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政治.社會 關係

15만 경찰이 흔들린다

鶴山 徐 仁 2006. 1. 14. 11:36

심상치 않은 경찰



국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호(號)가 나침반을 잃었다. 선장인 치안총수를 선원들 입장에선 억울하게 잃은 데다 지난해 창설 60년을 맞아 새롭게 올린 ‘인권경찰’의 닻도 녹이 슬었다. 다양한 색깔을 지닌 15만이란 거대조직을 하나로 묶던 수사구조 개혁(수사권 조정)과 근속승진 확대 등 원대한 항해목표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내부에서 시작된 불만은 봇물 터지듯 외부로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 방향은 청와대 쪽이다.





억눌린 불만 폭발



시위 진압 중 발생한 농민사망 사건을 두고 벌어진 책임 공방은 경찰의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지난해 말 서울경찰청장과 경찰청장이 차례로 옷을 벗는 등 모든 책임은 경찰이 짊어진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에 밀리는 상황에서 경찰 수뇌부는 일방적 경찰 책임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일선 경찰들 사이에선 “총경 이상은 모두 옷을 벗으라”는 격한 반응이 나왔고 “정부도 책임을 지라”는 조직적 반발 움직임도 감지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 연초에 한 경찰 간부가 “명예를 돌려드린다”며 청와대에 경찰모자를 보냈다가 되돌려 받은 해프닝에 이어 최근엔 일선 경찰서의 한 경관(경사)이 “민생치안의 현장을 이해하라”며 자신의 저서를 청와대에 보냈다. 연이어 터지고 있는 일선 경찰의 ‘청와대 선물보내기 릴레이’는 경찰 내부 불만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케 해준다.

속이 타는 것은 경찰 수뇌부다. 돌출행동을 엄단 대처하겠다는 지시를 내리고 사태 파악과 사후 처리에 고심하고 있다. 한 경찰간부는 “계급과 계통을 무시한 행위는 경찰의 자세가 아니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밑바닥 경심(警心)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용기 있는 행동”, “특진으로 위로할 일”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일선의 한 40대 경사는 “잘못은 정부가 해놓고 위로는 못할 망정 그 책임을 경찰에게만 돌리는 상황을 참을 수 없다”며 “다들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나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속이 시원하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음 선물은 수갑이 될지, 권총이 될지 모르겠다”는 자조도 들리는 실정이다.

경찰의 한 고위간부는 “15만명이나 되는 집안을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며 “경찰 조직이 예전처럼 위에서 누른다고 아무 말 없이 따라가는 시대는 지났다”고 푸념했다.

언로도 없고 리더십도 없다



경찰 내부의 동요는 지난해 말 허준영 전 경찰청장의 퇴임으로 증폭됐다. 수사권 조정과 근속승진 확대 등을 강력히 추진했던 허 전 청장이 농민사망사건의 책임을 지고 전격사퇴하자 상당수 경찰관이 눈물을 흘리며 지지 현수막을 내걸었는가 하면 ‘경찰은 사망했다’는 의미의 검은 리본을 달기도 했다.

재임 시절 허 전 청장은 경찰 입장을 대변하는 든든한 입과 강력한 카리스마로 평가 받았다. 그는 검찰과의 수사권 싸움도, 정부와의 경찰관련 사항 조율과정도 특유의 입담으로 정면돌파하며 일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일선 경찰들은 경찰 입장을 대변할 통로를 잃었다는데 대한 불만이 크다. 언로가 막힌 상황에서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일선의 한 경찰관은 “후임 청장이 내정돼 있긴 하지만 검찰이 경찰을 흠집 내고 여론이 악화한 지금, 허 청장처럼 시원시원하게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해 줄지 벌써부터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뿐만 아니다. 허 전 청장은 순경, 간부후보생, 경찰대, 고시 특채 등 다양한 인맥이 얽혀 있어 자칫 조직의 화합을 해칠 수 있는 경찰 내부를 역할 분담과 적절한 보상을 통해 잘 단속해왔다.

경찰의 최대 현안인 수사권 조정 문제는 조직의 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대 출신과 고시 특채 등에게 맡겼다. 소수이긴 하지만 순경출신과 달리 젊은 나이에 경위나 경정 등 간부로 출발하는 이들에게 중책을 맡겨 경찰대 폐지론 등을 내세운 하위직 경찰의 불만을 무마했다.

일례로 허 전 청장은 사퇴하던 날 떠나던 마지막 순간에 경찰대 1기인 경찰청 수사권조정팀장 황운하 총경을 끌어안음으로써 변함없는 애정을 보였다.

또 순경출신 하위직 경찰의 오랜 염원인 근속승진 확대에 대해서도 일부 경찰 수뇌부의 반대가 있었지만 일선의 여론을 받아들여 추진했다. 승진소요기간을 단축하는가 하면 ‘근속승진 추진 팀’을 꾸려 지난해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성과도 냈다.

경찰의 최근 위기감은 리더도 없고 언로도 막힌 상태에서 다음달 임시국회로 넘어간 수사권 조정과 근속승진 확대 등 양대 현안이 제대로 풀릴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다. 무엇보다 하위직 경찰들은 근속승진 확대를 담은 경찰공무원법 개정안이 후퇴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경찰 수뇌부는 “시스템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단언하지만 일선의 반응은 차갑다.

흔들리는 경찰 뻠?



이 때문에 경찰 분위기도 “제 목소리를 내자”는 일선과 “자중하자”는 경찰 수뇌부로 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경위까지 근속승진 확대를 주장해온 전ㆍ현직 경찰관의 온라인 모임인 ‘대한민국 무궁화클럽’은 최근 경찰공무원법 개정안 세미나를 열고 세를 과시했다. 하지만 경찰청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며 대한민국 무궁화클럽에 대한 실태파악과 아울러 현직 경찰관이 세미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대해 무궁화클럽 전경수 회장은 “무궁화클럽의 명예를 실추했다”며 최광식 경찰청장 직무대행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서를 내기까지 했다. 문제는 현 경찰 수뇌부마저 치안총수의 부재로 인해 흔들리고 있는 조직을 진정시킬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