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UN기념공원 | ||||||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이렇게 6·25 한국전쟁을 기념하는 노랫말은 후손에게 그날의 사건을 잊지 말라 한다. 5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안타깝게도 우리의 뇌리에서 한국전쟁은 색이 바래지며 ‘잊혀진 전쟁’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국(異國)의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전쟁에 참전한 군인일 것이다. 모두 21개국(전투파병:16개국, 의료지원:5개국)의 군인과 의료진이 한국전쟁 당시 유엔의 깃발 아래 우리를 도왔고 그들의 희생으로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부산시 남구 대연동 4만5000평, 그리 크지 않은 유엔기념공원에는 한때 1만1000여명의 유엔군 전사자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그들의 고국으로 이장되었고 현재는 2300명의 묘가 남아 있다. 1951년 1월 유엔군사령부에 의하여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 6개의 묘지에 흩어져 있던 유엔군의 유해를 이곳으로 이장한 것이 이곳 유엔기념공원의 시작이었다. 그 후 1955년 8월 6·25전쟁으로 희생된 유엔군을 기리기 위하여 한국 정부가 이곳 묘역의 대지를 유엔에 무상으로 영구 기증하기로 결의하였다. 1955년 12월에는 유엔총회에서 유엔기념공원 설치를 위한 결의안을 채택하여 1959년 11월 유엔과 대한민국 간에 정식협정이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공원(처음엔 ‘유엔기념묘지’로 불렀다)이 탄생하였으며 1960년 3월부터 유엔의 UNCURK(국제연합한국통일부흥위원회) 사무총장이 관리를 맡아오다 1974년 2월부터 이곳에 유해가 안장된 11개국으로 구성된 재한 유엔기념공원 관리위원회가 공원을 관리하고 있다. 연간 30만명의 내·외국인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공원 입장은 무료다. 글ㆍ사진=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sslee@chosun.com)
鶴山 ; 오늘의 역사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지난 날을 돌이켜 보면, 한국전쟁에 참전해 준 16개 자유우방 국가들이 있었고, 그들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흘린 피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묻혀 있는 부산 땅에서 고등학교를 나 온 동국대의 강정구 같은 자는 6.25전쟁을 김일성에 의한 통일전쟁으로 미화하고 있다는 현실은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한다. 이지구상에서 공산화를 지향하던 사회주의 국가가 성공한 사례는 지금까지 전무하다는 사실을 그도 알터인데, 뿐만 아니라, 그 자신과 가족도 이미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었고, 자식들 까지도 주한미군에 근무를 시키고 미국에서 일을 하게 만든 주제에 그런 망발로 국민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이 사회를 분열시켜야만 했는 지, 도대체 학자의 양심이라는 것을 어느 선까지로 그 한계를 규정해야 할런지가 혼란스럽다. 세계는 이미 구 소련의 해체를 기화로 사회주의 국가는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으며, 중국도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그들이 그렇게 적대 시 하던 자본주의를 스스로 받아드리고 있는게 현실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재주의의 전형적인 국가로 부자 세습체제를 통해 독제권력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북한괴뢰집단을 찬양하고 고무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 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지금 우리 나라 땅에서 북괴를 찬양하고 동조하는 자들을 모아서 북으로 보내겠다고 한다면 과연 몇 사람이 북으로 가길 희망 할 것인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는 지난 날의 과거로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지난 날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探訪'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다운 우리 강산(3) 강화도 길상면 (0) | 2006.07.01 |
---|---|
아름다운 우리 강산(2) 구례 화엄사의 홍매화 (0) | 2006.07.01 |
주왕산 남서쪽 끝 300년전 인공호수 주산지 (0) | 2006.07.01 |
설악산 흘림골 (0) | 2006.06.29 |
충북 괴산 대야산 (0) | 2006.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