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科學. 硏究分野

[21세기를 논하다] 2. 뤼크 페리 교수

鶴山 徐 仁 2005. 11. 14. 17:03

뤼크 페리(오른쪽)가 위원장으로 일하는 대통령 산하 사회분석위원회 사무실은 정부 건물이면서도 소박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쳤다. 일찌감치 대담 승낙을 받았지만 그의 긴 여름 휴가로 정작 9월 14일 오후에야 만날 수 있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경제와 정치가 발전해도 인간은 여전히 불안하고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 조건의 불확실성은 현대로 올수록 더 커진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가치를 든든하게 세우지 못하고 있다. 인간, 자연, 신과 같은 문제는 결국 우리가 영원히 풀어야 할 화두다. 데리다 등의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프랑스 지성의 새 별로 떠올라 교육부 장관까지 지낸 철학자 뤼크 페리에게서 인간과 자유를 꿰뚫어볼 지혜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유를 사랑하는 파리 사람을 약속을 정해 만나기란 간단치 않은 일이다. 만남을 약속했던 뤼크 페리 위원장을 여름방학 때 보려던 나의 계획은 그의 길고 긴 바캉스로 인해 9월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늦어진 인터뷰 때문에 심기가 조금 불편하기도 했지만 톨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에 온 이상 참기로 하였다.

파리 사람들을 만나보면, 어떤 세련미나 유행보다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청바지와 셔츠 차림의 뤼크 페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명한 철학자이자 교육부 장관을 역임했고 현재 정부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관료이기도 한 사람치고는 너무도 편안했다.

그들의 자유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가진 자의 여유인가 예술정신의 구현인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상당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인권의 신장과 민주화를 통해 정치사회적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콱콱 막히면서 결코 자유스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필자로서는 그것이 제일 궁금했다.

- 자유란 무엇입니까?

"흔히 자유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 어떻게 해야 마음을 열 수 있나요?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매달려 있으면서 마음을 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지요. 먼저 여유를 갖고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자신을 초월하려고 애써야지요. 마음을 열려면 자신의 일상부터 초월해야 합니다."

- 초월이라는 말이 너무 종교적이지 않나요?

"종교적 초월은 자신을 떠나 완전히 자기 외부로 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초월은 인간이 자신의 내부에서 행하는 내재적 초월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사랑을 할 때 나는 나로 존재하면서도 사랑하는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이 열리지요. 그처럼 내재적 초월 역시 내 안에서 나 자신의 변화와 열림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 이 말은 종교적이진 않더라도 적어도 낭만적인 것처럼 들리는데요?

"아니요, 나의 주장은 낭만주의와는 무관합니다. 서구에서 낭만주의는 잃어버린 황금시대나 떠나온 원초적 시간을 전제하고 그것에의 복귀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는 휴머니즘이나 인간의 자유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낭만주의는 나치즘이나 파시즘처럼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상정하고 우리를 그곳으로 몰고 가기 위해 오히려 자유를 억압합니다. 인간은 이미 자연을 떠나왔고, 발전한 사회 속에서 자유와 초월을 논해야 합니다."

- 루소는 '인간이여,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설파했는데, 루소상(賞)을 받은 당신의 말은 '자연으로부터 떠나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네요. 이 점이 당신이 '심층생태학(deep ecology)'을 비판하는 이유겠군요?

"예, 맞습니다. 심층생태학은 중요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지나치게 순수한 자연만을 강조합니다. 예전에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영화지요. 하지만 메시지엔 문제가 있습니다. 19세기 미국인들이 잃어버린 천국을 찾아 서부를 개척했다는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연적'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기도 합니다."

- 인간과 동물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동물이 오히려 자연적이고 인간보다 나은 것은 아닐까요?

"동물이 자연적인 것은 맞지만, 자연적인 것이 자유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물론 자연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동물이 자연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아무런 역사나 문화, 정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물은 별다른 교육이나 문화가 없어도 본능적으로 살 수 있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거북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헤엄칠 수 있고, 먹이를 구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는 2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자연이 동물의 모든 삶을 조직해 줍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에게는 역사가 있고, 이것이 시대에 따라 사회의 모습을 다르게 만듭니다."

- 인간이 자연적이지 않다면,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하냐 악하냐는 중요하지 않겠군요?

"예, 인간은 자신의 삶을 자연이나 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조직하는 존재입니다. 그 결과가 역사고요. 인간의 역사는 때로는 훌륭하고 때로는 수치스럽기도 합니다. 이는 모두 인간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역사에는 개인의 역사와 인류 종으로서의 역사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한 개인으로서의 역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교육이고, 종으로서의 인류의 역사를 위해 필요한 것이 정치입니다. 흔히 후자만 강조하여 정치가 인간 삶의 관건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역사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이 점에서 교육이 매우 중요하지요."

- 그래서 최근까지 프랑스 '청소년, 교육 및 연구부' 장관을 맡으셨군요. 그때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요?

"대학교육과 같은 고등교육은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요, 기본적인 것 두 가지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교육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매우 창피하게도 유럽의 평균 문맹률은 15~20%에 이릅니다. 10명 중 약 2명은 아직도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이야기지요. 기본적인 문자해득률을 높이는 일에 먼저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을 교육할 때 그들을 아름다운 청소년으로만 키워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항상 청소년들에게 '어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역사를 갖는다는 것이고, 이는 인간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며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제일 싫어하는 캐릭터는 '피터팬'이지요. 항상 어린이로만 남아 있으려는 사람은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어린이는 귀엽지요. 자연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어른은 좋은 교육과 정치를 거치면서 자신과 인류의 역사를 갖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유와 위대함을 획득하게 되지요. 젊은이의 눈은 아름답고 불이 활활 타오릅니다. 하지만 어른의 눈은 위대하고 빛이 납니다. 그리고 이때야 비로소 마음이 열리는 것이지요."

한참 이야기에 빠져 있던 중 갑자기 대화를 단절시키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재경부 장관이 회의에 늦은 뤽 페리를 독촉하는 전화였다.

아쉽지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사무실을 떠날 때, 필자는 비로소 처음의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아, 파리사람들이 그토록 바캉스에 목을 매는 것은 놀기 좋아해서나 일상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해서가 아니라, 일상으로부터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임을. 프랑스인들이 좋아하는 톨레랑스 개념은 단지 정치적 관용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열고 자유를 획득하고자 하는 철학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음을. 그리고 처음에 내가 약속 날짜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던 것은 아직 마음을 열지 못했기 때문이었음을.

*** 뤼크 페리는

자크 데리다(1930~2004)나 질 들뢰즈(1925~95) 같은 포스트모더니스트 이후 프랑스의 새로운 모더니즘 철학을 이끄는 대표 지식인이다. 51년생으로 계몽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철학에 관심이 많다.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로 활동하며 사회 여러 분야에 직접 뛰어드는 실천에 적극적이다. 파리 제7대학 철학 교수를 지냈고, 2002년부터 3년간 라파랭 정부에서 '청소년, 교육 및 연구부' 장관을 지냈고 현재는 정부의 사회분석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3부작인 '정치철학'을 비롯해 '68 사상' '미학적 인간' '새로운 생태학 질서' '신-인간 혹은 삶의 의미'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이 중 '새로운 생태학 질서'는 '장 자크 루소 상'과 '메디치 상' 에세이 부문을 받았고, '신-인간 혹은 삶의 의미'는 프랑스 인권문학상을 수상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 이동수 교수는

경희대 NGO대학원 소속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 밴더빌트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치와 한국정치' '이상국가론' 등의 공저가 있다.

2005.10.28 05:16 입력