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록 일 : 2002.05.31
소 재 지 : 전남 여수시 관문동 303
소 유 자 : 여수시
관 리 자 : 여수시장
1층 철근콘크리트구조, 2층 목구조 겹처마
팔작지붕의 서양건축과 접목 건축물 일제강점기 이 지역 항일운동 근거지로
사용
전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 에 소재하며, 1926년에 지어졌다. 지상 2층 석조
및 조적조 건축물로 일제기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었다.
여수 애양교회는 우리나라 의료 선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소중한 건물이다. 애양교회 건물이 신축된 것은 1926년 이지만, 그 연원은 19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9년 4월 목포에서 활동 중이던 포사이트(Willey H. Forsythe) 의료 선교사가 광주로 가던 중, 길가에 쓰러져
죽어가던 한센병 환자를 광주 제중원 벽돌가마터에서 치료하게 된 것이 서양 의학에 의한 나환자 치료의 효시였다.
이것이
미국인 윌슨(Robert M. Wilson) 의료 선교사에 의해 1911년 4월 25일 당시 전라도 광주군 효천면 봉선리에 설립된 광주
나병원으로 계승되었고 1913년에는 최초로 나병원 교회가 설립되었다.
광주에서 번창하던 나병원과 교회는 1926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일대로 옮겨오게 된다. 이때 현재의 애양교회 건물이 신축되었다. 또한 애양교회 맞은편에 현재 WLC(Wilson
Leprosy Center)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등록문화재 제33호인 애양병원도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이다. 애양병원은
당시에는 비어울프 나병원이라는 이름이었으나 1935년 3월 15일 애양원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애양병원 건물은
1999년 12월 역사관으로의 전용공사를 시작하여 2000년 6월 24일 WLC역사박물관을 개관하였다. 현재 역사관에는 의료기구와
사진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어 당시의 의료 상황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여수 공항과 남해의 광양만에 인접한 현재의
애양병원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애양교회와 그 주변에는 현재까지도 애양병원과 관련된 많은
근대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구 애양병원 건물을 비롯하여 1953년 신축되어 한성 신학교로 사용되다가 현재 수양관으로 사용되는
토플하우스(Topple House)를 비롯한 다수의 근대건축물이 산재되어 건물군을 형성하고 있다.
여수 애양교회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졌지만 당시 일본인들에 의해 지어지던 많은 건축물과는 구별되는 석조 1층 건물로 선교사에 의해 지어졌다. 애양교회
뿐만아니라 애양병원과 주변에 산재한 근대건축물들이 동일한 재료와 유사한 방식으로 지어져 동질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일반적인
교회 건축과 유사하게 끝이 뾰족해지는 첨두형 아치창을 둘렀고 정면 좌측으로 사각탑을 쌓고 그 위에 탑과 십자가를 올렸다. 지붕은
함석을 얹은 박공지붕으로 마감되었다.
애양교회는 잦은 증축과 개축으로 많은 부분이 변형되었으나 건물의 기본적인 골격과
개구부 등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1935년에 예배당을 재건하였고, 1979년 개축시 경사로와 계단을 설치하였다. 1980년
이후 목조였던 보와 기둥을 철근콘크리트로 개조하였고 층고를 높이기 위해 벽면 상부에 석재를 4단 정도 더 쌓아 올렸다.
애양교회는 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구 애양병원 건물과 함께 서양 선교사에 의해 건축된 건물로서 우리나라 의료 선교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서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32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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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8외 2필지에 위치한 2층 석조병원건축물로
1909년 국내 최초로 세워진 한센병 전문병원이다.
등 록 일 2002.05.31
1909 포사이트 선교사가 길에 쓰러진 나환자를 치료한데서 본원 설립동기가 됨
1911.4.25 당시 전라도 광주군 효천면 봉선리에서 우월순 선교사에 의해 광주 나병원으로
시작 1913 나병원 교회 설립 1915 환자 교육을 위한 봉선리 국민학교를 설립.
1971년 폐교 1923 조선총독부 사립병원 취제규칙에 의하여 정식병원 인가 1926
비더울프 나병원으로 개칭 1927~1928 현 소재지로 단계적 이동. 교회와 병사를 짓고 재원자 600명을 신앙과
진료로 돌봄 1935.3.15 애양원으로 개칭. 재원자 749명 1938 미감아
수용시설을 갖추고 격리수용 1946.9. 8 나환자를 위한 성산중학교 개교. 1971년 폐교
1948.4.11 미국 남장로교 한국선교회로 운영권 이관. 재원자 1,000명 1952
미감아 수용위한 명성보육원 설치, 폐소 1955.4.12 나환자 위한 대학과정인 한성신학교 설립. 1962년 폐교
1956.8.21 재단법인 애양원 인가 1979 간호사기숙사, 의족실, 환자기숙사 준공
1980 내빈관 60평 준공 1981 도성래 명예원장 추대
1984 제2병동 10실 신축(46평) 1985 재활직업보도소 신축(137평)
1986 평안양노원 신축(750평) 제2병동 22실 신축(98평) 성서암송반 신축(24평) 수양관
개축(250평) 1987 구 평안양노원 개축 농어촌지역 의료선교 1988.3.21
사회복지법인 애양원으로 변경 1988.9.29 여수애양평안요양소 시설 허가
1989.5.8 애양재활기술보도소 시설허가 1990.6.1 병원증축 356평(연건평
896평) 및 기구보강 1992.5 증축, 평안사 218평, 병원예배실 65평, 애양재활직업보도소 60평
1996 병원보수공사(대합실, 수위실, 정원, 주차장, 전기배선, 창틀, 배관, 옥상, 페인트, 엘리베이터)
1998.12 통나무식당 신축(입원 및 외래환자 이용) 1999.12 역사관
신축(245평) 2000.6.24 역사관 및 토플하우스 개관 2001.6.23 ~
2001.10 3층 입원실 증축 준공(320평) 및 1, 2층 보수공사 2002.2 의사
숙소, 관리인 사택 보수 공사 2003.6 병원 보수공사(2병동, 물리치료실, 의지실, 간호기숙사) 증축
MR실등 88.6평 Full--PACS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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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시 금성동 39-2 에 위치한 벽돌집으로
2002.5.31 등록문화재
34호 로 지정되었다.
면적 608.77㎡
이 건물은 일제 때 일본인에 의해 건립된 붉은 벽돌의 조적조 2층
건물이다.
1982년까지 경찰서로 사용되다가 새로운 경찰서 건물을 성북동에 건립하여 이사가면서 소방서로 사용되다 2002년
11월 12일 소방서를 신축하여 이사가면서 현재는 비어있다.
일제때에는 민족운동가들이 많은 고초를 겪은 곳으로 현재에도
유치장 등의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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