹은 사론(史論)에서
현격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기사의 내용에도 수정 보완된 것이 적지 않다. 그것을 비교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인견 때의 설화나
의례(儀禮) 관계 기사의 서술은 개수 실록이 현저히 자세하게 다루었다. 2. 현종에 관계된 기사도 개수 실록에서 더 자세히 다루었는데, 현종의
조처에서 누락되었던 기사를 첨가한 것이 다수이다. 3. 사신왈(史臣曰)이나 기타의 인물평에 있어서는 두 실록이 서인과 남인에게 각자 유리하게
서술되었고, 기사의 삭제와 첨가도 그에 따랐다. 4. 김석주나 기타 척신 계열의 인물에 대한 기사는 개수 실록에서 훨씬 많이 다루고 있다. 5.
당론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거나 초연했던 인물들에 대한 기사는 대체로 내용이 동일하다. 6. 백성들의 강상(綱常)과 관련된 사건에 있어서는 거의
동일하거나 개수실록에서 좀 더 자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현종개수실록》에는 서인의 당론이 반영되어 있지만, 《현종실록》을 보완하려고 한 것인만큼
다양한 사료를 활용하여 충실도를 높이고 내용을 풍부히 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원래의 《현종실록》 자체를 폐기하지 않고 보존한
것도 고마운 일이다. 이로써 현종 대의 사실(史實)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두 실록을 함께 읽고 비교 검토하여 역사인식에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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