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현대건축

鶴山 徐 仁 2006. 7. 1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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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동산병원.jpg (257.0 KB)
 대구 동산병원 구관 (근대문화유산 15호)


소재 : 대구 중구 동산동 194 외 22필지

지정년도 : '02.5.31

건축년도 :  1931

지상 3층의 적벽돌 조적조로 정면 중앙의 돌출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대구 최초의 서양의학병원으로 동 지역의 향토사·의료사 및 건축사적 가치를 지닌다.


전남도청 본관 (근대문화재 16호)


광주시 동구 광산동 13번지의 전남도청은 광주의 ‘심장부’로
광주의 역사가 생생하게 녹아 있는 현장이다.

일제하 전남 민중에 대한 수탈과 함께 해방 후 새로운 억압체제의 재편이 이뤄졌던 곳으로
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의 본부가 있었다.

5월 항쟁 초 군부독재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와 분노를 표출하는 표적이었으며,
시민수습대책위원회가 수습책을 논의하는 등 시민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이는 80년 5월 항쟁 당시 “가자, 도청으로!”라는 구호 속에 잘 응축돼 있다.

5·18 민중항쟁 사적지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건물로 대지 면적은 1천62.6㎡, 건축면적 600.52㎡.


광주가 전라남도의 행정 중심지가 된 것은 지난 1896년 8월 4일 나주에 있던 전남 관찰부가 옮겨오면서 부터.
한일합방 직후인 1910년 9월 30일 도 관찰사를 도 장관으로 바꾸고 관찰부를 도청이라 고치면서
현 도청 부지에 서양식 목조단층 건물로 세워졌다.

현 청사는 1920∼30년대 전남 유일의 한국인 건축사였던 김순하에 의해 1925년 설계됐다.
초기 건물은 붉은 벽돌을 사용한 2층 조적조 건물이었으나 해방 후 미 군정청이 들어오면서
미국의 백악관을 연상시키는 흰색 페인트 칠을 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중앙에 계단을 두고 남쪽에 사무실을 배치한 편복도 형식의 건물은 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광주읍성 때 동헌(현 도청 광장 분수대 자리)을 바라보고 배치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행정의 규모가 늘어남에 따라 1975년 현재와 같은 3층으로 설계 증축됐고,
좌·우에 새로 지어진 건물들과도 확장시켜 연결했다.

보존 가치가 큰 근대 건축물 일부를 예비 문화재로 선정,
외관 변경 등을 막기 위한 문화재청의 정책에 따라 지난 2002년 5월 27일
광주에서는 처음으로 등록 문화재 16호로 지정됐다.

도청 본관 건물은 일제시대때 유학파인 김순하씨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한
철근콘크리트 건축물로 도청 시계탑과 기둥 모양 등을 볼 때 당시 유행하던 현대식 구조물과
고딕식 양식이 혼재된 ‘절충주의’ 사조를 반영한 시기의 건축물로 인정.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 체육관) (근대 문화유산 제17호)


광주 동구 서석동 14-1 에 위치

'02.5.31 지정

본관 1935, 체육관 1930

  적벽돌 조적조(본관 2층, 체육관 1층)로 사용재료·규격상 전형이 되고 있음
벽돌의 질감 및 조적조 정교성 등 근대 조적조 건축의 조형미 등을 잘 보여줌


충청남도청 (근대문화유산 지정 18호)


설계감리 : 조선총독부 영선계
대지위치 : 대전시 중구선화동 287
대지면적 : 25,456 m2
연면적 :4,798m2
규 모 : 지하 1층 지상 3층
구조 :벽돌조,콘크리트 스라브
주요외장 :스크래치 타일
준공연도 : 1932년


  1931년 1월 13일. 사이꼬 마코또(858_1936)총독은 총독부 회의실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 끝마무리에 충격적인 발표 하나를 덧붙인다. 충남 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한다는 것이 그 내용. 공주 지역민들은 공주 경찰서와
당대 부호 김갑순(金甲淳)의 극장에 불을 지르는 등 심한 반발에 나섰다.
그러나 충남도청은 그 해 6월 기공식을,12월은 상량식을 갖는다. 이듬해인
1932년 5월 30일,11개월만에 총 공사비 35만 9천원으로 서둘러 건물이 준공된다.
이후 4개월 뒤인 9월 공주에 있던 충남 도청은 공주시민이 잠든 밤중을 타고 대전으로 옮겨진다.
  
1년도 채 안돼 지어진 충남 도청의 규모는 평면이 " ㄷ"자 형태로 1층에 33실(718평),
지하는 7실(42평),2층에 32실(690평)을 갖춘다. 또 외부 정면과 양 날개 등 외관은
당시 유행한 스크래치타일로 장식했다. 내부 창과 출입구는 목재로 지붕은 철근 콘크리트 슬래브로 건축됐다.
  
대전의 충남 도청 입성은 대전의 발전을 가속화하는 매개체 역을 담당한다.
대전역과 마주 보는 도청 건물은 대전 중앙로의 흐름을 막아 설 정도로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양태를 띄었다.  큰 대로도 도청 앞에서는 이를 가로지르지 못하고 우회했고,
중심 가의 발달도 도청의 한 눈 안에 들어오게끔 이뤄졌다.

도청 건물의 시련을 그러나 민족의 해방이 이뤄진 1945년 이후 시작된다.
일제의 잔재라는 죄명을 얻게 된 도청은 허물어 버려야 할 건물로 지탄을 받게 됐다.
시시각각 변화한 당시 상황은 그러나 건물 청산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6.25가 발발했고
이틀 후인 27일부터 7월 16일까지는임시 중앙청으로 사용된 역사의 현장으로,
1952년에는 충남도의회 청사로도 사용됐다.
  
