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ree Opinion

열애(熱愛)의 지속기간은 2년?

鶴山 徐 仁 2006. 4. 14. 10:05
부부 사랑|사랑은 왜 식는가
비난·경멸·반격·담쌓기는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 친밀감 주는 사랑은 오래 지속

당신 때문에 잠이 오지 않고, 오직 당신 생각만 하고,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픈 줄 모르겠고, 자꾸 떠오르는 그 모습,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행동, 생각과 상상을 넘나드는 망상, 공부나 일에 집중하기 어려움….

사랑이라 부르는 기분에 푹 빠졌을 때 흔히들 이런 체험을 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사랑이 식어 극도의 증오감에 사로잡힐 때도 위와 똑같은 행동을 보인다. 영국의 심리학자 프랭크 탈리스(Frank Tallis)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 속에서는 강박증 환자가 보이는 뇌 활동과 흡사한 일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 강박증 환자나 사랑에 빠진 사람이나 똑같이 평균인보다 40% 가량 적게 분비되는데 이런 상태에서는 쉽게 사랑에 빠지거나 성적 자극에 민감하며 자기통제가 무척 힘들다.

미국의 가수 보브 딜런은 ‘상사병’(love sick)이라는 노래에서 “난 아이처럼 말했고, 너의 미소에 무너져버렸어…”라고 사랑에 빠진 기분을 묘사한다. 이처럼 사랑은 이성도 마비시키고 수많은 예술가의 영원한 화두(話頭)가 되지만 야누스처럼 쾌락과 고통, 황홀경과 절망, 환희와 슬픔의 양면성을 지닌다.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증오도 없다고 하는가 보다.

남녀간 사랑의 감정이란 무엇인가? 최근 영국 뇌 과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사랑은 뇌의 특정 부위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기공명영상법(MRI)으로 뇌활동을 촬영해본 결과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는 친구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와 다른 뇌 부위가 자극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본능적 감정을 주관하는 부위(media insula), 마약 같은 최음제에 반응하는 부위(anterior cingulate), 보상을 받았을 때 활동하는 부위(striatum), 그리고 흥미롭게도 우울증 환자의 뇌에서 과도하게 작동하는 전전두엽(prefromtal cortex) 부위가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면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패러독스를 맛본다.

그렇다면 왜 사랑이 식는 것일까? 뇌 과학자들은 사랑에 빠져들 때 마치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황홀감을 느끼게 하는 페닐에틸아민(phenylethylamine)이라는 호르몬의 지속성이 아무리 길어봤자 불과 2~3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흔히들 배우자가 외도에 빠져 번민하는 사람에게 “눈 질끈 감고 2~3년만 기다려봐. 제정신 차리고 돌아올 거야”라고 충고하는 것도 사랑의 지속기간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볼 때 이런 충고는 반쯤만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2~3년 후에 애인이 바뀌면 어리석게도 뇌는 또다시 다량의 페닐에틸아민을 새로 분비시키기 때문이다. 끝없이 애인을 바꿔가며 재미를 보는 ‘상습적 바람꾼’이라면 배우자가 아무리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봤자 사랑 중독증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 것이다. 이럴 땐 사랑중독증을 치료 받든지, 일찌감치 이혼하든지 양자택일을 하라는 최후통첩을 내리는 게 나을 듯하다.

▲ 찰스 영국 왕세자와 다이애나(오른쪽). 카멜라(왼쪽)의 삼각관계를 희화화한 인형.

사랑이 식는다면 어떻게 일부일처(一夫一妻)제가 존속되어 왔을까? 아니, 일부일처제란 인간의 본능과 순리를 거역하는 사회문화적 억지에 불과한 게 아닐까? 따라서 선진국마다 공통으로 높은 이혼율을 보이고 있는 21세기에는 저절로 소멸되어버릴 구닥다리 관습에 불과하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인간의 뇌는 한없이 복잡미묘하여 여러 가지의 상반된 요소와 기능을 동시다발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열정을 급히 달궈주는 페닐에틸아민이라는 호르몬도 있지만, 은근과 끈기로 사랑의 감정을 버텨주게 하는 옥시토신(oxytocin)이라는 호르몬도 있다. 옥시토신은 엄마가 아기를 안아줄 때처럼 주로 피부접촉을 할 때 다량 분비되며 친밀감과 안온함을 느끼게 한다. 이 또한 사랑의 감정이다. 옥시토신은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는 도파민(dopamine)을 생성시킴으로써 뜨거운 열정이 사라진 후에도 은은하면서 지속성이 있는 사랑을 할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옥시토신 덕택에 우리는 단 한 명의 배우자와도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사랑할 사람과 아닌 사람을 식별할까? 원래 인간은 갓난아기 때부터 다른 사람의 감정적 신호에 반응하도록 뇌가 진화되었다. 두뇌 신피질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갓난아기의 뇌에서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바탕으로 감정을 읽는 기본틀이 형성된다. 훗날 어른이 되어서도 이 기본틀에 맞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갈망을 갖게 되고 그런 사람을 만나면 사랑에 빠진다는 학설이 있다. 배우자를 찬찬히 살펴보라. 자신의 부모와 어딘가 유사성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운명과도 같은 배우자를 만나고도 사네, 못 사네 하는 게 바로 우리 인간의 나약한 면이기도 하다. 사랑이 식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까? 부부치료의 세계적 권위자인 가트맨 박사는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는 특징적으로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고 말한다.

