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지로 알려진 곳이다.
처음의 이름은 시림(始林)이었는데 김알지 탄생 후 계림(鷄林)으로 바뀌었다.
영평(永平) 3년 경신(60) 8월 4일에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 서쪽 동리에 갔다가 시림(始林) 속에서 환하게 밝은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
보랏빛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에 드리우고 구름 속에는 황금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는데 그 궤짝에서 빛이 나오고 또 흰 닭이 나무 아래에서 울므로 이 사연을 왕께 보고하였다.
왕이 그 숲으로 거동하여 궤짝을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들어있어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마치 혁거세의 옛 사적과 같았으므로 혁거세가 자신을 알지 한 그 말에 따라 알지(閼智)라고 이름을 지으니 알지는 우리말로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이다.
그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는데 새와 짐승들이 뒤따르면서 기뻐서 뛰며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왕이 좋은 날을 받아 그를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알지는 뒤에 파사(婆娑)에게 왕위를 사양하고 오르지 않았다.
알지가 금 궤짝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金氏)라 하였으니 알지가 열한(熱漢)을 낳고 열한이 아도(阿都)를 낳고 아도가 수류(首留)를 낳았다.
수류가 욱부(郁部)를 낳고 욱부가 구도(俱道)를 낳고 구도가 미추(未鄒)를 낳았다.
미추가 왕위에 오르게 됨으로써 신라의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삼국유사 김알지 탈해왕대(金閼智脫解王代)조>
삼국유사 김알지조에 나오는 기록이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9년 봄 3월 왕이 밤에, 금성 서쪽 시림의 나무 사이에서 닭이 우는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날이 샐 무렵에 호공을 보내 어찌된 일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였다.
호공이 가보니 그 곳에는 나무 가지에 금빛 나는 작은 상자가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이를 보고하였다. 왕은 사람을 보내 그 상자를 가져와 열게 하였다.
그 속에는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고, 그 아이는 자태와 용모가 뛰어났다.
왕이 기뻐하며 측근들에게
"이 아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아들로 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하고,
그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 아이는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그의 이름을 알지라고 하였다.
그는 금빛이 나는 상자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씨라고 하였다.
시림을 고쳐 계림이라 부르고, 이를 국호로 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니사금(脫解尼師今)9년조>
계림비각
석탈해가 닭 우는소리를 듣고 이튿날 호공을 시림으로 보냈다는 것은 시림이 왕궁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또 견훤이 영천에 주둔하다 경주로 쳐들어 올 때 시림에서 멈추었다는 기록 역시 시림이 영천과 경주 사이에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 월성의 서북쪽에 금성이 있고 금성의 서쪽에 계림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금성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야 계림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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