현재까지 충남 도청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지난 95년까지도
일제의 상징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부 천장과 바닥,외부 벽면등지에
모자이크 돼있는 문양이 일제의 상징이라는 의견이 심심찮게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기하학적인 틀 속에 있는 문양이 조선총독부를 상징했던 오동나무 꽃 휘장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충청남도 공무원 교육원 자료실에 근무하는 서봉식씨의
"충청남도 도청 벽면에 대한 검토"라는 의견 제시 후 조용해진다. "
도청의 장식 문양은 당시 예술대학에서 정사각형을 겹쳐서 다양하게 외장 장식화한 기법 중의 하나로
일인의 왕과 왕실을 상징하는 총독부 마크와는 상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충남도청이 비로소 일제의 잔재라는 그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된 계기가 됐다.

  충남 도청은 6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훌륭한 근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부실공사의 우려를 떨칠 수 없는 짧은 기간에 완공된 건물로는 특이한 경우다.
충남 도청은 1930년 평안남도에 지어진 도청과 유사하게 설계된 건물이다.
일본 건설회사 '스스키'에서 공사를 맡았고, 당시 유행한 스크래치 타일이 사용된 점이 공통점이다.

두 도청 건물은 또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트 라이트가 설계한 제국호텔과 많은 유사성을 띤다.
담갈색 분위기를 띤 타일의 사용과 건축적 양식에서 라이트식 건물의 성격을 지닌다.
1905년과 1913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동경제국호텔과 미드웨이 가든, 자유문화대학 외 몇 개의 주택을 남겼고
많은 건축학도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자연과 호흡하는 "유기적 건축"을 지향했다.
건축자재의 본성과 주위,환경,경관을 잘 이용하려 했으며 프래리 하우스(prairie house)를 개발했다.
뚜렷한 기준과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평선을 따라 길고 낮은 라인을 형성하는 주택에
지붕선을 조용하고 우아하게 만들었고 불필요한 창문과 파티션을 없애 방사이의 유동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후 다른 건축가가 설계한 일본의 수상관저도 라이트식 저택으로 분류될 만큼
일본 건축계 그의 영향은 지대했다. 스크래치 타일도 그의 작품 중 하나다.
재봉박기 타일이라고도 하는 이 타일은 표면에 재봉선 같은 줄이 나 있다.
본래 타일이 정 4각형으로 주로 목욕탕에 쓰였다면 스크래치 타일은
벽돌 크기의 장방형으로 만들어져 외장재료가 됐고 견고성 면에서도 뛰어난 자재였다.
그러나 바로 유행이 끝남으로써 충남도청은 독특한 입면을 소유하게 된다.
긴 수평 라인과 평지붕도 라이트식 요소로 꼽힌다.

충남도청은 일제시대 세워진 건물답게 상당히 권위적인 성격을 지닌다.
우선 방문객을 제압하는 높은 천장과 중앙계단이 그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던 시절,중앙계단의 2층에는 건물의 제일 높은 주인이 거주했다.
이곳을 오르는 이들은 계단을 오르며 높다란 천장에 놀라고 한번 꺾여져 보이는
높은 이의 육중한 방문에 기를 눌린다. 또 무엇을 상징하는 것만 같은
바닥의 문양을 본 후 고개 들면 조명 뒤에 새겨져 있는 문양도 보는 이를 제압한다.
이런 형식은 구 중앙 박물관등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다.

  이밖에도 건물에는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 세심 배려가 뒤따랐다.
아치형 현관의 벽면들은 요철모양으로 파내어 장식적 요소를 가미했고,
건물의 하중을 받치는 기둥도 각의 곡선 처리로 유연성을 살렸다.
네모 난 기둥들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인력을 지니도록 건물 안쪽으로
점점 꺾여 들어가게 리시스(recessed) 처리했다.
기단도 대리석으로 둥글게 굴려 고급스럽게 마무리했다.

  이 건물을 특히 지진이 많은 일본의 건물처럼 내진구조에 알맞게 설계돼 지금까지 튼실하다.
현재 충남 도청 건물은 제 2공화국 시절 넓은 창을 낸 모임지붕 형태로 증축됐다.
그러나 근대건축물위에 현대식으로 막 지어 올린 3층은 아랫층과 부조화를 이룬다.  
일본의 상징이라 해서 급작스레 뜯겨 나간 몇몇 문양들처럼 건물에 대한
세심한 고찰없는 증축이 보여주는 불협화음의 단면들이다.

1932년 세워진 충청남도 도청 건물은 지금까지 손꼽히는 근대건축물의 하나로
많은 건축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 산업은행 대전지점 (근대문화유산 제19호)



  
위      치 : 대전 동구 중동 92-1
지  정  일 :'02.5.31
건축년도 : 1937

  지상 3층의 철근콘크리트라멘조로 하부는 화강석,
  상부는 타일·테라코타로 마감
  고전적인 화려하고 아름다운 르네상스풍의 대전지역 대표적 근대건축물

(구)산업은행 대전지점은 전체적인 비례구성과 미적 균제로 정적인 미를 힘차게 표현하면서
1936년 세워졌다. 기단은 석재로 되었으며, 그 위에 화강석과 타일 테라코타를 사용해
최대한 미적인 느낌을 살렸으며, 밝은 색조의 외벽과 화려한 세부장식, 견고성을 주었다.

일제시대의 스타일에 맞게 내부공간 또한 전체가 한 개 층으로 13미터 높이로 상당히 권위적이고 위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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