첫째로 이혼하거나 불행한 부부일수록 호감과 존중감을 표현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장점보다 단점을 더 잘 발견하며 감사보다 불평을 더 많이 한다. 오래 살다 보니 정이 떨어졌다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면 호감과 존중감을 표현하는 대신 비난, 경멸, 반격과 담쌓기를 자주 한다. 이 네 가지 행동은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이며 이런 행동을 반복하면 이혼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불행한 부부는 서로를 잘 모른다. 배우자가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어느 친구를 가장 신뢰하는지, 친척 중 누굴 가장 싫어하는지, 어떤 경험이 가장 자랑스러웠는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등을 모를 뿐 아니라, 알려고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몇 달 전 60대 부부가 상담을 받으러 왔다. 표면상의 이유는 남편의 의처증 때문이었는데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는 이 남편은 놀랍게도 ‘사랑의 지도(地圖)’ 검사에서 빵점을 받았다. ‘사랑의 지도’ 검사란 가트맨 연구소에서 개발한 것으로 배우자에 대해 얼마만큼 아는가를 측정하는 질문이다.

▲ 이혼, 부부갈등, 남녀관계 등은 가정법률 상담소의 주요 상담내용이다.

그 남편은 20개 질문 가운데 단 한 가지도 못 맞혔다. 첫 상견례 때 입었던 옷을 기억 못하는 것쯤이야 눈감아 준다 하더라도 심지어 4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아내가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는지조차 몰랐다. “아내는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고 답하는 것이다. “그렇습니까?” 하고 아내에게 물으니 한참 머뭇거리던 아내는 목멘 소리로 “난 멸치국물에 말아먹는 국수를 제일 좋아한다”면서 눈물을 떨구었다. 어딜 가도 자기(남편)가 좋아하는 음식만 시킬 줄 알았지, 아내에게 뭘 먹고 싶은지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고 흐느끼는 것이다.

사랑이 식는 부부에게는 또 한 가지 특성이 있다. 양보와 타협을 못한다는 것이다. 가트맨 박사는 지난 35년간 3000쌍 이상의 부부를 연구한 결과 행복한 부부나 이혼하는 부부나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문제 중에 69%는 싸우나 안 싸우나 결국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단지 불행한 부부는 이 69%의 이슈를 싸울 때마다 지겹도록 반복하며, 한번 꺼냈다 하면 말을 삼가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막 하면서 싸움을 극대화한다.

반면 쿨하게 싸우는 행복한 부부들은 69%의 문제를 다룰 때도 말을 다듬어가면서 무척 조심스럽게 꺼내고, 싸움이 격해지면 즉시 화해를 시도한다. “우리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잠깐 쉬자” “미안해,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말이 지나쳤네” “다시 말해 볼게” 등의 말은 싸움이 가열되지 않도록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변화가 가능한 31%의 문제를 다룰 때에도 불행한 부부들은 대개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 제압하는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몰아친다. 폭력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타협하는 기술을 배우지 못하여 어른이 되어서 다시 폭력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경향이 높다는 연구도 있다.

끝으로 행복한 부부들은 서로의 꿈을 잘 알고 있으며 그 꿈이 서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반면 사랑을 잃는 부부는 상대의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거나 꿈을 무시하고, 무조건 반대하고 나선다. 일생에 단 한번이라도 시집을 출판해 보고 싶다는 꿈을 말하는 아내에게 “도대체 지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런 유치한 생각을 품고 살아! 꿈 깨!”라고 호통치는 남편에게 사랑이 식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자전거로 해안도로를 따라 여행해보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돈도 못 버는 주제에 만날 놀러 다닐 궁리만 한다”고 핀잔 주는 아내가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흔히들 성격차이 때문에 이혼한다지만 연구에 따르면 성격차이와 이혼율과는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필자는 성격차이가 아니라 ‘정서통장’의 고갈 때문에 같이 살기가 괴롭다고 본다. 정서통장이란 부부 사이에 공유하는 사랑 감정의 총량이라 할 수 있다. 정서통장이 넉넉할 때는 자신감, 인내심, 너그러움, 희망, 기쁨, 평화를 느끼지만 반대로 정서통장이 빈곤할 때는 쉽게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며 적개심, 불안, 우울증, 절망, 열등감을 느낀다.

아파트 평수 넓히고 자녀의 학원비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려고 애쓰는 만큼 가정의 정서통장을 풍요하게 하기 위해서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인이 전자우편과 컴퓨터 게임에 쓰는 시간이 느는 만큼 우리 가정의 정서통장은 점점 빈곤해지고 부부 애정은 식어갈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최성애 HD가족클리닉 원장·심리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