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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대나무는 사림(士林)의 정신을 말한다. 자미탄 위쪽에 자리한 소쇄원(瀟灑園).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을 만큼 빼곡히 들어선 대나무밭이
입구에서 객을 맞는다.
“고기 없이 먹고 살 수 있으나/ 대 없이는 살 수 없다네/ 고기 없으면 사람이 야위어지지만/ 대 없으면 사람이 속되어진다네/ 사람이
야위어지면 살찔 수는 있으나/ 선비가 한번 속되면 그 병 고칠 수 없다네.” 중국 당(唐)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시다. 봄바람에 대숲 스치는
바람소리가 들리자 “죽(竹)이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곳 소쇄원의 주인 양산보(梁山甫·1503~1557)는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문하생이었다. 열일곱에 급제했다. 스승
정암이 1519년 기묘사화로 능주(화순)로 유배를 와서 38세로 사약을 받고서 숨을 거두었다. 이때 양 처사는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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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을 보려 하였더니/ 봉황은 아니 오고/ 오작(烏鵲·까막까치)만 날아오더라/ 아이야, 오작 날려라….”
정자 난간에 기대어, 쉼 없이 쏟아지는 계곡 물줄기를 바라보다 보면 온갖 세속의 시름이 잊힌다. 소쇄원을 진정으로 느끼려면 하서
김인후(金麟厚·1510~1560)의 ‘소쇄원사십팔영(48詠)’을 읽어야 한다. 소쇄원의 경치를 48편의 한시에 담은 것.
한시를 보자. “소쇄원 중에서도 빼어난 경치/ 서로 어울려, 소쇄정을 이루었구나/ 눈동자 들어보니 상쾌한 바람 불어오고/ 귀를 기울이니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는 마치 옥구슬 굴러 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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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으로 오곡문(五曲門). 우암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필체다. 문 아래 놓인 외나무다리. 위태롭게 놓여졌다. 고개를 숙여
조심해서 건너야 하므로 자연스레 겸손한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벼슬을 하지 않고 산림에 묻혀 있는 선비를 처사(處士)라 했다. 소쇄 처사 양씨의 작은 집이라는 뜻의 한자문패(瀟灑處士 梁公之廬)가 담에
쓰여 있다. 네 단의 공간은 사계절의 뜻. 매화가 피면 달맞이를 하는 곳이다.
“한 병의 술을 가지고 꽃밭에 들어가/ 친구 한 명 없이 술을 마실 때 잔을 들어 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 대하여 세 사람 되었구나/
달은 술을 마실 줄 모르고 나만 취하였네….”
그 아래 너럭바위. 그곳에 누워 소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달을 맞이했다 한다.
소쇄원에는 갖가지 꽃·나무들이 가득하다. 자손이 번창하라고 심은 노란 산수유, 가슴을 열어젖히듯 형제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라는 석류,
본부인을 의미하는 백목련, 둘째 부인을 뜻하는 자목련, 씨앗이 하나여서 큰 인물이 나게 해달라는 대추나무, 접을 붙여야 크게 열리므로 집안에
훌륭한 사위나 며느리가 들어오게 해달라는 바람이 서려 있는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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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을 나와 ‘그림자를 쉬게 한다’는 광주호변 식영정(息影亭)으로 가는 길에 ‘한국가사(歌辭)문학관’이 있다. 이곳에는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鄭澈·1536~1593)을 비롯, 면앙정 송순(宋純·1493~1582), 석천 임억령(林億齡·1496~1568), 소쇄처사 양산보,
하서 김인후, 서하당 김성원(金成遠·1525~1597) 등 이 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문인들의 작품들이 한데 모여 있다.
마음이 울적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을 때에는 울분을 삭이러 식영정에 오시라!
식영정에 오르면 멀리 무등산 연봉이 한눈에 잡히고, 호반의 짙푸른 물결이 넘실댄다. 시원한 소슬바람 속에 벗들과 어울려 술 한 잔 나누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수밖에….
‘무릉도원이 어디멘가. 푸른 산에 꽃이 피고 흘러가는 물 위에 복숭아 꽃이 떠가니 성산이 별천지임을 느끼겠노라’ 도연명의 시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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